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대추리에 다녀왔어.
사람들은 송화리 빌라라고 하는 그곳 말야.
지난 4월 그 마을에서 강제로 나온 뒤로 다시 처음으로 팽성에 간 거야.
주민들은 송화리 빌라 입구에 대추리大秋里라고 크게 붙여 놓았고, 마을회관으로 쓰는 빌라 101호에도 '대추리 마을회관'이라고 붙어 있더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내가 얼마 전까지 마을에서 매일 보던 사람들이야.
그런데 낯설기 그지 없더라.
'임시거주빌라'라는 감옥에 갇혀 있는 어르신들을 면회간 기분이었어.
농사를 평생 지어온 사람들에게서 땅을 빼앗는 것은 시각예술가에게서 눈을 빼앗는 것 같은 거야.
일상에서 쫓겨난 사람들, 그래서 당장 굶어죽지 않을 정도의 돈은 있지만 딱히 할 수 있는 일도, 하고 싶은 일도 없어져버려서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도 속은 급속도로 쇠약해져가고 있는 그 주민들이 걱정스럽더라고.
당신들로서는 아직 적응조차 되지 않은 빌라의 메마른 생활 환경 때문에 당장 누가 원인을 알 수 없는 질환으로 쓰러진다 해도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어보였어.
'이러다 언제 갈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시는 주민도 계셨어.
물론 새로 노와리에 건설될 신대추리에 대한 기대감이 주민들 사이에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 상실감과 무력감이 너무 깊게 다가와서 마음이 아파.
게다가 토사를 가득 싣은 덤프트럭들은 왜 그렇게 많은지.
신호리, 원정리, 내리를 연결하는 대추리 가는 길은 완전히 이 트럭들 독차지야.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아스팔트 도로를 부숴버릴 듯 달려드는 서희건설 소속의 그 트럭들이 실어나르는 토사는 이제 황새울의 비옥한 논을 야금야금 덮어버리고 있겠지.
근처 어느 야산에서 파헤쳐진 속살이 바로 같은 몸의 다른 상처에 메워지고 있는 풍경을 결코 두 눈을 뜨고 제정신으로 바라볼 수는 없겠더라.
잃어버린 그 땅을 어쩌면 좋니.
그리고 그렇게 싸움에서 패배한 사람들이 서서히 빛을 잃어가는 모습을 또 어떻게 해야만 하니.
주민들과 노래를 한 곡 만들었어.
어르신들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별음자리표와 아톰과 내가 그것을 받아 적으면서 노래를 만들어 나갔어.
후손들에게 '나는 후회없이 싸웠다' '그곳을 간절히 지키고 싶었다'고 하시던 주름살 깊게 패인 목소리를 노래로 다듬었어.
슬프지 않게, 무겁지도 않게 만들고 싶었어.
솔직히 나는 시적인 노래는 못만들겠더라.
아직도 난 '올해도 농사짓자' 같은 풀뿌리 생명에 대한 질긴 애착이 묻어나는 투박하고 결연한 노래들이 좋아.
세상이 확 바뀌지 않는다면 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