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은 깡패를 사랑하자는 것
평화가 무엇이냐 2006/05/19 16:42[뒤척이다] 평택투쟁이 애국적 투쟁이라니… | ||||||
평택에서 애국은 깡패를 사랑하자는 것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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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약골 | ||||||
내가 처음 평택에 내려왔던 것은 2004년 5월 29일에 열린 평택평화축제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이때 '평화가 무엇이냐'는 문정현 신부님의 발언이 인상적이어서 나는 그 말을 오래도록 남겨두고자 노래로도 만들게 되었다. 그 발언 가운데 '김지태 위원장이 땅을 강제로 빼앗기지 않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평화'라는 부분이 나온다. 고백컨데, 나는 당시 김지태 위원장이 누군지 몰랐었다. 아마 많은 사람들도 그랬을 것이다. 지금은? 다들 알고 계실 것이다. 대추리 이장님이 노무현에게 보내는 절절한 편지들을 한번쯤은 읽어보았을 것이다. 농사밖에 모르던 시골 촌부가 전국적으로 유명해지게 된 그 과정은 그대로 한국의 조그만 농촌마을에서 벌어진 주민운동이 국가 공권력의 온갖 회유와 압박 그리고 폭력을 이겨내며 성장해가는 과정과 궤를 같이 한다. 그것이 감동적인 것이다. 자치를 일구는 사람들 그러다 말로만 듣던 팽성 농민들의 촛불집회에 오게 된 것은 2005년 1월 6일이었다. 당시에는 본정리에서 촛불 집회를 열고 있었는데, 125일차 정도였던 것 같다. 서울 길바닥평화행동 사람들과 함께 와서는 나는 '여러분들의 투쟁은 정당합니다. 여러분들은 고립되어 있지 않아요. 저는 이 투쟁에 지지를 보내고, 힘을 실어주러 왔습니다'는 식으로 말을 했었다. 이제 촛불집회는 600일을 훌쩍 넘어서 계속 되고 있으며, 주민들은 국가에 대한 믿음이나 의존을 철저히 버리고 자신들의 힘으로 자치를 해나가고 있다.
지난 2월 초 팽성에 유례없이 큰 눈이 내린 적이 있었다. 밤사이 내린 눈으로 모든 도로가 눈으로 뒤덮여서 평택역과 대추리를 오가던 버스도 그날은 운행을 중단했다. 그렇게 눈이 많이 왔지만 대추리에 제설차는 들어오지 않았다. 어차피 평택시에서는 미군기지 수용 예정지역에 굳이 세금을 뿌려가며 제설차를 보낼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주민들은 정부의 도움을 기다리고만 있지 않았다. 이른 아침부터 신종원 씨가 트랙터를 몰고 나선 것이다. 눈이 수북하게 쌓여있던 마을이 금세 말끔해졌다. 서로 믿고 의지하는 주민들에게 더 이상 정부는 필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국가가 주민을 버린 곳에서 비국가 자치공동체가 자라나고 있었다. 나는 이곳 황새울 들녘에서 국가를 넘어서는 자치 운동은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가, 국가조직으로 대표되는 위계적 질서를 거부하는 공동체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며 배우고 있다. 또한 노무현이 직접 찾아와 수십 억원의 돈을 준다 해도 땅에서 나갈 수 없다며 그저 농사를 짓고 싶다는 촌로들의 간절한 소망을 들으며, 황금만능주의가 판치는 자본주의 세상에서도 돈으로 살 수 없는 고귀한 생명과 평화의 가치가 대추리, 도두리에 깃들어있다는 믿음이 생겨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서로 아끼고 돌보는 공동체가 파괴되어 서로 친하던 이웃이 어느 순간 원수가 되어 버린 것에 대해 가장 큰 슬픔을 느낀다고 한다. 주민들 사이에 분열을 조장하고 이간질을 획책해온 국방부는 참으로 악랄했던 것이다. 그러나 저들이 파괴해버린 상호부조의 끈끈한 민중의 삶의 원리를 남아있는 주민들은 평화지킴이들, 인권활동가들 그리고 사회운동단체 활동가들 등 '외부세력'과 하나 되어 다시 복원시켜 나가고 있다. 평택의 평화를 지키러 들어오는 다양한 사람들을 주민들은 마음을 열고 따뜻하게 대해주고 있기에 '대추리 바이러스'가 그렇게 널리 퍼지고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반미=민족사랑? 글쎄…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외부세력은 어떤 단일한 목적을 갖고 들어온 사람들도 아니고, 누가 가라고 시켜서 들어온 사람들도 아니다. 노동자도 있고, 선생님들도 있고, 학생도 있고, 나처럼 활동가를 가장한 백수들도 있다. 그렇기에 성향도 다양하다. 서울에서 선전전을 하다보면 팽성의 주민이 아닌 사람은 무조건 한총련으로, 그리고 반미주의자나 폭도로 알고 있는 시민들의 의외로 많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나는 비폭력을 내 실천의 중요한 축으로 삼고 있기에 폭도는 아니며, 학생도 아니기에 한총련이 아는 것은 확실한데, 반미주의자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미국의 무지막지한 군사적 패권주의를 누구보다 혐오하며, 그 제국이 깡그리 망하기를 그래서 이 세상에서 전쟁의 위협이 현저히 감소하길 누구보다 절실히 바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분명 반미주의자이다. 하지만 반미를 외친다고 해서 자연적으로 민족을 사랑하는 애국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나에게 민족은 극복의 대상이지 애정의 대상은 아니며, 국가 역시 철폐의 대상이지 사랑의 대상이 아님은 분명하다. 노동자가 자본가를 사랑할 수 없듯이 민중이 외치는 애국은 어쩐지 어색하게 들린다. 국가란 그 우두머리가 부시든 노무현이든 김정일이든 소수의 지배자들이 다수의 인민을 결국 강압으로 통제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없다. 팽성에 주둔해 있는 미국 군인에게도 이것은 사실이다. 나는 K-6 기지 근처에서 미군들에게 질문을 해보았다. 당신들은 왜 이역만리 땅에 와서 총을 들고 있느냐고. 그들은 대부분 돈이 없어서 왔거나 미국을 사랑하기 때문에 국가를 위해 무엇인가 하고 싶어 온 사람들이다. 이라크에 가 있는 한국군 자이툰 부대 장병들 역시 똑같은 대답을 한다. 돈을 벌고 싶거나 또는 애국을 하기 위해 왔다고 말이다. 그런데 그 국가가 지금 대추리, 도두리에서 어떤 짓을 벌이고 있는가? 땅에 뿌리를 박고 살아온 농민들에게, 가난하고 힘 없는 사람들에게 국가는 민주주의라는 최소한의 허울마저 훌훌 벗어던지고 그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실체를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 벼랑 끝까지 내몰린 빼앗긴 사람들이 울부짖고 있는데, 국가는 전투경찰과 군대를 보내 방패로 찍고, 몽둥이 세례를 퍼붓지 않았는가? 이에 저항하지 않는 사람들까지 무차별적으로 연행해 가두고, 구속을 시키지 않았는가? 우리는 이미 1980년 광주를 잊었다는 말인가? 그때 국가폭력의 실체를 가슴에 똑똑히 기억하지 않았나. 정권이 몇 번 바뀌고, 민주화가 되고, 인권신장을 위한 국가기구가 설치되는 등 표면적인 변화가 있었다고 해서 국가의 폭력적 본질이 바뀐 것이 아님을 우리는 지금 현재 황새울 들녘을 불법적으로 점거한 군인들과 경찰들을 보며 생생히 느끼게 된다.
사실 팽성 주민들에게 국가는 이미 '깡패'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미 지난 2월 주민들은 주민등록증을 모아 불태우며 자치를 선언하고 더 이상 국가의 보호를 받지 않고, 국가의 통제도 거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주민들은 몇 년 동안 대화를 하자고, 땅을 버리고 나가고 싶지 않다고 절박하게 외쳐 왔지만 입법부와 사법부 그리고 행정부의 힘을 모두 동원한 국가는 귀를 틀어막은 채 일방적으로 사업을 추진해왔다. 깡패짓을 하고도 거리낌 없는 이 국가를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가진자들은 더 많이 갖기 위해 노력할 테고, 기득권은 점점 소수의 손에 집중되어 가는데, 한정된 자원을 차지하기 위한 약탈은 더욱 심해질 테고, 자연과 인간에 대한 착취도 더욱 노골적으로 벌어질 텐데, 그리고 점점 늘어만 가는 빼앗긴 사람들의 불만에 국가는 이제 군대까지 동원해 자신의 폭력적 의지를 관철시키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애국의 물결, 깡패를 사랑하자고? 곧 다가올 월드컵 기간에 다시 이 땅은 애국의 물결로 넘실거릴 것이다. 나는 최소한 대추리, 도두리에서만큼은 애국자들이 없어졌으면 한다. 미국을 반대하면서 애국을 이야기하는 것은 성폭력에 반대하면서 성폭력 가해자를 두둔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끊임없이 전쟁을 벌여 체제를 유지시켜 나가는 미국, 그리고 이에 기생해 이윤을 챙기고, 기득권을 유지해가는 한국의 지배계급이 밀실에서 손을 잡고 황새울 들녘을 무기와 군대로 채우려고 하는데 우리는 그 빌어먹을 국가는 이제 평택에서 물러나라고 주장해야 하지 않을까. 다름이 차별이 아닌 차이로 인정되길 바라는 나는 국가주의에 물들어 '미국과 맞장을 떠도 지지 않을 강한 국가'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운동하는 사람들이 평택의 평화를 지키기 위한 투쟁에 많이 결합하고 있다는 사실을 별로 개의치 않는다. 다만 그놈의 국가라는 것이 팽성의 농민들을 어떻게 대접했는지 꼼꼼히 따져볼 필요는 있을 것이다. 한민족이 외세의 침략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특히 '양키들'에게 짓밟히지 않기 위해서는, 또는 독도를 호시탐탐 넘보는 일본에게 지지 않기 위해서는 군사력이 강한 북한과 경제력이 강한 남한이 통일해 강한 국가를 세워야 하며, 이를 위해 미군을 내쫓는 평택 투쟁이야말로 '애국적 투쟁'이라고 설교하시는 분들도 있다. 행정대집행을 막기 위해 모인 평택지킴이들을 '애국투사'라고 사람들이 부르며 일제시대에 활약한 독립투사 같다고 하신다. 글쎄. 난 전쟁의 위협을 몰고 오는 미군은 열화우라늄탄을 비롯해 저들이 가져온 무기들과 함께 한반도에서 지금 즉시 모조리 사라져야 한다고 믿지만, 그렇다고 한민족 국가를 세우는 것이 답은 아니라고 본다. 우리가 국가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이미 소수 주민들의 외침은 들리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팽성의 농민들을 보며 나는 다시금 '누구의 입장을 갖는가'가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게 된다. 진정한 민주주의의 모습이 600일 넘게 이어지고 있는 황새울 비국가 공동체에서 나타나고 있다. 국가가 없는 곳에서 인권과 평화의 가치를 소중히 하는 사람들과 함께 모여 밭을 일구고 땅을 지키며 살고 있다. 이곳에서 애국은 깡패를 사랑하자는 것이다. 아름답고 따사로운 세상이 되기 위해서는 애국자가 모두 없어져야 한다는 권정생 선생의 시를 노래로 불러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