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우, 보트?
떠남과 돌아옴 2010/02/23 18:36오늘 밤차로 바라나시를 떠나 내일 아침 고락뿌르에 도착한다.
바로 버스를 타고 소나울리로 이동해 도보로 국경을 넘어 네팔에 도착한 뒤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카트만두로 갈 예정이다.
이미 한 번 와본 길이라 이번엔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분위기도 알고, 길도 익숙하다.
누군가 뭐라고 시비를 걸어도 이젠 대처하는 방법을 알 것 같다.
은영과 같이 간다.
그는 포카라로, 그 전에 룸비니에 간다고 한다.
그동안 메인 가트 근처 도미토리에 머물렀는데, 오늘 오전에 체크아웃을 했다.
시설은 도미토리라 그저 그렇고, 힌두교 의식인 뿌자가 매일 새벽 5시부터 시끄럽게 열리는 메인 가트 주변이라 천상 새벽에 눈을 뜰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가격은 평균 수준인데, 주인 아저씨가 괜찮아서 그냥 눌러 있었다.
방값을 지불하고 체크아웃을 했더니 밤시간까지 게스트하우스에 들어가기가 좀 그렇다.
내가 쓰던 침대에는 이미 다른 사람이 들어와 있을 것이다.
지금은 게스트하우스마다 방들이 별로 없고, 특히 가격이 저렴한 도미토리는 침대가 비면 거의 바로 사람이 찬다.
마음 놓고 쉴 공간이 없다는 건 불편한 일임에 틀림없다.
아침에 드디어 보트를 탔다.
갠지즈강에서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배안에서 처음으로 보았다.
가슴이 떨리도록 아름다웠다.
오랜만에 설레는 기분이었다.
태양과 연애를 할 수는 없으니 보트라도 다시 타봐야겠다.
카트만두에서 호객꾼들은 여행자들에게 "스모크 마리화나 해쉬?" 하며 다가오는데, 바라나시에서 호객꾼들은 여행자들에게 "헬로우, 보트?" 하면서 다가온다.
헬로우, 보트 하는 인도인들의 억양이 특이하게 웃겨서 나는 가끔 그 흉내를 내보곤 했다.
다른 여행자들에게 헬로우, 보트? 하는 식이다.
그럼 다들 배꼽이 빠지도록 웃는다.
인도와 네팔에서는 여자와 남자의 구분이 엄격하고, 그 경계지점에 중간지대란 좀처럼 발견되지 않는다.
특히 코걸이는 여성의 전유물이다.
10억의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인도에서 나처럼 둥근 코걸이를 한 남성은 몇 명 되지 않을 것이다.
바라나시에서 사람들(주로 현지인들)은 나를 보며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하려고 애를 쓴다.
얼핏 보면 외모적으로 여자의 특성이 보이기에, 호객꾼들은 자주 나를 보고 "헬로우, 마담. 보트?" 하며 다가온다.
헤이, 마담!
푸훗, 나보고 마담이라고 부른다.
그렇게 불려도 별로 어색하지 않다.
자주 눈에 띄는 영어 가운데 남자 화장실엔 Gents, 여자 화장실엔 Ladies 라고 쓰인 경우가 있다.
처음엔 Ladies 의 반대이니 남자 화장실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Gents 라고 써있는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나중에 그게 Gentlemen 의 인도/네팔식 약자임을 알게 됐다.
공항에서 보안 수색이나 몸수색을 몇 번 당했는데, 그때마다 요원들이 나보고 "아 유 어 젠츠?" 라고 물었었다.
그게 뭔 소리인지 몰랐는데, 알고 보니 "are you a gents?" 라는 것 같았다.
젠츠가 뭘까 몰라서 젠츠가 뭐냐고 되물으니, 거꾸로 "아 유 레이디스?" 하고 묻는거다.
그때서야 나보고 남자냐 여자냐 묻는다는 것을 알았다.
후훗.
보트를 타고 갠지즈강 중간까지 나가서 매일 앉아 있던 가트를 바라본다.
항상 보던 공간을 멀찍이 떨어져서 바라보니 느낌이 사뭇 다르다.
그 때, 깨달았다.
내게도 약간 떨어져서 멀찍이서 사물이나 상황을 바라보는 것이 가끔은 필요하다는 것을.
2009년 내내 나는 용산에 있었고, 그것도 가장 치열한 최전선에 있었다.
항상 현장에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것이 가장 올바르고 건강한 시각과 관점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용산이라는 공간을 약간이나마 떨어져서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곳에 파묻혀 있는 것이 행복했고, 설령 매일 똑같은 곳만을 보고 있다고 할지라도 나에겐 그곳이 전부였다.
약간 떨어진 곳에서 보다 넓은 시야각으로 상황을 전체적으로 조망한다는 개념은 내 관점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상황을 전체적으로, 또는 객관적으로 본다고 하는 것을 나는 믿으려 하지 않았다.
나에겐 그저 외부일 뿐이었다.
그런데 배를 타고 강 중간으로 나아가 바라본 가트는 완전히 달라 보였다.
내가 매일 보던 세상이라도 약간만 시야를 달리하면 완전히 새로운 것이 보인다.
그제서야 인정할 수 있었다, 나에게도 시각의 변화가 가끔은 필요하겠다는 것을.
용산에서도 만약 한 걸음 떨어져서 바라봤다면 어땠을까?
아마 약간은 다른 것들이 보였을 것이다.
모두가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도 좋은 일이긴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간간이 멀찍이 떨어져서 보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
보다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 나쁘진 않을 것이다.
똑같은 것만 같은 시각으로 본다는 건 지루한 일이기도 하다.
한 곳에만 머물러 있는다면 필연적으로 시각의 협소화가 생겨날 것 같다.
한국을 떠나서 생활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지금은 그럴 수가 없다.
그렇다면 좀더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해보자.
아침에 비가 약간 내려 걱정을 했더니 이젠 햇살이 뜨겁다.
더불어 기분도 밝아진다.
저녁 7시엔 은영과 아르띠 뿌자를 처음부터 같이 보고, 저녁을 같이 먹기로 했다.
은영은 그걸 보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한다.
난 이미 마음이 편하다.
더이상 편해질 마음도 없고, 불편한 마음도 없다.
정들었던 것들을 뒤로 하고 난 다시 떠난다.
모두들 안녕.
카트만두까지 그리고 서울까지 별 일이 없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