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을 보다

잡기장
일요일, 서울 서북부 리눅스 사용자 모임에 나갔다. 말 그대로 서울 서북부 - 은평, 서대문, 종로에 사는, 리눅스 사용자들이 모이는 건데, 설치축제때 와서 많은 도움을준 jachin 님이 꾸준히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벌써 1년 넘게 매주 일요일(물론 몇번 쉬긴 했지만)마다 열리고 있는데, 대개 무선랜이 되고, 컨센트가 있는, 여럿이 모일 수 있는 곳을 찾아 전전한다. 어떤 사람은 노트북을 들고 와 재미난 것들을 하고, 어떤 이는 책을 보며 공부를 한다. 어제로 해서 딱 두번을 나갔는데 사실 첫번째는 jachin 님과 울 노조 위원장하고 북한산에 갔다가 내려와 그 당시 모임 장소로 쓰이던 햄버거집에 간 거였으니 이번에 제대로 첨으로 나간 셈이다.

리눅스 설치 축제를 한 취지도 그렇거니와 이게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이고 배경 지식을 습득하지 않으면 온라인에서만 정보를 얻으며 혼자 문제를 해결하는데는 어려움이 많다. 문제 해결만이 아니라 새로운 걸 접하고 실험하는데도 지장이 많다. 그래서 오프라인 모임이 필요한데 한국에는 이런 상시적인 오프라인 모임은 그닥 많지 않다. 아 물론 내가 아는 선에서. 다른 카페나 소그룹 커뮤니티는 꽤 있을지 모르지. 하지만 그것들은 대개 일반 공중에게 열린 것이 아니니(막진 않았겠지만) 그것으론 부족하다. 일단 이 "서북부 모임"을 보면 알 수 있듯, 아무때나 부담없이 자유롭게 접근할 공간이 우선 별로 없다. 게다가 컴퓨터 여러대 가져가서 전기 쓰고 인터넷 하고 그러기엔.

그래서 늘 나도 나가야지 나가야지 그랬지만 항상 주말에도 일하거나 교육 어쩌구 해서 늘 바빴고, 간혹 할 일 없을때는 purge 모드가 되서 굼뜨고 멍해져 오늘 뭔일 있나? 웅.. 하며 파워 오프되곤 했다. 사실 이번 주 일요일도 저번 포스팅에서 묘사했듯 심각한 purge 모드였는데, 바로 전날 jachin님이 도와주신 것도 있고, 또 뭔가 했다는 데서 오는 자신감, 흐름을 탈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 그리고 이제 활동가들 말고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싶다는 마음도 있고 해서 집에 안가고 모임에 나갔다.

하지만... 장소가 맘에 걸렸다. 스타벅스 신촌점. orz 왜 스탑욱스 란 말이냐.. 일요일이면 문화연대 같은 곳에 공간이 빌테니 그리 가자고 해볼까? 신촌 근처에 혹시 빈 공간 없나. 무슨 단체라던가.. 아무리 헌신적인 활동가들이 착취되는 단체라도 일요일은 여유가 좀 있을테니. 누가 제보좀 해주시라.

가보니 두 사람이 와 있었다. jachin 님과 논리에러님. 자리 보전용 커피 한잔씩 시켜놓고 계속 삐대고 있었다. jachin 님과는 여러번 봐왔고 논리에러님은 처음 만났는데, 어색하기 그지 없다. 어제 축제날 너무 많은 내공을 쏟아낸 탓일까? 그때는 뻔뻔하게 뻘소리도 하고 웃긴 소리도 좀 하고 그랬는데 뭔말을 할지. 피곤한 탓인지 내 기분도 약간 처지고 ㅎ. 보아하니 내가 가기 전에도 수다를 다다다 떠는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던 듯 싶고, 그냥 그 좁은 동그란 탁자에서 묵묵히 참선(?)하는 분위기였던듯 싶다. 절대 선입견에 의하면 공학계통 남자들이 모였을때 전공, 기술, 게임 얘기하다 화제 떨어지면 보통 되곤 하는 분위기 ^^;



jachin 님은 노트북이 사망하시어 아쉽게도 그 많은 재미난 것들을 못 보여주게 돼었다. 토요일 "축제"때도 상당히 아쉬웠다. 원래부터 알고 있던 내공인지라 아주 아주 재밌고 신기한 것들을 보게 되리라 기대했는데, 대신 다른 참여자 분이 베릴(beryl)로 육각 화면을 마구마구 돌리는 걸 자신의 노트북으로 선보여준 것으로 만족했다. 그래서 jachin은 책을 보며 공부 모드 "리눅스 디바이스 드라이버" - 나도 사놓고 잘 모셔놓고만 있는 책이다. -_-; 흑흑 그 돈이면 떡볶이가 몇인분이야. 논리에러님은 노트북은 있는데 네스핏 아이디가 없어 무선랜이 안되는 상황. 나는 네스펫 아이디는 있지만 무선랜 카드만 맛이 간 상황.... 결국 세 사람은 각자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책과, 게임과, 드라마.. -_-

그렇게 몇 시간을 버티다보니 몸까지 찌뿌듯한 지각생이 먼저 한계에 부딪쳤다. 배도 무지 고프다. 시간이 되서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했더니 한 사람 더 올건데 같이 가자고 한다. 언제 오는지 물었더니 7시.. orz  이제 게임도 지겹다. 무작정 논리에러님을 붙잡고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주로 내가 계속 물어보고, 대답하면 맞장구 치고, 다시 물어보고 하는 식이었지. 동생이 뭐하냐 사이는 좋냐 나는 무지 싸웠다. 맞기도 많이 맞았다. ... 그러다 보니 아희님과 lancomb 님이 왔다. 천안에서 올라와 인천 집으로 가는데 정종 사주겠다는 약속에 들렀다고 하는.. ㅎㅎ 나가서 주로 가던 고기집에 갔다. 나는 버섯을 구워먹기로 하고. 그런데 언제나 그렇듯 사람들이 버섯이 있으면 고기보다 더 좋아한다. (우씨 다 그러면 나 뭐먹어 -_-) 된장 찌개와 채소를 거의 혼자 아작냈다.

밥을 먹고는 정종 한잔 하러 갔다. "2차맨" 지각생이 자전거 타고 돌아다니며 일본식 선술집을 찾아냈다. lancomb 님은 피곤해서 먼저 가고, 넷이서 정종을 마시면서 이번에는 도란도란 얘기를 좀 나눴다. 이국적인 분위기에서 자연히 다양한 음식 문화, 여행 이야기들로 화제가 넘어간 덕에 얘기가 좀 됐다. 만물박사 jachin은 역시 무엇이 만들어지는 메커니즘들에 대해 상세히 알고 있다. 소주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아희님은 나이에 비해 많은 여행 경험을 갖고 있고, 지각생도 지금 불안해지긴 했지만 유럽으로 자전거여행을 간다는 얘기 등..

선술집을 나와, 덩치에 맞지 않게 정종 한 잔에 눈까지 빨개진 jachin이 ㅎㅎ 운동으로 풀어야 한다며 드럼매니아를 하러 가고, 나도 따라가 오랫만에 오락실로 갔다. Time Crisis 3가 나왔네. 마지막으로 언제 왔는지 모르겠다. 나는 오락실에 가면 최소 비용으로 최대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게임만 한다. 1:1 대전 게임은 그래서 제일 안 좋아하는 부류. 내가 즐겨하던 최고의 게임은 "대마계촌"류. 100원으로 끝판을 깨고 다시 처음부터 한 번 더 할 수 있는데 느긋하게 하면 1시간 이상 충분히 삐댈 수 있다. 그런게 사라진 후 스노우 브루스, 테트리스 등으로 옮겨간 후 내가 정착한 것은 "틀린그림찾기" :D

틀린그림찾기는 화면 양쪽에 있는 그림에서 다른 부분을 찾아내는 게임이다. 어설픈 뽀샵질을 해서 찾기 쉬운게 있고, 사람의 심리를 잘 이용해 좀처럼 찾기 어려운 것도 있다. 한 판마다 5개의 다른 부분을 찾아내면 되는데 못 찾아낸 만큼 라이프(보석)가 줄어든다. 보석은 5판에 한번씩 보너스 게임이 있는데 그걸 클리어하면 하나씩 늘어난다. 지각생이 강한 부분이 바로 이 보너스 게임. 50판이 끝판인데 총 9번의 보너스게임에서 8번을 성공하면서 생명을 연장하고, 같이 간 네명이 함께 다른 부분을 찾아내며 정말 오랫만에 한 게임인데 끝을 보고 말았다.



그리고 마지막은 자전거로 한강을 달린 디디와 홍드릭스, 부깽과 홍대에서 만나 가볍게 한잔 하며 마무리. 디디는 자전거를 가게에 맡기고 집에가고(습관될라..) 홍드릭스는 나와 함께 첫 도로 주행을 하며 구산동 집으로... 부깽은 다시 한강을 건너 남쪽에 있는 집으로 갔다. 아직도 뭐가 남았는지 에피소드는 계속되고.. ㅎㅎ  끝을 본 일요일. 덕분에 어제 월요일은 내내 고생했다. 이제야 조금 상태가 좋아진 듯. 자, 또 달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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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15 14:17 2007/05/15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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