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에 다녀오다나의 화분 2005/01/20 02:22
추운 날이었다, 오늘은.
나는 1월 17일 월요일부터 매일 저녁에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서 열리는 지율스님과 천성산 살리기 촛불 문화제에 참석해오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오늘(1월 19일)이 가장 추웠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추운 날씨에 나보다 더 심한 추위에 몸을 떨고 있을 사람들, 생명체들을 생각해본다.
자신의 양심과 신념을 지키기 위해 아직도 감옥에 있는 사람들, 80일이 넘게 단식을 하고 있는 스님, 그리고 터널이 뚫리고 있는 곳에서 곧 보금자리를 잃을까 염려에 추위까지 맞서야 하는 도롱뇽들과 생명들.
이들을 생각하니 힘이 절로 났다.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데도 어디서 오는지 모를 따뜻함이 솟아올랐다.
히히, 내 노래말처럼 '노래가 심장을 달구고 있는' 것일까?
서울구치소에 다녀왔다.
수감되어 있는 병역거부자들 나동혁, 오태양, 임태훈을 면회하기 위해서.
푸른 수의를 입고 빨간색 목장갑을 낀 나동혁이 면회실로 들어온다.
아크릴인지 플라스틱인지 하여간 뿌연 투명벽 너머로 나는 이쪽, 수감자는 저쪽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얼굴이 깨끗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의 표정만은 밝아보인다.
살생을 할 수 없다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감옥에 있는 사람들.
전쟁에 가담할 수 없다, 폭력은 싫다, 남을 죽이는 훈련은 받을 수 없다는 것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생각이다.
그런 기본권인 병역거부권은 한국이라는 국가가 들어선 이후론 범죄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병역거부자들은 지금도 교도소에서 범죄자 취급을 받고 있다.
교도관들은 이 '병역거부자들이 마치 범죄자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행동할 때'마다 갖은 방법으로 그 사실을 다시 환기시킨다고 한다.
나는 이들이 우리들이 함께 짊어져야 할 짐을 대신 짊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실현시키기 위해, 아니 그 기본권이 최소한 범죄로 취급되는 상황을 바꾸기 위해 이들은 우리 대신 오늘처럼 추운 날씨 속에서 당당히 감옥 생활을 하고 있다.
새하얀 감옥.
멀쩡한 사람을 끌고 가 범죄자로 만드는 곳.
야만적인 국가 권력의 본성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
감옥은 국가체제의 최후의 보루이다.
그래서 국가의 틀을 넘어서는 자유로운 활동가가 되려면 나는 감옥의 두려움을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 그곳에서 꿋꿋이 생활을 하고 있는 나동혁을 보고서 나는 많은 용기를 얻는다.
반체제 활동을 한다고 해서 그들이 내게 할 수 있는 짓이라고는 고작 날 감옥에 집어넣는 것뿐이다.
그런데 난 수갑만을 차고 있지 않을 뿐 이미 감옥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개발과 성장과 경쟁이 우선시되는 자본주의 국가 한국은 생명을 지키기 위해 병역을 거부한 사람들을 범죄자로 분류해 가두고 있고, 생명을 지키기 위해 발벗고 나선 스님을 그저 무시하고만 있다.
식량 자급도 세계 최하위 수준의 국가에서 가족농, 소농으로부터 농토를 빼앗아 기업농을 육성시킨다며 농업을 포기하라고 종용하는 이 땅의 권력자들과 자본가들은 농민들이 떠난 땅에 또다시 개발과 돈벌이라는 죽음과 파괴의 그림자를 드리우려 하고 있다.
고귀한 생명들을 보듬고 있는 평택의 광활한 토지에는 탐욕스런 제국의 군대가 통째로 주둔해 마치 게임을 하듯 전쟁을 연습하려고 하고 있다.
전쟁에 굶주린 자, 개발에 굶주린 자, 곧 이윤에 굶주린 자들이 도처에서 날뛰고 있는 지금 이땅은 감옥 안과 무엇이 그리 크게 다를까...
만약 미래 사회에 감옥과 같은 취지의 제도가 '다시' 생겨나 사람들을 두 부류로 확연히 갈라놓자고 한다면 이들 전쟁과 개발에 굶주린 자들과 날 분리시켜달라고 할 것이다.
그 한 줌도 되지 않는 자들, 지들끼리 싸우고 지들끼리 파먹고 지들끼리 파괴하다가 지들끼리 죽고 죽이라고 크지 않은 감옥 하나 지어놓으면 될 것이다.
그 안에 온갖 탱크며 미사일이며 전투기며 항공모함이며 핵무기며 굴삭기며 불도저며 자동차며 고속철이며 모조리 긁어모아 한 곳에 몽땅 집어넣고 걔네들보고 마음대로 사용하라고 하면 될 것이다.
그곳은 지옥.
tags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