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한국에 돌아와보니 내가 일본에서 얼마나 인간 이하의 생활을 했나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가난한 채식주의자로서 낯선 땅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일본은 생선류를 많이 먹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들어가지 않은 음식을 찾기란 더욱 어렵다.
특히 내 일본어 실력은 형편 없기 때문에 식사시간이 되면 난 더욱 결정을 내리기 힘들어졌다.
그래서 그냥 가져간 채식주의 라면을 끓여 먹거나 맨밥을 사서 먹거나 했다.
아니면 값이 싼 땅콩이나 식빵을 사서 두유와 함께 먹고 배고픔을 참는 경우가 많았다.
200엔짜리 유부초밥이 저녁 8시가 넘으면 처분을 하기 위해 가격이 30% 내려가는데, 그 때를 놓치지 않고 잘 잡아야 한다.
그래야 140엔짜리 저녁을 먹을 수 있게 된다.
그러다가 비참함을 견딜 수가 없으면 음식점에 들어가 야채볶음밥을 600엔에 사먹기를 두 번.
그렇게 5일을 지내고 나니 한국에 돌아와서 지금까지 열흘이 넘는 기간 동안 나는 감기에 시달리고 있다.
목이 붓고 노래를 할 수가 없을 정도로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열이 나고 몸에 힘이 없다.
이제는 좀 나아진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일본에서는 잠도 많이 자지 못했다.
그것은 내 습성 때문인데, 나는 다른 사람이 가까이 있을 경우 잠을 깊이 자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일어나 라면을 끓여 먹고, 지도를 펴들고 계획을 세운 뒤 하루를 시작했다.
나와 같이 일본에 간 한국 친구들은 그런 나를 보고 '부지런하다'고 했지만 실은 내게 선택의 여유라는 것이 없었다.
아마 일본에 다시 갈 여유가 별로 없으리라는 것을 나는 알았기 때문에 한번 일본에 있을 때 최대한 많은 것을 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낮에는 시위에 참가하고 밤에는 도시를 돌아다녔던 것이다.
며칠 배고픈 것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몸이 좀 고생해도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다면 여행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경험한 것을 이제부터 몇 번에 걸쳐 '가난한 아나키스트 채식주의자의 일본 여행기'라는 이름으로 써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