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의 생존이 고민의 대부분이었을때는, 상황에 적응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것을 위해서는 내 생각을 분명하게 표현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그렇지 않는 편이 유리하다. 먼저 나서기 보다는 사람들을 따라가는 게 편하며 안전하다. 안전을 확보했을때 - 내가 받아들여졌다고 느낄때 - 비로소 적극적인 주장을 펴거나 과감한 행동을 취하거나 새로운 길을 찾는다.
따분한 조직, 곤란한 상황, 부담스러운 책임등은, "나"만을 생각하며 살면 얼마든지 적당히 발을 디뎠다가 뺐다가 하며 통과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껏 그렇게 살아올 수 밖에 없었고, 모두가 그렇게 하는 것이며 그것이 현명하다는 생각으로 살았다. 이런 비슷한 말을 하는 사람들은 주위에 평범한 사람들로부터 현명한 신비주의자들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그래서 .. 지금까지 계속 그렇게 살았다.
정말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내 주장을 있는 그대로 내세우지 않았다. 부모님이 종교활동을 강권했을 때처럼 정말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거칠게 내 생각을 얘기하지만 대부분은 그저 살짝 흘리는 것으로 충분하다. 적당히 둘러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살짝 부족하게, 뭔가 더 있어보이게, 더 깊이 생각하거나 멀리 내다보는 것처럼 말하는 방법을 익히는 것은 굉장히 유용하다. 그런 방법으로 간접적으로 내 의도를 관철시키면서 치명적인 위기 상황으로 몰려 책임을 지는 것은 피할 수 있으며, (끈끈한 동지는 적을지언정) 적을 많이 만들지 않는다.
직접 대면해서 얘기하는 것, 일대일을 넘어선 일대다, 그리고 무대, 선두 이런 상황들에서 특히 어려움을 느낀다. 동시성이 없고, 수정이 가능하며, 많은 것을 함축하고, 끊김, 상황에 무관하게 일정한 만큼 내 말을 쏟아낼수 있는 글이 내겐 더 편했다. 특히 학교 때 "날적이", 그리고 지금의 "블로그". 상황으로부터 (완전히는 아니지만) 자유롭기 때문에 어쩔때는 스스로 놀랄만큼 솔직한 말도 나오기도 하고, 평소에 정리하지 못했던 생각들이 글을 쓰면서 하나로 꿰어져서 나오기도 한다. 내가 쓴 글을 통해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뭘 원하는지 발견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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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을 2년가까이 했다. 자원활동기간은 부담없이, 어려움은 적당히 피해가며 할 수 있으니 빼고, 한명의 활동가로 책임을 지고 그만큼, 짧다고 할 수 있는 시간동안 있었다. 그동안 느낀 것은 내가 피해갈 수도 없고, 피해가서도 안된다는 것과, 내가 하는 말과 글이 (행동과 또 다르게) 다른 사람에게 전보다 많은 영향을 미치고, 나를 규정하며 내 이후 활동의 방향을 규정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제 적당히 둘러 말하며 문제의 본질을 피할 수 없고, 내가 생각하는 것을 그대로 - 정확히 말하면 "운동권에서 통할 만하게" -표현하는 법을 스스로 익혀야 한다는 것. 내게 이것은 큰 어려움이었다. 또한 그렇게 말을 하려고 시도할때마다 겪게 되는 한계들 - 생각을 "이런 식으로" 표현해야 한다는것.
2년의 시간이 헛되지 않아 이제 어느 정도 알게 되어 간다. 어떤 식으로 말해야 주위 사람들이 조금은 더 관심을 갖게 되는지. 그리고 어느틈에 내가 하는 말과 글, 행동에 생각보다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생긴것 같다는 것. 그리고 이제 나는 다시 나의 말하기에 대해 고민과 반성을 해야한다는 것.
내가 말한 것들, 과방에서 혼자 끄적인 날적이에서부터 소속된 조직 내부에서의 거친 주장들과 여기 블로그에 이르기까지. 난 정말 무슨 말을 하려했던걸까. 왜 그런 말을 했던걸까. 사실 난 늘 알고 있었다. 관심과 인정, 사랑을 받는 것이 나의 제일 관심사였다는 것을. "생존"에 대해 고민할 수 밖에 없었던 내가 취했던 가장 현명한, 전략, 그것이 성공과 실패를 부침하며 습관으로 굳어지고, 그런 말하기 방식으로 표출된 것으로 다시 스스로를 인식하고 규정해 왔다. 이제는 적극적으로 뿌리치려 애쓰거나 술을 진탕 마시거나, 관심받고 싶은 사람에게 어필하지 못하고 있다는 두려움에 떨거나 했을때 그럴 듯한 말이 나온다.
그런 것이 전혀 이상한 것은 아닐 거다. 누구나 관심과 인정, 사랑으로 안전을 추구하니. 다만 말하는 "큰 목적"이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나를 드러내 어떤 위치를 확보하는 것인지, 아님 정말 말하고자 하는(뜻하는 바가 그대로 표현됐다면) 것을 "현실화"하려는 것인지에 따라 말하는 방식이 바뀔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상황에 맞게, 듣는 사람에 맞게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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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내가 말하는 것을 "정말" 현실화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하는 지 고민중이다. 늘 그래왔듯 변하지 않는 현실, 조건들을 개탄하며 했던 말을 최신의 내용으로 업데이트해 다시 말하며 그렇게 살 수도 있다. 실제로 그렇기도 하다. 지금 한국의 운동권이 갑자기 수평,분산 네트워크 시스템으로 바뀌고 획일성을 벗어나 다양성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우세해지며, 한국사회가 기부,토론,기록 문화가 활성화 되고 공공의 인프라가 확대될 가능성은 많지 않다. 이런 속에서 외국의 사례-(한국에 적용가능성이 의심스러운)를 얘기하거나 현실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좌절하여 동정심을 유발하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고, 그러다가 혼자 지쳐 떨어져 나가는 형태를 취했다가 다시 돌아오는 액션들을 취할 수도 있다. 그리고 어느틈에 그런 식으로 되어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되는 건 싫다. 그렇게 되지 않기로 했을때 겪을 어려움이 뻔히 보이지만 그렇게 끝까지 적당히 살아가다 나이 먹고, 나중에 옛날을 돌아보며 현실 운운하는 사람이 되는 상상이 더 끔찍하고 싫다. 정말 무언가를 바꾸어 내고, 이루어 내기 위해서는 뭘해야 되는 건지. 짧은 경험에서나마 지금의 운동권이던, 어디에 있는 어떤 똑똑한 사람도 "정답"은 갖고 있지 않다는 것, 맘먹고 달려들면 생각보다 적은 질문으로 그 사람들의 "지식" 과 "통찰"을 그저 "신념"이었다는 것을 밝혀낼지도 모르겠다는 것을 느낀 이상, 역시 내가 늘 하는 고민도 역시 답이 없고, 답이 없거나 지금의 차원에서 보이는 "해법"으로는 풀 수 없을지 모른다는 것. 그러니 나도 "신념"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 나는 "신념"이란 걸 싫어했다 - 그거에 따라 일단 할 수 있는만큼 해봐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문장이 길어지네. 맘에 안들게)
고민은 계속할 거다. 하지만 행동에 방해가 될 정도의 지나친 고민을 하진 않는게 낫겠다. 흠... 근데 이번에도 내가 말하려 했던 포인트가 뭔지 모르겠다. -_- 하던 일 쉬던 중 다시 관심받고 싶어 포스팅함.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