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그리워나의 화분 2010/01/28 00:08안녕.
어떻게 지내고 있니?
나는 용산을 나와서 다시 망원동 피자매연대 사무실로 옮겨 왔어.
이곳엔 사람이 나밖에 없어.
그래서 요즘은 하루종일 나 혼자 지내.
처음 며칠 동안은 작년 4월 용산 현장으로 들어간 이후 방치되어 있던 망원동 사무실 집기들 먼지도 닦고, 컴퓨터도 고치고 하느라 시간이 갔는데, 대충 정리가 끝난 요즘은 그저 모든 것이 조용해.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너무나 조용해.
내가 왜 이런 곳에 앉아 있는 것일까.
이곳은 대체 어디일까.
난 언제쯤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용산 현장에서는 언제 경찰과 충돌이 생길지 몰라 항상 카메라와 녹음기를 가까이 두고, 무슨 일이 생겨도 재빨리 대응을 해야 한다는 심정으로 지난 1년 가까이 긴장감을 놓지 않고 대기하며 살아 왔는데, 이곳 망원동에서는 무슨 일도 일어날 것 같지 않아서 기분이 멍해.
게다가 남일당과 레아에서는 항상 여러 사람들과 같이 있으면서 밥도 같이 먹고, 떡볶이도 같이 먹고, 커피도 같이 마시고 했는데, 여기에서는 혼자 밥을 먹는단다.
얼굴을 보고 이야기할 사람도 없어.
누군가 찾아오는 사람도 없으니 더 힘든 것 같아.
고립되어 있는 것 같고, 그래서 사람들에게 전화를 자주 걸어서 이야기 하려고 하는데, 막상 레아를 떠나니까 그 상실감 때문인지 모든 것이 전과 같지 않아.
레아와 남일당은 사람들이 떠난 바로 다음날 두꺼운 펜스를 쳐서 이제는 아무도 들어갈 수가 없게 됐어.
1월 26일에 가봤더니 이미 막혀 있더라.
물론 예상했던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막상 펜스로 막혀 있는 레아와 남일당을 직접 보니까 참 가슴이 아프더라.
들어갈 수도 없고, 그곳으로 돌아갈 수도 없게 되어서, 정말 완전히 사라져버렸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어.
잊어야 하는데, 레아와 용산 현장은 워낙 내가 애정을 갖고 지내던 곳이라서 쉽게 잊지는 못할 거야.
모든 것이 그리워.
도영이 끓여주던 커피도 그립고, 벽에 전시되어 있던 그림들도 그립고, 들락날락하던 사람들도 그립고, 레아의 그 좁디좁은 계단도 그립고, 심지어는 매일 날 괴롭히던 재우 아저씨도, 담배 연기도, 살을 에는 듯한 추위도 그리워 미치겠어.
누가 갑자기 날 무균배양실에라도 집어 넣은 기분이야.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일 뿐이라고, 아직 본질적으로 해결된 것은 없다고, 아직도 해야 할 일들이 많다고, 힘을 내서 새로 시작해야 한다고 아무리 다짐하고 스스로에게 말해봐도, 왜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일까.
청각을 잃어버린 것 같아.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아.
비명도, 고통에 찬 절규도 들리지 않아.
아련히 멀어져 가는 당신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그자리에 오도가도 못하고 붙박이로 서 있는 것 같아.
나는 움직이는 사람인데.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제일 싫어하는 사람인데, 움직일 수가 없어.
다시 돌아가고 싶어.
정말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
그럴수만 있다면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필요치 않아.
그저 같이 지낼 수만 있다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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