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맞는 용산…'두렵지만 희망은 걸어야'

나의 화분 2009/10/03 02:33

 

【서울=뉴시스】손대선 기자 = 서울 용산구 한강로 레아호프. 이곳은 용산참사의 진원지인 남일당 건물 바로 뒤편에 자리 잡고 있다.

참사 당시 화재로 숨진 철거민 고 이성림씨(70)가 아들내외와 운영하던 업소이기도 하다. 2층 건물의 일부가 철거돼 영업은 진작에 중단됐다.

용산참사에 관심을 가진 예술인들이 모여 리빌딩을 해 현재는 전시 등을 위한 일종의 대안공간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분향소가 차려진 남일당 앞과 이곳을 제외한 대부분의 건물은 용산4구역 재개발 사업에 따라 철거가 진행되고 있다. '폐허 속에 핀 꽃'은 용산참사 당시 숨진 철거민들의 처지를 옹호하는 이들이 이곳을 지칭하는 말이다.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1일 오후 8시50분께 레아호프 앞 사거리 골목길에 60여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였다. '용산참사 해결을 위한 길바닥콘서트'가 이들이 이 골목길에 모인 이유다.

플라스틱 의자 수십개가 객석이요, 레아호프 문지방 언저리가 무대인 설핏 초라한 공연장이었다. 1층과 2층 측면에는 '우린 힘들지 않다', '우린 끝까지 간다'고 각각 써 있는 플래카드가 매달려 있었다.

'길바닥 평화행동' '이물질들' '푼돈들' '캐비넷 싱얼롱즈' '멍구밴드' 등 출연자들의 면면은 일반인에게 생소했다.

오후 9시께 밴드 '길바닥 평화행동'이 본공연을 시작했다. 먼 타국의 가난한 이들을 위무하는 팝송과 민중가요가 이날 공연의 주 레퍼토리였다.

공연진행은 매끄럽지 않았다. 일반적인 기준으로 가창력이 떨어지는 가수와 서툰 기타연주는 세련미와는 거리가 멀었다. 음향기기는 종종 오작동을 일으켜 노래를 중단시켰다.

게다가 공연이 벌어지는 골목은 용산역 쪽에서 초고층 아파트인 시티 파크로 향하는 지름길이었다. 시티 파크에 거주하는 것으로 짐작되는 주민들이 수시로 공연장 한복판을 오고갔다.

이들은 불에 그을린 남일당 건물과, 마스크를 쓴 6명의 의경들과, 때에 절은 사제복이 걸린 전경버스, 그리고 생소한 공연장을 지나 시티파크로 향했다. 한결 같이 양손에 선물꾸러미가 들려있었다.

반바지 차림에 자식들의 손을 붙잡고 산책을 나온 외국인들의 모습도 더러 눈에 띄었다.
용산참사의 유족 중 한명인 김영덕씨가 상복을 입고 무대에 올라 감사의 말을 전해 어수선한 분위기를 다잡았다.

김씨는 "추석이 다가왔는데도 쓸쓸한 저희 유가족을 위해 이 자리에 오셔서 감사합니다. 평생 이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추석 명절 잘 보내세요"라고 말했다.

주최측은 스테인레스 김치통에 막걸리를 담아 무대 오른편에 놓인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마음껏 마시라"고 했다. 사람들은 목이 타는 듯 막걸리를 마셨다. 몇몇 관객은 막걸리를 병채 가져와 송편을 안주 삼아 마셨다.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달빛 아래서 노래를 따라 부르는 관객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웃음소리가 골목골목에 번졌다. 공연자가 '청계천 8가'를 부를 때 몇몇은 눈시울을 붉혔다.

지난 설 때도 이곳을 찾았다는 우모씨(44)는 "유족들이 이곳에서 명절을 두 번이나 보내게 됐다"며 "장례라도 치러야하지 않겠느냐. 최소한 이 상황에 대해 범대위든, 정부든 최소한의 상식을 갖고 대화에 응해야한다"고 말했다.

우씨는 공연장 인근에서 마스크를 쓴 채 경계근무를 서고 있는 의경들을 가리키며 "입닫은 정부를 연상케 한다"고 말했다.

이날 콘서트를 기획한 조약골씨(37)는 지난 봄부터 레아호프를 자신의 거처로 삼고 있다. "고향으로 가지 못하는 유족이 보기 민망해서"라며 그는 추석 귀향을 포기했단다.

정부에 대한 분노와 자신의 미약함 사이에서 항상 갈등하고 있다는 조씨는 플래카드에 써 있는 것처럼 유족들과 끝까지 함께 있고 싶다고 전했다.

한 예술인은 "당신이 당한 일도 아닌데 귀향도 마다한 채 이곳에 머물고 있느냐"는 질문에 "연대의식때문"이라고 답했다.

독립다큐를 제작하는 푸른영상의 김준호(30) 감독은 "추석이 됐는돼 여전히 변화된 것은 없는 것 같다"면서도 "그래도 희망을 품고 싶다"고 말했다.

분향소를 홀로 지키고 있던 용산4상공대책위 박창숙씨(49) 위원장도 희망을 찾고 있었다.
박 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많이 힘들고 두렵기도 해요. 하지만 희망은 걸어야죠. 전철연 회원들이 시청앞에서 노숙에 들어간지 몇달이 됐는데 그동안 오세훈 시장이 말 한 번 안 걸었요. 그런데 어제 오전에는 출근하면서 노숙하는 이들한테 '추석 잘 쇠시라'고 했답니다. '언제쯤 해결될까요?'라는 질문에 '곧 좋은 소식 갈 거예요'라고 했대요. 내일이라도 정운찬 총리가 좋은 소식 갖고 왔으면 좋겠어요."

같은 시각 유가족들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신부들이 함께 빚어놓은 송편 수백개가 분향소 앞 평상에서 매연을 뒤짚어 쓴 채 말라가고 있었다.

공연을 관람하던 이 중 여성 한명이 이를 보고 기겁을 하며 비닐을 덮어 씌웠다. 그는 평상 앞 의자에 앉아 술에 취한 듯 비척대는 한 중년 남성에게 "뭐하고 있어, 관심 좀 가져, 관심"이라고 핀잔을 놓았다.

국무총리 내정 때부터 추석 전 용산참사 현장 방문을 다짐했던 정운찬 총리는 이날은 물론 2일 오후에도 이곳을 찾지 않았다.

< 관련사진 있음 >
sds1105@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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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03 02:33 2009/10/03 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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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들플 2009/10/04 17:22 Modify/Delete Reply

    대선씨 기사 잘읽었습니다. 한가위를 아픔이 있는 곳에서 함께 계신 분들
    정말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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