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이 이렇게도 갈 수 있구나
나의 화분 2009/12/01 04:04앗!
지금 새벽 3시가 지나 새벽 4시가 되고 있어.
문득 시계를 보니까 12월 1일이라고 나오네.
어느새 12월이 왔다고 생각하니까 약간 뭐랄까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어.
12월이면 이제 한 해를 정리해야 하는데, 그러면 사람들은 자연스레 올 한 해는 어떻게 보냈나 돌아보게 되는데, 내가 보낸 2009년은 너무나 격렬하고 또 아직 정리하기에는 뭔가 한참 남은 것 같아서 부자연스럽게 느껴져.
계절은 정리가 되어 가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까 말야.
1년이 이렇게도 갈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참 씁쓸하구나.
하나의 문제에 거의 1년 내내 매달린 적이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입시 준비한 것 이후로 아마 처음이었던 것 같아.
용산참사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은채 맞이하는 12월이 그래서 약간은 곤혹스러워.
차분히 1년을 돌아보고 정리해야 하는 시간에 우리는 여전히 '멈춰버린 시간들'에 묶여 있는 것 같아서 말야.
당신도 알겠지만, 나는 매일 용산에서 노래하는 1인시위 하고, 또 여러 일들을 하면서 지내.
여러 일이라고 쓰긴 했는데, 세상에는 세 가지 종류의 일이 있는 것 같아.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
그리고 해야 하는 일.
당신에게 이 세 가지 일 사이의 관계는 어떻게 짜여져 있니?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보면서 난 매우 낙천적인 성격이라는 것을 깨달았는데, 왜냐하면 이 세 가지 일 사이에 괴리감이 올해 내겐 그리 크지 않았거든.
요즘엔 전보다 긴급하게 해야 할 일들이 줄어들어서 조금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것 같아.
그래서 2006년 겨울-2007년 봄에 평택 대추리에서 '평화가 무엇이냐' 음반작업을 한 이후 하지 않았던 음반 작업을 다시 시작해보려고 해.
일전에 어떤 언론사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 어떤 기자와 인터뷰를 하면서 '다음 음반은 언제쯤 낼거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어.
난 대추리처럼 내 모든 것을 던져서 활동하지 않으면 음반은 낼 생각이 없다고 답했거든.
음반을 만든다는 것이 내가 원하는 운동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고, 음반을 만든다는 것은 내 모든 열정과 에너지를 쏟는 작업인데, 대추리처럼 내 모든 것이 함께 하는 운동이 아니라면 음반작업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거든.
그런데 올해 용산참사가 그런 이슈였던 거야.
그래서 지금까지 틈틈이 만들어 놓은 곡들도 꽤 있고, 무엇보다 매일 여기 용산에서 '행동하는 라디오' 작업을 하면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고 녹음했으니, 처음 라디오 방송을 만들면서는 '나는 마이크를 많이 잡아봤으니까 이젠 마이크를 잡아보지 못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겠다'고 다짐했는데, 2009년이 거의 끝나가는 이 시점에서 나름 평가를 해보면 그래도 꽤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고, 물론 대부분 이미 마이크를 많이 잡아본 사람들의 이야기였지만, 그렇게 만들어놓은 노래들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창조적이고, 맛있게 엮어서 음반으로 내려고 하는 거야.
작업이 언제 끝날지는 잘 모르겠지만,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좀 박차를 가할 생각이야.
또 아마 12월도 정신 없이 흘러가겠지.
씁쓸하고, 곤혹스럽고 무엇보다 분노의 감정이 제일 먼저 앞서는 12월이지만 나는 여전히 레아를 지키면서 일을 할 거야.
무엇보다 정영신 님이 나보고 레아를 잘 지켜달라고 부탁했거든.
이틀 전에 레아에 새로운 미술작품이 들어왔고, 절망 때문에 계속 벽에다 머리를 찧고 있는 이 마네킨 전시물 때문에 이것을 볼 때마다 사람이 아닌가 하여 섬짓섬짓 놀라기도 하지만, 또 새로운 미술작품을 감상하면서 나도 여기서 뭔가 작품을 만들어봐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그럼 우리 다음에 또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