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비폭력 평화를 부르짖는가?평화가 무엇이냐 2005/01/16 01:16
채식은 비폭력 평화를 내 일상에서 실천하는 소중한 방법이다.
노래를 부르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나는 왜 그토록 비폭력 평화를 소중히 여기는가?
평생 평화운동을 해온 일본의 작가 오다 마코토에게는 어렸을 적 미군으로부터 당한 1945년 8월 14일의 오사카 폭격의 기억이 바탕에 깔려있다.
하워드 진에게는 폭격기 조종사로 저 높은 하늘에서 유럽의 민중들에게 폭탄을 투하한 기억이 있다.
내게는 바탕에 깔린 지울 수 없는 강렬한 경험이 있어, 날 비폭력 평화운동으로 이끌었을 것이다.
더듬어 보건데, 그것은 강경대, 김귀정의 죽음이다.
나는 그들의 죽음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그것은 지금도 내게 커다란 두려움으로 남아 있다.
바로 국가 폭력의 실체를 확인한 것이다.
1980년 광주에서 군인들이 민간인을 수천 명 학살했는데, 1991년 봄의 기억은 마치 내가 5월 광주에 있는 듯 했다.
1991년 4월 초 시위를 나간 대학 1학년 학생이 전경들과 백골단의 군홧발에 짓밟히고 몽둥이 세례를 받으며 살해된 것이다.
그리고 그해 5월 뜨겁게 불타올랐던 거리에서 성균관대 88학번 학생도 국가 폭력의 담지자들이 가한 토끼몰이에 의해 궁지로 몰리고 두들겨 맞으며 살 곳을 찾아 헤매다 깔려 죽은 것이다.
나는 바로 그곳에 있었다.
어느 순간 문득 뒤를 돌아보았을 때 몽둥이를 들고 나를 노리고 있던 시커먼 전경들과 나를 잡으러 달려오던 백골단들.
내가 약간이라도 늦게 달렸다면 아마 나의 육체도 그들 군홧발에 의해 밟혔을 것이며, 내 머리도 그들 몽둥이에 의해 깨졌을 것이다.
국가란 내게 그런 것이다.
멋도 모르고 가수가 되길 꿈꾸던 어린 내게 국가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그 실체를 똑똑히 보여주었던 것이다.
'권력자들은 위기에 처하면 언제든 공권력(군홧발과 몽둥이)를 동원해 살육을 가할 수 있도록 이 사회를 조직해놓았는데 그것이 바로 국가'라는 것을 나는 80년 5월 광주에 가지 않고서도 감히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그렇게 잠이 든 강경대와 김귀정을 망월동 구묘역에서 다시 만나고 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북받쳐오름을 느꼈다.
국가란 바로 가진자들과 권력자들의 세상이며, 군홧발과 몽둥이를 통한 폭력을 항상 배후에 감추고 있다는 것.
이것이 내게 지울 수 없는 국가의 실체로 남아있다.
소용돌이 안에 있을 때는 그 소용돌이를 제대로 볼 수 없는 법이다.
국가의 그늘 안에서 어떻게 국가의 실체를 볼 수 있을까?
권력자가 된다는 것은 소용돌이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권력자가 되어 사회를 해방시키겠다는 사람들을 내가 믿을 수 없는 이유는 권력자들의 얼굴이 누구든 간에 군홧발과 몽둥이를 들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소용돌이 안으로 들어가겠다는 것은 그 바깥에 놓인 사람들, 배제된 사람들, 중심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무슨 의미인가?
그 안에 누가 있든 소용돌이는 소용돌이이다.
소용돌이는 바깥에 놓인 사람들을 집어 삼키고,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파괴시킨다.
한 순간이라도 권력자가 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나아가 여기서 더 나아가 권력자들을 없애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대답은 전쟁과 군대 없는 세상으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오다 마코토는 양심적 군사거부 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에 전면적으로 동의하면서 한 가지만 덧붙이자면 나는 군홧발을 없애는 것도 필요하지만 몽둥이도 없애야 한다고 생각한다.
군대 없는 국가가 '군대 없는 사회'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한 개인에게 전쟁, 고문, 강간, 살인 등의 폭력은 어떤 심리적, 정신적 영향을 미치는가?
이런 충격을 다시는 다른 사람이 받도록 하지 말아야겠다는 굳은 다짐이 생기게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런 끔찍함은 나 한 사람으로 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비폭력 평화를 부르짖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존재 이유이다.
어쩌면 그것은 나의 내면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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