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펙에 반대하러 부산에 갔는데,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새까맣게 깔려있는 경찰들밖에 없었다.
난 경찰이 너무나 싫구나, 하는 강렬한 느낌이 들었어.
아무리 아름답고 좋은 곳이라도 경찰들이 몰려 있으니까 그곳에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야.
특히 숙소가 있던 해운대 근처에는 경찰들이 골목골목마다 건물 입구마다 우르르 몰려 있어서 정말 진절머리가 났어.
경찰이 날 볼 때마다 불심검문도 하려고 했고, 그때마다 내가 경찰관직무집행법을 들먹이며 현행범으로 의심받을 사유가 전혀 없기에 불심검문을 거부한다고 하긴 했지만, 하여간 기분은 매우 나빴지.
원래는 부산에 내려간 김에 며칠 자전거 타면서 좀 놀고 돌아다니고 하려고 했지만 그 경찰들 때문에 영 기분이 나지 않아서 예정보다 일찍 서울로 돌아왔단다.
세상에는 높고 길다란 장벽이 많이 있지.
너무도 튼튼하게 건설되어서 내 힘만으로는 어쩔 수 없는 장벽들.
새만금 방조제가 그중 하나야.
예전에 그걸 직접 보러 가보았을 때, 그 방조제는 너무도 튼튼하게 지어져서 난 남은 여생을 곡괭이 하나만을 들고 그 방조제를 내 손으로 직접 허물면서 보내고 싶다, 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고립시키는 길고 긴 장벽도 있어.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자유를 그 장벽은 완전히 가로막고 있는데, 그것 때문에 팔레스타인 마을은 거대한 감옥이 되어버렸잖아.
사진으로만 많이 보았던 장벽인데, 이것 역시 새만금 방조제와 마찬가지로 당장 허물지 않으면 안 되는 장벽이라고 생각해.
마음대로 이동할 자유를 제한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은 도로턱이나 육교나 계단이나 좁은 도로나 화장실이나 모두 장벽이야.
그러고보니 세상에는 정말 장벽이 많긴 많구나.
인간들은 왜 이런 장벽들을 만들고 있을까?
왜 지금도 이렇게 쓸모없는 장벽들을 계속 건설하고 있을까?
나에게 필요한 장벽은 단 하나야.
나와 저 진절머리 나는 경찰들, 그들을 부리는 국가, 국가와 공생관계인 자본가.
이 둘 사이를 완벽하게 갈라놓을 수 있는 높고 긴 장벽.
국가가 자본이 경찰이 군대가 내 삶의 영역으로 단 한 발자국도 침투할 수 없도록 완벽한 단절을 가져다줄 수 있는 튼튼한 벽 말야.
이 벽만을 남겨두고 다른 모든 장벽들은 모두 허물어버리고 싶어.
어쩌면 난 이 벽을 이미 쌓아가고 있는지도 몰라.
그 벽은 어떻게 생겼을까?
팔레스타인 고립장벽이나 새만금 방조제처럼 콘크리트와 철근과 돌로 만들어지지는 않았을거야.
왜냐하면 국가와 자본은 이미 그런 장벽은 쉽사리 파괴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거든.
그런 장벽을 건설하는 자들은 쉽게 파괴해버리기도 하는 법이야.
난 그 장벽이 숲처럼 생겼다고 생각해.
나무들이 모이고 모여서 널리 무리를 이루면 바로 숲이 되는데, 드넓은 숲이 형성되면 그 안의 나무들은 다른 생명체들과 어울려 살아가면서도 외부에서는 그 울창한 숲 안으로 쉽사리 들어올 수가 없거든.
철조망이 없어도 그 숲은 자립적으로 살아가면서 외부의 감시나 원조를 받을 필요가 없단말야.
당신은 나는 모두 한 그루의 나무가 되어야 해.
모진 비바람을 혼자서는 견뎌낼 수 없는, 울창한 숲이 되어서 함께 서로를 지켜줄 수 있는 그런 나무 말야.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단결'이야.
하나가 된다는 것은 모두가 같은 나무가 된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큰 숲이 된다는 것이 아닐까.
그 안에는 다양한 나무들이 있지만 하나의 숲에서 제각기 생긴대로 살아가지.
숲을 이루어서 아스팔트와 석유와 콘크리트 없이도 잘 살 수 있는 나무가 우리들은 되어야 해.
그런 튼튼한 장벽을 만들어 나가야 해.
손을 잡지 않아도 바로 옆에 서 있는 그런 존재가 서로에게 되어주어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