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27

사회운동

요즘 운동을 좀 격하게 한 후유증으로 몸살이 나서 하루 종일 힘들었다. 그래도 처리할 일들이 있어 쉬진 못하고, 집에만 있으면 계속 어정쩡하게 쉴 것 같아 사무실에 나갔다. 일하다 저녁이 되니 꾸벅꾸벅 졸다 문득 일어나 보니 어느새 밤 12시. 겨우 막차 시간에 대서 집에 왔다.

 

피곤해서 바로 잘 생각이었는데 막걸리가 있어 한 잔 가볍게 하려다 조금 더 들이키게 됐다.
미누 얘기, 빈집 얘기, 미샤엘 얘기 이런 저런 얘길 하다 요번 아랫집 회의에서 쓰레기 버리는 문제가 나왔다길래 그것도 얘기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논쟁이 시작됐다. 대부분의 논쟁이 그렇듯 서로의 전제, 용어에 대한 개념, 말하는 방식의 차이로 커졌고, 쟁점 자체는 평소 생활패턴과 느낌 축적의 차이로 쉽게 설명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문제였다. 나는 피곤하기도 하고, 같이 얘기하던 사람의 평소 생활과 말하는 방식에 대한 불만이 쌓여 있었기에 감정적으로 금방 격해져서 논쟁에 휘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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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를 잘 처리하기 위한 여러가지 아이디어들, 이를테면 가끔 몰아서 많이 나오는 재활용품을 담아 두기 위한 더 큰 통이 필요하다든가 그런 것들이 나오고, 뭐던 다 시도해보면 좋지만 역시 평소에 다들 마음을 쓰고 조금씩 자주 모아 내가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뭐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의 얘기라고 생각해서 "그렇지 뭐"하고 넘어갈 줄 알았는데

우리 이곳에 재밌고 편하게 살러 온거 아니냐. 쓰레기를 쉽게 처리할 방법들이 "먼저" 고안된 다음 평소 마음 씀 이런 얘기를 해야한다, 이 말을 듣고 아연해졌다. 빈집은 편하게 살려고 모였다기보단 오히려 그 반대가 더 맞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편하게 살려고 평소에 도시에서, 소비적이고, 시스템 의존적으로 살게 되는데 그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시작한 곳이다. 좀 더 불편하고 가난하더라도 주체적으로 살아보자구!

 

 

뜻하지 않게 "빈집"의 대장, 이장론이 불거지면서 얘기가 달리 흘렀다. 사실상의 대장을(평소에 지적하고 간섭하는 사람 혹은 고민을 많이해서 초안을 내는 사람) 우리 스스로 만들고 있는 장투의 현재 상황을 얘기하자, 회의를 통해 모든 것을 결정하는데 대장이(모든걸 결정하는 사람이 - 이런 뜻이었을까??) 어떻게 생기냐는 그런 반박. 여기서부터 "대장"이라는 민감한 표현을 둘러싸고, 양쪽의 용어 개념 차이와 말하기 방식 차이가 확 나오고 서로의 감정을 자극하는 말이 나와 버렸다. 논쟁의 주제가 애매한데 주로 싸운 것은 "시스템을 회의를 통해 먼저 개선하고 그 다음 개인의 행동을 조정하는 것이 (실질적인, 소수의) 대장을 만들게 되느냐"는 것이었던 듯하다. 나는 "대체로 그렇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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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스템을 먼저 고치자"고 말하는 순간, 사람들은 당장 각자 갖고 있는 지혜를 동원해서 현실에 참여해야하는 부담에서 벗어난다. 보통 스스로 압박을 받아 변화, 순응, 적응하게끔 유도되는 대중의 입장일때는 "시스템 우선/중심 개선론"이 충분한 의미가 있다. 그 자체로도 그렇고, 어떤 속박으로부터 개인을 해방시켜 다르게 바라보고 행동하게 하니까.

 

근데 그 대중이, 어떤 지향점을 갖고 대안적인 방법을 찾는 사람들이고, 당장 어떤 구체적 실천들, 노력들이 모아져야 하는 상황일때는 좀 다르다고 본다. "시스템을 먼저 고치자"는 말이 오히려 행동력을 떨어뜨리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변화도 분명 요구되는 상황에서 시스템을 문제 삼는 행위는 지금 당장 해야할 것들을 미루게 해주고, 지금 개인의 상황을 은폐하는 효과도 있다.

 

 

* 흠.. 말하기 힘든데 공동 생활에서 살림 참여/협력의 문제에서는 특히 저 말이 굉장히 위험하고 부정적일 수 있다고 본다. 대부분의 가정과 사회에서 "살림"은 성별과 연령, 계층이 분화되서 불균형하게 부담이 지워지는데, 이 경우 그 부담의 전체적인 양을 줄이는게 문제가 아니라, 모두가 골고루(균등하진 않아도) 함께 부담하고 참여하는 것이 핵심 관건이기 때문이다.

 

그래, 사실 내 감정을 포함해 정말 하고 싶은 말은 이거였나보다.

지금 누구는 평소에 꾸준히 마음을 쓰는데 누구는 마음을 안써서, 가끔 그 "마음 쓰는 이"가 없거나 지쳤을때 평소에 돌아가던 것이 멈춰버리는 문제가 더 핵심이고, 그러니 어떤 획기적인 개선책을 찾는게 아니라 조금씩 모두가 자주 쓰레기를 내다 버리는 것이 더 좋은 모델이라고.

 

 

* 아마 내 지난 생각을 바탕으로 차분히 생각해보면, 그의 주장은 이것이었을지 모른다. 살림에 소극적인 사람은 뭔가 예전부터 그런 경험에서 (원해서던 아니던) 떨어져 있어서, 뭔가 살림이라는게 블랙 박스마냥 알 수 없는, 뭔가 아주 어려울 것 같은, 내가 하면 잘 못할 것 같은.. 이런저런 생각으로 부담을 느끼고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만일 어떤 한가지 구체적인 일들에 대해 좀 더 쉬운 개선책이 발견되고 제안된다면 누구나 좀더 그것에 참여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 경우 개선책이 얼마나 쉬운가가 아니라 그것이 공개적으로 제안되서 "내가 어찌 할지 알게 되고"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수행하게 된다는 것이 핵심일 수 있다. (그걸 의도했던 아니던)

 

만일 그가 그런 생각으로 말한 거라면 충분히 일리는 있다고 본다만... 다만 문제가 있다면 그것 조차 기존에 부담을 더 지던 사람이 또 다른 새로운 부담을 일순간 지게 된다는 것이 아닐까. 좋은 해결책은 그 문제를 충분히 이해하는 사람이 많은 기여를 해서 나오게 되는 거고, 그 문제를 충분히 이해하려면 실제로 그것을 평소에 해 와야 할 것이니까. 물론 연구 마인드로 잘 관찰하고 고민해서 나올 수도 있겠지만.

"더 좋은 방법을 제안"하자고 하고, 그래서 실제로 방법이 찾아지고, 제안되고, 실험된다고 하더라도... 흠. 뭐랄까. 거기까지 이르는데, 평소 잘 안하던 사람들이 실제로 그것을 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에 "원래 잘 하던" 사람들의 교육과 개입이 계속 필요할 것 같다. 그리고 내가 뭘 잘 알고, 하는 것과 교육은 또 다른 문제이기도 하고. 교육은 아는 걸 그냥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맞춰 수없이 고민하고 메시지를 가공해야 하는 힘든 작업이다.

 

 

* 논쟁 주제로 돌아가서, "시스템을 회의를 통해 먼저 개선하고 그 다음 행동을 조정하는 것이 (실질적인, 소수의) 대장을 만들게 된다"고 한 것은 행동이 (무수한 시행착오를 포함해서) 먼저 있고, 회의때 그것을 정리하는 것이 옳다고 보기 때문이다. 일단 전제할 것은

 - 간단한 안건이 아닌 경우, 우리는 대체로 누군가가 초안을 짜오면, 그것에 대해 첨가/삭제해서 최종안을 잡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즉 누군가는 초안을 써야 얘기가 진행된다.

 - 초안을 쓰는 사람은 대체로 그 문제에 대해 평소에 고민을 많이 하거나, 그것이 해결되기를 강하게 열망하는 사람일텐데, 아마 평소에 부담을 많이 지는 사람이 제일 해결을 원하고 고민도 많이 하게 될 것이다.

 - 회의는 대체로 한 달에 한번식으로 시간적 갭이 있고, 사람들은 회의와 회의 사이에는 얘기했던 상당수를 다시 잊어버리게 되는 경향이 있다. 회의록을 잘 쓰면 어느 정도 보완은 가능하다.

 

만일 모든, 대다수의 사람들이 평소에 그 문제에 대해 차이는 있을지라도 같이 고민하고, 소통하고 행동한다면 굳이 회의를 할 필요도 없고, 대장?이랄 사람이 생길 이유가 없다. 하지만 시스템 개선을 이유로 한 달에 한번 있는 회의에 먼저 얘기하고 움직이겠다고 한다면, (아 졸리다. 괜히 쓰기 시작했나) 보통 "평소에 부담 많이 지는 이"가 초안을 써서 회의에 내기를 기다리며 다른 사람은 여전히 신경을 끄고 다른 일에 몰두할 가능성이 높다. 꼭 그런 건 아니지만 대충 그렇다. "이건 누가 잘 아니까 좀 정리해서 교육해주면 배워서 할게" 혹은 "평소에 고민을 많이 하니 대안을 회의때 제시해주면 좋겠어"

 

하지만 대부분의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는 경우가 적고 대개 언젠가는 반복된다. 빈집처럼 사람들의 드나듦이 많고 인적 구성이 자주 바뀌는 경우는 더 그렇다. 그때마다 이런 식으로 "잘 아는 누군가가 나중에 제시하길" 기대하고 당장의 행동을 미루게 된다면, 그것이 반복되면 사실상 "늘 인도하는" 사람이 생기는셈이 아닐까.

 

아, 길게 쓰기 힘들다. 하여튼 그렇다. 지금의 문제를 있는 그대로, 한 사람에서 출발해서 서로 힘모아, 당장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아 즉시 행동하지 않고 나중으로 미루는 순간부터, 사람들은 의존적이 되고, 의존적인 사람이 대다수가 될때, 필연적으로 (실질적인) 대장 역할을 하는 사람은 만들어지게 된다. 이것은 띄엄띄엄하는 회의가 아무리 형식적으로는 잘 돌아간다 해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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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서로 이해를 하느니 못하느니 얘기를 잘 듣니 안 듣니 무시하는 말을 하니 안하느니 평소에 잘 하느니 못하느니 이런 걸 빼고 얘기하는게 대체로 좋겠지만 역시나 그게 잘 안되서 결국 만족스러운 대화, 토론은 안 된 것 같아 찜찜하고 답답하다.

좀 전 상황만 따지면 사실 형식적, 논리적으로 제대로 말을 풀어간 사람은 그쪽이고, 내가 좀 더 감정적이 되서 얘길 제대로 못 풀어갔다고 보는게 맞을 것 같다.

또 자꾸 한 사람에게 전형적인 "형식논리 중시하는 아저씨 운동권" 이미지가 오버랩되면서 짜증이 자꾸만 일어났다는 점도 고백해야겠다. 논쟁할때 그럴수록 불리하고 스스로 피곤하다는 걸 알면서도 어쩌겠나. 예전에 나도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말했을거고 지금 내가 받는 스트레스를 전에는 내가 주어왔는지도 모르지. 내 생각을 내 언어로 만족스럽게 풀어내지 못한게 답답한데 어쩔 수 없다. 다시 얘기가 시작된다고 해도 뭔가 꽉 막히고 갈라진 듯한 상황에서 어케 상처를 안 주고 받으며 얘기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여튼. 그냥 잠들기 전에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적어놓은 건데, 괜히 썼나 싶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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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27 05:06 2009/10/27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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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elitas 2009/10/27 07:45 URL EDIT REPLY
좋은 글이네요. 민주주의가 효율적이진 않은 것 같아요. 좀 거창한 얘기지만 그래서 민주정 다음에 참주정이 등장하기도 했잖아요. 하지만 의견도 갈등을 일으키고 조정하는 일들을 거쳐야 사람들의 역량도 강화되는 것 같아요. 단체에서 간사도 해보고 조합에서 상근도 해봤지만 역시 가장 힘든 건 사람들의 참여도를 높이는 일이죠. 말로 소통해보고 글로 서로의 견해를 표현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양쪽의 장단점이 있으니까요.
지각생 | 2009/10/27 17:00 URL EDIT
효율 생각하면 민주주의 못하죠. 그래도 시간이 지나며 짜증나는건 어쩔 수 없음 -_-
디디 2009/10/27 08:50 URL EDIT REPLY
마음 쓰는 이가 지치고, 그러면 모든 것이 멈추고. 그거야말로 최악의 시스템이지. 편하자고 빈집에 왔다니 컥 -_- 빈집을 집에서 잔소리 듣기 싫어서 나온 사람들의 아지트쯤으로 여기지 않고서야 여찌 그런 말을. 암튼 누군가의 살림.에 기생하는 자들이 있을 때 살림.은 즐거운 것이 아니라 다른 이를 위해 제공하는 노동이 되버린다는 것. 빈집에서 반드시 고민할 부분인 거 같어. 힘내들.
지각생 | 2009/10/27 17:01 URL EDIT
실제로 편하게 살고 있다고 스스로 말하니 갑갑할 뿐 -_-
디온 2009/10/27 23:03 URL EDIT REPLY
"빈집은 편하게 살려고 모였다기보단 오히려 그 반대가 더 맞다고 볼 수 있다."

에 대하여...
난 이 말은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난 기본적으로 빈집에서 친구들과 함께 살면서 혼자 살 때보다 편하고 즐거워졌고, 다른 친구들도 그렇다고 말하는 게 참 좋다. 즉, 난 편하고 즐거우려고 빈집에 산다. 그러나 '함께 살아서' 더 편하고 즐겁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지요. 나만 즐거우면 얼마 못가거든.
빈집이 무슨 대단한 실험을 하고 있다면, 고통을 감내하면서 더 큰 걸 얻어내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일반적으로 시행하고 있다면 또 모르겠지만,
우리는 대체로 우리가 즐거운 범위 내에서 올바른 것을 실천하고 있지 않은가.
가끔 즐거운 범위를 넘어서서 올바른 것을 실천하는(이 말도 참 그렇긴 하다) 경우라도 앞으로 오래 훨씬 즐거울 만한 일을 기대하면서 잠깐의 귀찮음이나 고통을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난 그 '편안함'에 대해 물어야 하지 않을까 싶소.
좀더 직설적으로.
너의 '편안함'이 나의 고통으로 연결된다면, 그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공동의 책임을 질 수 있을까?
라고.
생각도, 몸도 하루 아침에 쉽게 바뀔 리가 있겠소.
사는 사람들끼리 마음 맞추는 게 무엇보다 먼저일 것 같아.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내일 액숀팀 모임에서 이야기해보까?
비밀방문자 2009/10/28 03:38 URL EDIT REPLY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지각생 | 2009/11/20 16:44 URL EDIT
흠... 왜 이말씀을 비공개로 하시는지 이해가 잘 안되네요. 메일을 제가 놓친 것 같은데 죄송하지만 다시 한번 보내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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