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생의 마음

잡기장
요 며칠 몇가지 패턴을 살짝 바꿨더니 사람들의 걱정을 좀 샀다.

* 빈집2(윗집) 이사 바로 다음날부터 빈집을 나와 증산동 집에 와 있고
  전화 통화로 한 말도 "쉬고 싶다", "혼자 있고 싶다" 이랬고
* 가만히 있다가 정보통신활동가 메일링으로 까칠 메일을 보내고
* 사람들이 놀자 술먹자 해도 별로다 바쁘다며 마다하고
* 블로그도 갑자기 쓰는데 재개통 포스트가 아리송하고

직접 대하던 전화로 말하던 차분히 천천히 얘기하고 그랬더니
과연 뭔일이 있구나 라고 생각할 만했는 갑다.
내 스스로도.. "아 이렇게 말하면 요런 걸로 생각할 수도 있겄네" 싶지만
그냥 당분간 편하게 나오는대로 말하기로 했다.

그래도 빈집 사람들이 특히 걱정을 많이 하나보다 싶어 어제는 오해도 풀겸, 뭐 좀 챙기려 빈집에 들렀다. 역시나 다를까 "지심은 무엇인가?"를 화두로 한참 얘기를 했다고 한다. ㅋ 억측과 추측을 풀고 사라지기 전 못다한 얘기도 좀 하고는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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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요즘 좀 피곤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요 몇달간 계속 이런 저런 일이 늘 있었고, 차분히 내 자신과 대화하거나, 사람들과 천천히 여유있는 대화를 나눌 시간이 많지 않았다. 다양한 사람들이 거쳐가고 늘상 새로운 일이 일어나는 빈집에 있으면서 특히 에너지 소모가 많았다. 즐겁지 않아서가 아니라 즐거운게 너무 많고, 따라가고 몸을 맡기고 싶은 흐름이 많다보니 계속 나를 그 속에 던지며 쭉 흘러온 탓이다.

블로그를 한동안 안쓴 것도 여러가지 원인이 있지만 그런 "여유 없음"도 큰 몫 했다. 지각생은 원래 혼자 청승떨며 이리저리 노다니기를 즐기던 사람이었는데, 올해 들어서는 정말 혼자 있을 시간이 거의 없었다. 벌인 일은 많고, 조금이라도 더 붙들고 잘해보고 싶은 게 많아서 놓지 않고 있다보니 일은 일대로 내게 스트레스를 주고, 뭔가 하나 마치고 나면 피로와 허탈감이 몰려와 고생했다.

그 밖에는 내가 좋아했던 사람에 대한 미련이 생각보다 오래 남아 있어 힘들었고, 지금 좋아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제대로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해 스스로 답답해 한다. 사실 다른 것보다 이 점이 나를 안에서 불태워 힘들어한다고 봐도 좋겠다. 이런 상태로 몇 달 지내다 보니 정말 안으로 밖으로 힘들었는데 그냥 저냥 지내왔다. 근데 더 이상 이러면 안되겠다 싶다.

뭐 그렇다고 용단을 내리고 과감히 뭔가를 정리하고, 착착 해결해 나가고 이런 성격도 아닌지라 상황이 금방 나아질리는 없다. 그래서 내게 휴가를 주기로 했다. 다만 빈집에 중요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어 조금만 더 에너지를 쏟기로 하고 버티다가, 지난 주 금요일 세미나 준비가 안돼서 한 주 미루게 되고, 주말에 빈집2 이사를 마친후 에너지가 일시적으로 똑 떨어졌다. 그래서 이번주 월요일 아침, 빈집에서 눈을 뜨고 결심했다. "휴가를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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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원래 말하려던 것보다 또 늘어났다. -_-
휴가라기보단 "변화"를 준 거라고 말할 수 있다. 몇 주간 얼굴도 안 비친 집에 가서 안방에 컴퓨터 설치하고, 방 정리하고, 겨울 옷을 꺼냈다. 겨울 옷이래봤자 얼마 되지도 않는데 그나마 스타일이 영 아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그냥 별 신경 안쓰고 따시고 편하면 입었는데 올해는 좀 보게 된다. 아... 정말 이런 걸 입고 다녔었나. 에혀, 물론 늘 얻어 입다시피 하긴 했지만 조금 더 욕심 좀 낼걸. 이 글 보시는 분덜, 겨울 옷 안 입는 거 있으면 좀 주세요. (말 끝나기 무섭게 이렇게 말하다니 -_-)

한 이틀 정도 집과 직장만 왔다 갔다 했더니 이제야 "혼자 있던" 때의 마음이 살짝 되돌아 온 것 같다. 생각같아서는 한 달 정도는 더 혼자 있고, 일 좀 해놓고는 여행이라도 휙 다녀오면 좋겠다. 그저께는 용산에서 부품을 몇개 사고 오는데, 용산역에서 문득 바람이 불었다. 아.. 그냥 저 열차 아무거나 타고 어디론가 가버릴까. 잠깐 상상을 하고 보니, 내 손에 들고 있는 전자제품 부품이 산통을 깨놓는다. 늦가을에 훌쩍 떠나는 여행... 하지만 한 손엔 전자제품들이 담긴 비닐 봉지. 이건 좀 아닌 것 같다. -_- 담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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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조용히 살았더니 조금 마음이 편안해진 것도 같다. 물론 일하러 와서는 막 속도를 올려 이것저것 하니 다시 멍해지지만, 나머지 시간에는 그동안 하려다가 못한 것들이 하나씩 조용히 수면 위로 올라와 천천히 되짚으며 해결하곤 한다.
예전 만큼 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불로그에 와서 "쓰기" 버튼도 여러번 누르게 되고.

아우... 이거 어느새 혼자 중얼중얼거리는 흐름에 내 손이 맡겨져 있네. 일단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 어여 퇴근하자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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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27 20:39 2008/11/27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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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온 2008/11/27 21:52 URL EDIT REPLY
둘째 단락... 미투.
지각생 2008/11/28 01:01 URL EDIT REPLY
허허 디온도 좀 쉬시게.. 말이야 쉽지만
공룡 2008/11/28 09:39 URL EDIT REPLY
내 옷은 좀 안맞겠지? 그저 토닥...토닥... 물끄러미...
붕자 2008/11/28 12:08 URL EDIT REPLY
나도 안 입는 겨울옷 있는데..아쉽네요..==;;
지각 2008/11/28 12:58 URL EDIT REPLY
공룡// 그르게, 쬐끔 안 맞겠소 ㅋ
붕자// 이렇게 아쉬울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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