좀 쉬세요 들...
비올님의 [당신의 민주공화국은 누가, 무엇이, 어떻게] 에 관련된 글.
1. "쥐빠"들의 나라
촛불의 의미에 대한 이야기는 패스. 그건 지금 나오는 이야기들만 해도 차고 넘치므로 구태여 행인의 구라까지 곁다리로 껴 넣어 중언부언 할 필요는 없겠다. 다만, 그 촛불에 대한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다양한 스팩트럼의 평가들 중 적어도 극단의 부정과 극단의 기대에 관한 양 극단의 논의만큼은 이렇게 이야기해두고 넘어가자. "재수없어~!"
지난 9개월 동안 일어난 굵직굵직한 사건들, 예를 들어 이명박의 대통령 당선, 한나라당의 의회 다수당 등극, 미국산 쇠고기 재수입을 둘러싼 개코메디, 촛불들의 반란, 계엄사령관 어청수 등장 등등을 돌이켜 보면 한국사회의 수준이라면 수준이랄까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세상을 다 먹는데 삽질 하나면 충분하다는 사실을 저돌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이명박. 자신의 삶이 어떤 요소들에 의해 결정되는지에 대한 판단을 할 겨를도 없이 그저 돈 좀 도는 세상을 만들지 않을까하는 전혀 근거없는 희망으로 이명박을 찍은 사람들. 불과 6개월만에 제 실체를 다 드러냈음에도 불구하고 이명박만이 살 길이라고 철석같이 믿어 의심치 않는 많은 사람들.
특히 "잃어버린 10년"을 이야기하면서 그동안 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했던 모든 것을 한 큐에 다 해보고 싶어 안달이 난 자본과 수구세력. 물론 지난 10년 동안 지들 하고 싶은 것은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못먹고 살아 죽을 뻔 했다고 엄살을 떨어대는 그들은 세상이 바뀐 효과를 톡톡히 만끽하고 있다. 휠체어 없이 법정에 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이던가?
자본과 수구세력들에게 이명박의 등장은 메시아의 재림에 버금가는 일대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승만을 국부로 추앙하려고 지난 십 수년을 노력해왔던 조선일보 또는 조갑제, 지난 광복절은 그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순간이었다. 건국절이라니. 이거야말로 국부 이승만의 제자리 찾아주기가 성공한 사건 아닌가? 29만원짜리에게 어이없이 털렸던 동양방송을 다시 찾을 수 있다는 기대에 부푼 삼성은 지금 얼마나 가슴 터지는 기대감에 숨을 몰아쉬고 있을까?
혹자는 이들을 일컬어 "쥐빠"라고도 한다. 그동안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빠" 시리즈의 총 결산쯤 되겠다. 어쨌던 이명박 추종세력들은 과거 정치적 "빠"계의 지존을 자랑하던 "노빠"들보다 한층 더 강력한 결집력을 보이며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이들에겐 촛불이고 나발이고 눈에 뵈는 것이 없다. 권부를 장악했고, 언론을 장악했고(또는 장악해 가고 있고), 경찰력을 완전 장악했고, 자본을 장악했고, 시장을 장악했고 모든 것을 장악했다.
그런데 정작 무시무시한 것은 눈에 드러나는 노골적인 "쥐빠"들이 아니라 이들에게 손가락질을 하면서도 정작 자기 스스로 "쥐빠"적 감수성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2. 민주
"민주주의"에 대한 이야기는 약간만 언급하자.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를 절감한 많은 분들이 직접민주주의를 이야기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직접민주주의 하면 뭐 달라질까? 예를 들어 국민소환제가 헌법으로 보장되게 되면? 지금같은 상황에서 이명박을 국민의 손으로 끌어내릴 수 있을까?
그럼 이건 어떤가? 뭐 어느 세월에 이렇게 될지 모르겠지만 행여라도 "정말 진보적이고 유능하며 신자유주의를 결단낼 능력을 가진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하자. 그랬더니 남한사회 곳곳에 포진해있던 수구세력들과 자본이 들고 일어난다.
"다시는 잃어버린 10년을 경험하고 싶지 않다!"
조중동은 나팔을 불고, 전경련과 경총은 하루에도 몇 건씩 토론회를 개최하고, 한나라당은 국회의사당을 떠나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재향군인회와 자유총연맹 및 특수임무수행자회 같은 곳에서는 시청앞에 성조기를 들고 집결하고, 죽으나 사나 빨갱이에게 나라를 넘길 수 없다는 숭고한 신념을 가진 일부 개신교 먹사들은 돈을 뿌려가며 전국에서 신도들을 끌어올릴 거고...
여기까진 양념일 뿐이다.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지역유지들은 한나라당 출신 기초단체장과 한나라당 출신 지방의회의원, 한나라당 일파에게 손을 대고 있는 지역 재산가들과 중소기업인들 및 지역 군소단체 한자리 하는 사람들이 죄다 움직인다. 중앙과 지방이 결합하여 세를 모은 후 겨우 대통령에 오른 예의 그 "정말 진보적이고 유능하며 신자유주의를 결단낼 능력을 가진 사람"을 "국민소환"하면 우찌될까?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전자보다는 후자가 훨씬 더 가능성이 있다. 직접민주주의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가끔 깜빡 하는 것은 국민소환제 같은 직접민주주의의 실현과정 역시 투표를 통해서 할 수밖에 없다는 거다. 최근 10년 간 치루어진 선거들을 돌이켜볼 때, 투표장에서 힘을 발휘하는 것은 명분이 아니라 조직이었다. 그 조직선거에서 힘을 가졌던 자들이 계속해서 선거를 이겨왔다.
이런 우려가 있다고 하더라도 직접민주주의의 요소를 우리 헌정체계에 집어넣는 일은 필요하다. 다만 그걸로 절차적 민주주의 이상의 것을 기대하는 거, 혹은 대중들로 하여금 그런 기대를 키우게 하는 거, 이거 좀 자제하자는 거다. 국민소환제, 국민발안제, 국민투표제 이 직접민주주의 3종 세트가 제도적으로 정착되면 갑자기 진보적인 정권이 들어서고 사회정의가 도래할 거라고 생각하는 또는 그렇게 생각하도록 유도하는 그런 거 좀 하지 말자는 거다.
3. 공화국
촛불집회에서 새롭게 고민되고 있는 진부한 주제가 바로 "민주공화국"이다. "민주주의"고 "공화국"이고 간에 이게 지금 우리 사는 사회가 그런 건지 너무나 궁금하다. 비올이 트랙백 건 포스팅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일까?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올까?"하고 흥얼거렸다는 것과 똑같은 심정으로 행인도 그러고 있다. "개뿔 민주공화국... 조중동도 그렇게 뻔뻔한 말은 않겠다."
그리하여 비올은 현실에 대한 분석보다는 "우리가 만들고 싶은 민주공화국에 대한 뽀샤시한 이야기를 해보"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행인은 그런 뽀샤시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지금 현실을 좀 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소위 "쥐빠"들의 세상, 혹은 "쥐빠"들과 감성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지배적인 세상에서 "공화"는 개뿔 뭔 헛소리일까를 먼저 보자는 거다.
자식세대의 피를 빨아가며 아파트 프리미엄을 올리는데 혈안이 된 사람들. 아파트 살 때는 비싸니 어쩌니 대출을 얼마나 안고 사느니 마느니 하던 사람들이 일단 아파트 한 채 장만하고 나면 이게 언제 오르나를 기다리며 계산기를 두드린다. 이런 심정은 아파트 한 채 장만할 여력도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파급되어 뉴타운 한 마디에 기냥 한나라당 후보에게 표를 던진다.
세상이 어떻게 되든 간에 내 자식만 잘 되면 그만이라는 심정으로 사교육이건 영어연수건 간에 돈만 되면 다 보내는 부모들. 대학만이 지상과제가 된 상황에서 아이들은 세상에 대한 고민을 하기 전에 수능성적을 높이기 위해 학원으로 과외로 정신 없이 달려간다. 공정택 같은 사람을 교육감으로 뽑는다. 그래놓고 국제중학교 만든다니까 그건 또 어떻게 들어가는지 초미의 관심사가 된다. 그게 뭐가 문젠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인가를 고민하는 사치스러운 짓은 이제 하지 않아도 된다. 돈이 최고인 세상이 되었고,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공히 그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돈 되는 곳으로 전력질주 하고 있다. 여길 가도 돈 얘기만 나오고 저길 가도 여전히 마찬가지다. 게다가 그러한 지들의 가치관을 대를 이어 전파한다. 좋은 대학 나와야 돈 잘 번다는 것은 이제 이념이 되어버린지 오래다.
이런 행위들을 소위 "쥐빠"들만 하고 있나? 천만에 말씀이다. 어차피 노골적인 "쥐빠"들은 이미 그렇게 살고 있다. 이들은 올 초에 "강부자, 고소영"이라는 휘항찬란한 애칭까지 얻은 바가 있다. 걔들은 뭐 따로 아쉬울 것도 없이 이미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다음세대를 착취하면서까지 아파트 프리미엄 올리느라 혈안이 된 사람들은 "공화"에 대한 개념이 있는 건가? 대학가는 것만이 지상과제인 것으로 애들에게 세뇌시키는 사람들은 그렇게 해서 대학간 자식들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가르치고 있나? 돈 버는 것만이 나아갈 바요 교육의 지표가 된 세상에서 모자라도 함께 나누는 세상을 이야기하는 "공화"라는 것은 살아남을 수 있는 건가?
공화국은 개뿔...
4. 생활
비올의 글을 보면서 한없이 공감한 부분은 바로 이거다.
"사람들이 경험한 광장의 정치를, 동네의 정치로 이끌어 올 수 있을까"
촛불집회를 하는 과정에서 누군가는 김밥을 나누어주었고, 누군가는 컵라면을 제공했고, 누군가는 물을 전달한다. 아무런 댓가도 바라지 않고 그런 일을 하고 그 옆에서 그걸 돕고 그리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그 행위에 동참한다. 이게 더 나간다면, "공화"라는 것은 실체가 되어 나타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촛불을 전달하고, 김밥을 나누어주고, 컵라면을 나누어주고, 물을 전달하던 그 행위를 조금만 더 확장하면 된다. 문제는 그 주체다. 아파트값이 올라가는 것에 브레이크를 걸어야 할 사람들은 바로 그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다. 자기 아파트 값이 올라가고 전국의 아파트 값이 올라갈 수록 다음세대가 짊어져야할 부담이 끝간데 없이 커진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학력으로 자신을 말하는 사회에 대해 항의해야할 사람들은 바로 학력으로 인해 혜택을 봤던 사람들이다. 주변에 보이는 "386" 중 상당수의 사람들이 자신들이 그토록 혐오했던 제도권 교육의 폐해 안으로 자기 자식들을 들여보내지 못해 안달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들의 그 노력이 결국 사회적으로 학력에 의한 차별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안다면, 학력으로 학벌로 사람들을 차별하는 사회에 대해 그 옛날의 열정을 가지고 비판해야 한다.
이명박같은 사람을 부정한다면 이명박을 만들어낸 구조를 부정해야 한다. 돈이 성공의 척도가 되는 현상을 비판한다면 돈에 구애받지 않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고민하고 찾아가야 한다. 이렇게 되면 "공화"가 가능하다. 생활 속에서 나누고 섬기는 삶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정치적 장에서 논의되는 "공화"는 걍 헛소리가 되어버린다.
그러기 위해서 비올같은 활동가들은 좀 쉬어야 한다. 자본의 착취에 대해서 비판하는 사람들이 운동의 책임감이 만들어낸 착취때문에 지쳐가는 것은 아이러니다. 그걸 소명의식이라고 할지 모르겠으나 그 소명의식에 철저한 사람들이 쓰러져 버리면 운동은 누가 계속할 건가? 게다가 이렇게 빡시게 운동하는 사람들 보면서 운동에 별다른 관심도 없던 사람들은 질려서 운동하고 싶은 생각이 나겠나?
당장 함께하지 못하는 주제에 감놔라 배놔라 하는 것이 미안키는 하지만, 제발 좀 쉬어가면서들 하시길. 결국 이 이야기하려고 이렇게 주절거렸단 말인가... 쩝...
행인님의 [좀 쉬세요 들...] 에 관련된 글. 행인의 글을 읽다 문득 떠오르다.역사적으로 공화파는 부르주아 정치의 이념형이었다. 1848년 프랑스 혁명 당시, 공화파는 배신을 통하여 파리코뮌을 저버린다. (정확한 역사적 일자는 별도로 확인하자, 이것은 나의 기억일 뿐)공화주의는 공동선을 전제로 하며, 개인의 희생을 전제로 한다. 중요한 것은 그런 공동선을 알수 있고 행할 수 있는 사람은 '모든 사람'이 아니라 '특수한 사람'에 한정된다는 것이다.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