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냉장고를 구합니다ㅠ나의 화분 2007/06/12 22:06돕헤드님의 [냉장고를 버리다] 에 관련된 글.
날씨가 더워졌다.
도저히 견디지 못하겠다.
작년 6월부터 냉장고 없이 살아왔는데 이젠 냉장고 없이 살지 못하겠다.
특히 밥을 바깥에서 사먹지 않는 한 이런 여름 같은 날씨에 식재료는 하루 이상 보관하기가 힘들다.
그러니까 작년 여름부터 대추리에 살면서는 필요한 음식은 옆에 있던 지킴이 집에 보관해왔고, 일주일에 한 번씩 서울에 올라와서는 그냥 냉장고 없이 대충 밥을 해먹었기 때문에 냉장고가 별로 필요가 없었다.
2006년과 2007년을 통과한 겨울이 사상 최고로 더웠던 겨울이라고 사람들이 말들을 했지만 대추리 불판집에서 보일러와 온수 없이 겨울을 보낸 나는 그 겨울이 사상 최고로 추웠던 겨울이었다.
그런 겨울 날씨는 3월말까지 이어졌고, 가끔 자전거를 타고 원정리나 객사리 또는 통복시장에 나가 찬거리를 사와 밥을 해먹고 남은 음식들은 잘 싸서 바깥에 보관하면 됐다.
대추리에서 강제로 나온 뒤 지금까지는 아랫집에 있는 냉장고에 먹을거리들을 보관해왔는데,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집에서 밥을 해먹으면서 살지를 못하겠는 거다.
내가 저번에 올린 '냉장고를 버리다'라는 글에 초희가 답글을 달아서 '냉장고 없이 살 수 있다'고 했는데, 나는 솔직히 초희가 나처럼 항상 집에서 밥을 직접 만들어 먹는지 의문이다.
더욱이 지금처럼 더운 여름에 냉장고가 없이 어떻게 식재료를 보관한다는 말인가.
어제 사놓은 버섯이 하루만에 먹지 못하게 상해버리고 있다.ㅠ
두부는 또 어떤가.
버섯만이 아니라 김치도 그렇고, 다른 야채들도 도무지 냉장고가 아니고서는 보관할 곳이 없다.
찬 음료수 없이도 버티라면 버틸 수 있고, 얼음 없이도 견딜 수 있겠지만 일반 식재료들은 어쩌란 말인가.
혹시 매일매일 시장에 나가서 아주 조금씩조금씩 식재료를 사와서 매일 조금씩 반찬을 만들어먹으면 냉장고가 없이도 살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지금의 바쁜 일정에서 내가 과연 그런 시간을 매일 낼 수 있을까.
냉장고가 없이 살아오면서 그동안 많은 고민들을 하게 되었다.
우리의 삶이 얼마나 '냉장화'되어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 것이다.
전기를 쓰지 않고도, 아니 보다 현실적으로 전기를 최소로 소비하면서 살아보려고 나는 발버둥을 쳤다.
그런데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가게에서 사먹는 대부분의 음식물 포장에는 '냉장보관'이라는 딱지가 붙어 있다.
한마디로 냉장문화에서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건냉한 곳에 보관하지 않으면 금새 상해버리는 음식들.
냉장고가 가정마다 들어서면서 우리는 음식을 장기간 보관할 수 있게 되었고, 결국 미국에서 필리핀에서 호주에서 칠레에서 먹거리를 수입해도 괜찮게 되었다.
지금처럼 집집마다 냉장고가 없다면 불가능할 일이다.
나는 우리가 먹는 음식물들이 대부분 이 냉장고에 맞춰져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그러니까 내가 그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은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는 어떻게 사람들이 밥을 먹고 살았는가'라는 의문을 풀기 위해 집요하게 매달리고 난 뒤이다.
답은 간단했다.
땅을 가까이에 두고 살았던 그 사람들은 냉장이 불필요한 음식들을 먹었던 것이다.
근처 밭에서 야채나 곡식 등 필요한 것들을 항상 공급받고, 남은 것은 다시 자연에 돌려주거나 그대로 보관하면 되었던 것이다.
땅에서 바로 수확한 것들은 상온에서 일정 기간 보관이 가능한데, 소금으로 절이거나 말리거나 하는 등의 방법으로 더욱 오래 보관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주로 상온에서 오래도록 보관이 가능한 음식들을 그 시절 사람들은 먹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땅에서 쫓겨난 지금 사람들이 먹는 것은 대부분 포장되어 나오는 가공된 음식들이다.
그렇기에 음식을 직접 수확해 먹는 것이 아니라 냉장보관된 가게에서 사먹는다.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내가 지금과 같은 도시적 생활방식을 유지하는 한 냉장고가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음식을 항상 사먹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최저의 생활비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나는 음식을 사먹을 형편도 아니다.
그래서 중고 냉장고를 구하기 시작했다.
8만원 정도면 괜찮은 것을 구할 수 있겠다.
대추리에서 쫓겨난 나는 참 많은 것을 잃어버린 셈이다.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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