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 들어 오늘 부산 날씨가 가장 추운 것 같다.
카메라 색 재현 차이를 좀 알아보려고 카메라를 꺼내 들었는데 손이 시려워 카메라를 오래 들고 있을 수가 없을 정도다. 부산은 이 정도로 추운 날이 드문데 오늘은 유난히 춥다.

 

아주 단순한 호기심에서 해 보았는데 차이가 너무 나서 실망. 역시 필름이 최고다. 그런데 요즘 필름 가격이 올라 비용이 만만찮게 든다. 코닥 24판 필름 3000원, 현상 2000원, 스캔 3000원. 여기에 몇 장 인화하면 필름 한 통 찍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1만원 가까이 든다.


니콘 FM2는 지난10월 늦은 가을에 찍은 것을 현상하고 스캔한 거라 포토샵에서 색 보정을 하지 않았다. 앞의 둘은 동일한 곳에서 각각 촬영하고 포토샵에서 Auto Contrast로 보정을 했는데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을 재현하는 색상 차이가 너무 크다. FUJIFILM Finepix Z1으로 찍은 하늘이 내가 눈으로 직접 본 하늘 색에 더 가깝다. 니콘 D3100은 FM2에 달린 50mm 수동 렌즈를 사용했는데도 색 재현 능력이 이 정도면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DSLR은 비쌀 수록 좋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구나. 

 

1. 니콘 D3100(2012년 구입, 1400만 메가픽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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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FUJIFILM Finepix Z1(2005년 구입, 51.메가픽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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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니콘 FM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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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30 16:31 2012/12/30 16:31

[녹색세상]우리가 더 오래 살아야 한다

이문재 | 시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 경향신문 2012. 12. 13.

 

선거벽보를 보고 새삼 놀랐다. 4 대 3. 여성이 더 많았다. 내게는 이번 대통령 선거가 여섯 번째인데, 여성후보가 이렇게 많은 경우는 처음이다. 하지만 여성의 약진은 쟁점으로 떠오르지 않았다. 잠깐 논의되다 말았다. 여전히 박정희, 노무현, 이명박 등 남성의 그늘이 더 컸다. 무엇보다 안타까웠던 것은 우리 사회가 여성과 여성성, 즉 성차-생물학과 성역할-사회학의 차이를 구분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었다.

 

최근에 나온 강금실 변호사(전 법무부 장관)의 <생명의 정치>(로도스 펴냄)를 읽고 나서 아쉬움이 더 했다. 강 변호사는 여성의 관점에서 생명, 권력, 생태의 현주소를 해부하면서 여성이 새로운 세상을 열어나갈 주체라고 강조한다. 강 변호사의 시계(視界)는 의외로 넓다. 인간을 바라보는 스케일부터 남다르다. 토머스 베리의 우주 존재 모델을 빌려 인간을 다시 정의한다. 인간은 하나(빅뱅)로부터 분화된 다양성(차이), 각 개별체의 내적인 명료성(개체성), 교제의 친밀감(관계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같은 인간의 특성을 발휘할 수 없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차이는 차별로, 개체성은 파편화된 개인주의로, 관계성은 공동체의 파탄으로 역전돼 있다. ‘생명의 정치’는 결국 ‘정치의 생명’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다. 권력 쟁탈을 유일한 목표로 설정하고 있는 현실정치는 국민을 온전한 생명으로 대우하지 않는다. 현실정치에서 국민은 몇 년에 한 번씩 애걸복걸하다가 선거가 끝나면 입을 싹 씻어버리는 ‘한 표’일 따름이다.

 

 

이번 대선정국에서 강 변호사의 문제 제기가 유의미한 까닭은 상상력 때문이다. 경제민주화, 국민대통합, 새정치, 복지, 반값 등록금 다 좋다. 하지만 대선 후보의 공약에서 장기적이고 심층적인 관점은 찾아볼 수 없다. 문명사적 전환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없다. 지구적 차원의 위기에 대한 감수성이 전무하다. 기후변화, 에너지, 식량 문제 등 거대담론을 거론하면 표가 떨어져 나간다고 믿기 때문이다. 국민, 아니 ‘한 표’들은 당장 입에 넣을 수 있는 당근을 선호한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인식론적 자물쇠라는 개념이 있다. 어떤 인식 틀에 갇히면 그 틀을 벗어나는 새로운 사고를 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를 가두고 있는 인식론적 자물쇠는 경제가 성장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집단적 공포의식이다. 하지만 개발과 성장은 이제 불가능하다. 산업 문명은 지구 자원이 무한하다는 그릇된 전제에서 출발했다. 산업 문명이 석유문명이고, 석유문명은 종말을 향해 치닫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상식이다. 하지만 대선주자들은 석유문명의 붕괴로 대표되는 지구적 위기를 외면한다. 생태계의 위기가 우리 몸의 위기로 드러나는 이 엄연한 현실을 모른 척한다. 우리는 모두 연결된 상호의존적 존재라는 우주적 진리를 무시한다.

 

 

일찍이 아인슈타인도 어떤 문제를 일으킨 사고방식으로는 그 문제를 풀 수 없다고 간파한 바 있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자물쇠를 어떻게 열 것인가. 남성 중심주의라는 완강한 자물쇠를 여는 열쇠는 여성성이다. 성장 논리라는 철옹성의 문을 여는 열쇠는 탈성장 논리다. <생명의 정치>가 말한 대로 어머니의 마음으로 대표되는 여성성, 즉 공감, 관용, 배려, 친밀성 등 산업 문명의 바깥에 있던 가치와 태도가 남성 중심주의와 결합한 강고한 성장 중심주의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여성성에 대한 옹호는 정치에 대한 재정의와 다르지 않다. 정치가 타인은 물론 뭇 생명과 더불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창의적 노력이라면, 바깥에 있는 정치를 내 몸속으로 초대해야 한다. 생명의 바깥이 없듯이 정치의 바깥도 없다는 자각이 이번 대선정국을 통해 사회화했으면 한다. 정권의 임기는 5년이지만 인간과 생명에게는 임기가 없다. 정치인보다 우리가 더 오래, 더 잘 살아야 한다. 그래서 12월20일부터는 경제민주화보다 정치 민주화, 민주주의의 민주화가 먼저라는 문제의식이 확산됐으면 한다. 거기서부터가 새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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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3 19:30 2012/12/13 1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