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여수, 군산

나의 화분 2009/10/16 02:20

미누가 잡혀갔다는 소식을 듣고, 뭐라도 해야지 하다가,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은 라디오 만드는 것이라 특집판으로 미누편을 제작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만큼 하자는 생각으로, 정성을 다해 라디오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가 잡혀 있는 화성 외국인보호소에 노래도 하러 가기로 했다.

진심으로 미누가 석방되어 나오길 바라고 있다.

 

행동하는 라디오는 매일매일이 특집이다.

오늘은 조희주 대표와 시낭송 녹음을 했다.

녹음 준비를 하고, 분위기를 만들고, 녹음을 하고, 목소리 편집을 하고, 음악을 만들고, 음악과 믹싱을 하고, 또 편집을 하고, 파일로 만들어서 올리고, 뿌리고 하는 작업이 보통 4시간 이상은 걸리는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만들어온 150편 이상의 행동하는 라디오 프로그램들.

하나 만드는데 평균 4시간(보통은 그 이상)이 걸렸다고 계산하면, 지금까지 나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이 작업에 쏟아온 셈인가.

그리고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작업을 해왔는가.

 

우리가 기울인 노력과 애정과 에너지에 비해, 행동하는 라디오를 듣는 사람은 많지 않다, 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다.

왜 일까.

재미가 없어서?

다 아는 내용이기 때문에?

듣는 방식이 쉽지 않아서?

요즘은 사람들이 라디오를 잘 듣지 않으니까?

 

이런 고민을 하다가 마침 추석 연휴 기간에 시간이 좀 나서 행동하는 라디오를 인터넷에서 좀더 편하게 들을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을 했다.

조금이라도 사람들이 더 편하게 라디오를 들을 수 있도록 조그만 배려를 했다고 생각한다.

사실,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은 중요하다.

고립되어선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나는 행동하는 라디오를 만들면서 조회수나 클릭수 같은 것에 연연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이 작업은 역사를 기록하는 작업이고, 이내 사라지고 말 생생한 목소리들을 언제든 다시 들을 수 있는 상태로 고스란히 보관해두는 작업이다.

언제든 되살아나야 할, 그래서 무당이 굿을 하듯 펄펄 살아 날뛰어야 할 우리의 목소리를 기억 저편으로 묻어두지 않는 일상의 투쟁이다.

 

문득, 남일당 꼭대기 망루 안에서 살을 녹이듯 뜨거운 화염이 달려들 때 밖으로 나갈 수도 없이 갇힌 상태에서 속절없이 죽음을 맞이했었을 철거민 열사들의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 대해본다.

망루 안으로 방패와 곤봉과 빠루와 오함마와 소화기와 전동절단기를 든 경찰특공대원들이 난입하는 순간, 그곳은 철거민들이 빠져나올 수 없는 감옥이 되었다.

2007년 2월 11일 여수 외국인보호소 안에서 화재가 나 10명의 이주민들이 목숨을 잃었을 때도 이와 비슷했을 것이다.

여수 외국인보호소 관리들은 화재가 나고도 9분간을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치했다고 한다.

그 안에서 이주민들이 어서!! 굳게 닫힌 쇠창살 철문을 열어 달라고 울고불고 날뛰며, 화재가 온몸을 녹여버리듯 달려오는 가운데 절규하고 목청이 터지도록 소리를 질렀지만, 한국의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은 불법체류자들을 열어둘 수 없다며 그 불지옥에 이주민들을 방치하고 만다.

2002년 군산 개복동에서, 또 2000년 군산 대명동 성매매 집결지에서도 우린 같은 일을 겪었다.

노예처럼 갇혀 지내던 비좁은 방안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 수십 명의 여성들은 굳게 잠긴 자물쇠를 열 수 없었을 것이다.

 

불법체류자라고 죽고, 도심 테러리스트라고 죽고, 몸을 파는 여성이라고 죽어야 했던 사람들.

어서 불을 꺼달라는 그들의 절규

어서 문을 열어달라는 그들의 통곡

숨을 쉴 수조차 없다는 아우성

한 순간에 달려들어 옷이며 머리카락이며 살갗이며 모조리 태워버릴 거대한 불꽃

 

이것은 2009년의 용산학살만이 아니다.

2007년 여수에서, 2005년 하월곡동에서 그리고 그보다 앞선 군산에서 권력자들에 의해 좁은 공간에 갇힌 채 불에 태워 죽여진 사람들의 마지막 울부짖음이다.

그 소리들이 들리는 것 같기에, 난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현실은 너무나 고통스럽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좁은 곳에 갇혀 불에 타 죽어야만 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억울함이 해결되지 않은 채 세상은 흘러간다.       

우리는 얼마만큼 나아졌는가.

나는 얼마만큼 반성했는가.

용산이, 여수가, 군산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자고 나는 얼마나 많이 다짐을 했던가.

우리의 다짐이 부족했다면, 넘칠 때까지 다짐하는 수밖에 없다.

활동하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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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16 02:20 2009/10/16 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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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무나 2009/10/16 09:25 Modify/Delete Reply

    경찰 수뇌부들이 용산 법정에서 다들 그때 상황을 몰랐다고 오리발 내밀었다는 기사를 읽고 정말 복창이 터지더라. 농성자들이 불을 내지 않았다는 증거와 정황이 속속 증명되는데도 계속 오리발...

  2. 2009/10/16 12:01 Modify/Delete Reply

    그런걸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고 하지.헐

  3. adelitas 2009/10/16 14:11 Modify/Delete Reply

    우리가 신는 나이키, 아디다스 운동화는 중국, 인도네시아 등지의 하청공장에서 일하는 여공들이 만들고 있습니다. 이 여공들은 공장 기숙사에서 잠을 자는 경우도 있는데 밤에는 문을 잠그고 창문에도 쇠창살이 있습니다. 군대병영 시설과 매우 흡사한 구조입니다. 화재가 일어나면 대참사는 불보듯 뻔합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월급을 올려달라고 말한 여공이 그 다음날 출근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실종"된 것입니다. 미국의 맥도날드에서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빅맥 세트를 사면 인형을 공짜로 주는데 이 인형을 제작하기 위해 동남아시아 하청공장에서는 크리스마스 시즌 전 두달전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을 하는데 영양실조와 과로로 인한 사망자가 속출한다고 합니다. 현실은 너무나 고통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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