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누 석방을 위한 문화제에 어제 다녀왔다.
미누랑 같이 사는 사람들이라는 의미가 있고,
금요일 낮이라 공연팀 섭외가 힘들기도 해서(이게 좀 더 크지 않았을까나)
빈집 사람들이 노래를 해달라 했단다
그래서 디온의 주도로 이무기(제프)랑 지각생 세 명이 팀을 급조, 미누가 속한 "스탑크랙다운" 밴드의 두 곡을 부르게 됐다.
연습 시간은 어제 하루, 고작 네 시간.
그래도 디온이 멜로디혼에서 고물 건반으로 업그레이드!(Gold Star 마크가 떡!) 한덕에 코드도 금방 따고
집중해서 연습해서 나름 만족스럽게 두 곡을 소화?했다.
저번 용산에서의 공연보다는 조금 더 낫겠다는 기대와 자신감을 갖고 연습 마무리.
* 나도 왠지 내일은 잘 될 것 같다는 근거없는 자신감에
컨디션 조절을 생각지 않고, 밤 10시가 넘어 빈집의 "밥그릇 빈"팀이 주방을 맡은, "마마디 케이타 젬배 & 아프리카 댄스 후원의 밤"이 열리는 홍대로 갔다.
늦은 탓에 공연이 거의 끝나고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럼 써클을 하는 분위기.
깡뚜껑, 아침의 멋있었을 공연을 못봐서 아쉽다.
주방 일도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긴터라 할일도 딱히 없어
술이나 먹자! 자전거 메신저 나은과 그의 여친이랑 놀았다.
드럼 써클엔 끼지 않고 슬쩍 젬배를 가져다가 자리에서 소심하게 두들겨 보는데
퍽퍽 소리만 나다가 계속 치니까 조금 통통 소리가 났다.
광화문 촛불과 용산에서 드럼 써클을 두번 접했는데, 처음에는 소심했고 두 번째는 화장실 다녀온 사이에 젬배가 동이 나서 함께 못했다.
그리고 이때도 늦게 와서? 못했다. 11시 반에 마지막으로 드럼 써클을 한다길래 기대했더니, 아니 사람들이 그때까정 도무지 쉴 생각을 안하고 계속 젬배를 치더니 결국 그냥 끝나버리더라 -_-
그래도 옆에서 듣고 보는 것만으로도 열이 나고 심장이 두근두근했다.
"밥그릇 빈"에 합류해서 잔반, 잔주 일부를 처리하고, 정리를 돕고 마무리.
거기가 나모리 젬베숍이었을까? 깡뚜껑, 아침 등과 가볍게 뒷풀이를 하고 빈집에 돌아왔다. 새벽 세시.
* 잠든 건 거의 네시 가까이 됐을 것 같다.
잠 깨니 아침 7시. 베라가 일어나서 한참 부엌일을 하고 있다. 요즘 아랫집은 베라와 화림이 부엌일을 참 많이 한다. 다른 사람들은 요즘 잘 하지도 않고, 가끔 뭘 해도 뒷정리를 잘 안해 이렇게 숙련된 몇 사람이 남 모르는 시간에 노동하게 한다. 나도 요즘은 부산영화제, 미누, 내 일 등으로 바빠서 아랫집 부엌일을 거의 안했다. 그리고 그새 "부엌일 게으름"이 살짝 몸에 밴 것도 같다. 사람이 바뀌어도 역시 몇 사람이 대부분의 일을 하는 거는 크게 바뀌지 않은 것 같아 아쉽고, 나도 미안하다. 다른 사람들에게 짜증이 나기도 하고. 괜히.
공연은 낮2시부터지만, 오전에 기자회견부터 시작하는 일정에 함께 하기 위해 일찍 가기로 한다.
아침 9시에 남영역에서 디온, 제프와 만나기로 했으니 아침 8시 반에는 나가야한다.
7시부터 잠이 깼지만 더 자야 한다는 생각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뒤척였지만, 베라가 부엌일을 한참 혼자 하는 소리가 계속 들려 결국 더 못잤다.
일어나보니 기운이 허하다. 그냥 피곤한 느낌과 다르다. 요즘 4시간 이상 잠을 잔 날이 거의 없고, 술도 거의 매일 마시게 되어 원기가 좀 상한게 아닐까. 잠들기 직전 있었던 일로 마음이 무거워진 탓도 있을까. 그래도 늦지 않게 준비해서 집을 나왔다. 제프가 아침에 전화를 안 받아 디온이 깨우러 갔고, 나 먼저 남영역에 도착해 그들을 기다렸다.
멍 때리고, 미누 기사가 1면에 난 경향신문을 사 보고
기타 치며 노래도 불렀다 지하철 역 플랫폼에서 노래 부르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미누 기사를 잘 보이게 해놓고 기타를 쳤는데 사람들의 관심은 당연히 그닥 못 끌었다.
안티고네, 디온, 제프가 도착해 화성으로 출발.
* 다행히 늦지 않아 기자회견을 같이 했다.
어제 밤부터 내리는 비, 천둥과 바람과는 전혀 다르게 어제 낮에는 가을 볕이 쨍쨍 내리쬔다.
부끄러운 것은 없으나 태양을 피하고 싶어 피켓으로 얼굴을 가리고 사람들의 발언을 듣는다.
이번 기자회견도 기자 없는 기자회견이 되나 싶었는데 그래도 경향신문에서 취재를 왔더라.
점심을 먹고 나니 제프와 내 컨디션이 급 난조를 보인다. 얼굴이 벌개진 제프는 숲?에 들어가 맨땅에 누워 쉬고, 나는 "첫날밤"을 잠깐 보냈던 교도소 입구 대기실에서 잠깐 누워 쉰다. 몸이 너무 피곤하니 배고픈것도 못느껴지고, 점심 밥 한공기를 먹는데도 입에 꾸역꾸역 넣어야 했다. 제프는 한쪽 발에 감각이 없다. 혼자 기타 치며 노래를 부르는데 목소리에 기운이 없다.
당연히 우리(빈집 밴드)가 제일 먼저 해야 마땅하나, 미누 면회가 늦어져 문화제 시작이 지연돼서, 다른 급한 사람이 먼저 하게 됐다. 말로는 잘 못한다 해놓고 어려운 거 막한다. 나는 제프를 보고 웃고, 디온을 보고 웃는다. '우리 두곡만 하고 내려오자 ^^;;'는 메시지가 오고 간다. 그 다음은 시낭송. 빨간 장갑을 끼고 노래하던 미누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우리 차례.
* 시작부터 세명이 우왕좌왕하며 개그를 시전한다. 사람들의 긴장이 풀려간다.
마이크와 선이 부족해 제프만 기타를 치고, 디온과 내가 노래를 부른다. 첫노래는 "월급날".
"오늘은 나의 월급날, 가슴이 두근두근합니다"
막상 마이크를 잡으니, 어디서 힘이 남아 있었는지 갑자기 솟아나서 힘찬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연습할 때보다 더 힘차게 나온 것 같다. 아싸 자신감 회복. 지각생 무리하기 시작한다. 두번째 노래는 "와"
"와~ 푸른 하늘 저 넓은 바다 너무도 자유로워~"
연습할 때 이 후렴구의 맨 뒷부분이 분명 올라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음에도! 그래서 신나는 노래지만 내 목소리대로 낮춰 부르기로 해놓고, 그리고 디온이 노래를 시작하면 중간에 끼어들기로 했음에도! 처음부터 목청을 높여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신감은 자신감일뿐, 현재의 물리적 상황을 많이 뛰어넘을 수는 없다. 역시 처절한 멱따는 소리와 함께 지각생과 마이크는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이때 이미 지각생은 최후의 힘을 끌어내며 정신이 외출나온 상태가 되고 있었나보다. 2절에서도 또다시 주제와 상황을 잊고 또 높여부르다 좌절. 그래도 다른 부분은 즐겁고 신나게 불렀다고 스스로 만족하며 노래를 마쳤다.
그리고 쇼타임은 계속되었다. 이 "와" 노래를 함께 부르기로 되어 있었는데, 사람들에게 한 소절씩 가르쳐 주고, 처음부터 다 같이 부를때 마이크를 잡고 관객들에게 달려가 그들에게 마이크를 들이댄다. 당연히 그렇게 하면 부를 수 있는 노래도 못 부를 것을 -_- 점점 사람들의 목소리가 가라앉는다는 느낌이 들자 지각생, 결국 마지막 후렴구에서 혼자 신나서 방방 뛰며 춤을 추는 절정의 무리수를 보인다.
그래도 사람들이 웃기라도 하니 거기서 만족하고 끝냈으면 좋았을 것을. 아... 준비해간 앵콜곡 "콘크리트 정글"을 너무 사랑한 남자, 제프가 "자체 앵콜"을 부르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다. 멤버의 요청을 무시할 수 없는 다른 이들은 결국 콘크리트 정글까지 부르며 분위기를 한층 더 차분하게 하고 공연을 마쳤다.
* 이어, 라무의 퍼포먼스 - "자유", 연영석의 공연이 이어졌다.
이것이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다!를 역력히 보여주는 포스.
멋진 공연을 보고, 들으니 관객들이 눈과 귀가 정화된다. 지각생은 "그래도 우리는 우리가 해야할 역할을 한 것이다"고 거듭 되뇐다.
퍼포먼스에서 시작해서, 미누가 쓴 편지를 읽는 순서에서 사람들의 슬픔이 극에 달한다.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 미누와의 인연, 기억을 얘기하는 사람들.
근데 난 안타깝고 아쉽긴 해도 그렇게까지 슬픈 느낌이 들지 않는다.
알고 지낸 시간 만큼 내가 미누랑 깊이 속을 터놓고 친하게 지내지 않아서일까
함께 여러 활동을 하며 많은 추억과 감정의 여운을 남겨 놓지 못해서일까
그냥 나는 사실 감정이 메말라버린, 다 타버린 녀석이 아닐까
사람들이 슬퍼하는게 이해 되지만, 그 자리에서 그렇게 다들 슬퍼하는 건 싫다.
왠지... 아직 슬퍼하기에도 이르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왜 그렇게 지금 슬픈 감정이 북받치는 걸까
미누는 우리와 단절되긴 했어도 아직 한국에 있고, 싸우고 있고 그래서 우리와 함께 하고 있는 건데
미누가 우리에게 원하는게 과연 그것일까? 내가 백번 지나친 생각이라는 거 알지만 역시 이런 슬픔은 이기적이거나 무책임한 건 아닐까
미누가 만들고 부른 노래를 난 즐겁게 불렀다.
어찌 보면, 아니 사실 난 개념이 없는 사람이겠지. 정말 감정이 메마르거나 나밖에 모르는 사람일지도 모르지.
그래도, 만일 내가 지금 당장 그동안 모르던 사람을 만나 얘기해야 한다면
미누가 이런 좋은 노래를 만들고 부르며 사람들에게 힘을 줬어요라고, 웃으며 노래를 불러줄 것 같다. 그 가사들에 담긴 아픔을 느끼면서도.
마지막 퍼포먼스에서.. 난 그냥 "우리 친구를 돌려줘!"라고 상투적인 말을 적어 붙였다. 그러나 사실 이 말 외에 지금 무슨 말을 할까 싶었다.
* 집에 돌아와서, 난 모든 에너지를 다 소모한 사람처럼 텅 비어버렸다.
잠을 자러 이른 저녁에 누웠지만 잠은 오지 않고 모든 감각기관은 예민해져서 주변의 모든 소리와 움직임이 느껴진다. 감정은 날카로워지고 부정적 기억과 망상들이 떠오른다. 요 며칠간 내가 스스로 만들어갔다고 생각한 "내가 원하던대로의" 변화가 저 뒤로 물러나고, 그 동안 힘을 잃었던 어두운 것들이 다시 스멀스멀 올라와 날 사로잡는다.
결국 술을 마시며 잠을 청하고, 다시 노래를 부르며 풀어보지만 여전히 잠은 오지 않는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천둥과 번개가 친다.
방에서 나와 옥탑방에 누워 정면에 보이는 큰 창을 통해 밖을 바라본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천둥 번개가 친다.
긍정적인 마음을 갖기 위해 준비해 둔, 온갖 기제들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건만 난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다. 무기력, 완벽한 무기력. 내게 소중한 것을 앗아간 사람에 대한 동일시. 그렇게라도 갖고 싶었던 것에 대한 폭력적인 상상과 자위.
나에 대한 복수는 한참을 더 이어지고, 철저하게 무너진 나를 보며 조롱한다. 그리고 그제서야 비로소 잠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