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전쟁거부자들경계를 넘어 2005/09/12 21:27 MBC에서 방영한 '미국의 전쟁거부자들'이라는 프로그램을 보았다.
그 프로그램에는 5명의 미국 전쟁거부자들이 나온다.
모두 2003년 3월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벌어진 이라크 전쟁의 끔찍한 실상을 직접 체험하고 미국 군대에서 탈영한 사람들이다.
나는 예전부터 탈영의 방법으로 병역을 거부한 미국 군인들의 이야기를 들어왔고,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미국은 다들 알겠지만 모병제를 실시하는 나라이다.
자신의 의사에 따라 군대를 간다는 말이다.
그런데 자본주의의 천국 미국에서 과연 완전히 자신의 의사에 따라 군대를 가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될까?
모병에 응하는 미국의 군인들 거의 전부는 전쟁의 실상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경제적 압박에서 탈출하고 싶다' 또는 '국가에 충성을 바치고 싶다' 등의 이유로 군 입대를 결심하게 된다.
미국에서 가난을 탈출하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대학 졸업장을 따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기 위해서 드는 학비는 막대하다.
경제적 여유가 없는 대부분의 빈곤층 젊은이들이 군대를 택하는 이유는 바로 군대에서 복무하면서 또는 군복무를 마치면 대학을 다닐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기 때문이다.
조금이나마 가난을 벗어나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원하는 사람들이 역설적으로 가장 비인간적인 제도인 '군대'에 몸을 담게 되는 것이다.
자본주의 천국 미국의 가장 어두운 면 중 하나다.
그런데 입대를 한 미국인들은 신병 훈련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는지, 그리고 실전에 배치되면 어떤 상황을 겪게 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런 상태에서 막상 군사훈련을 받고 이라크 전쟁 같은 부당한 전쟁에 투입되면 이라크 사람들(거의 대부분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한 민간인들)을 향해 총을 쏘아야 하는 비극이 시작된다.
영어를 이해하지 못해 금지선을 넘어 돌진해오는 이라크 민간인 차량에 대한 사격을 거부한 한 미국 군인에게 직속상관은 다음에도 다시 사격을 거부하면 총에 맞든 감옥을 가든 둘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협박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의 의사에 따라 입대를 결정했지만 전쟁을 접하고서는 대부분 후회를 하게 되고, 그중 진정 용감한 일부는 탈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전쟁이라는 끔찍한 것을 싫어하는 인간의 본성상 매우 자연스런 일이다.
미국의 모병관들은, 그리고 한국의 병무청도 마찬가지이지만 젊은이들을 군대에 집어넣을 때 이들이 실제로 어떤 일을 겪게 될지 자세하게 설명해주지 않는다.
다만 '국가를 위해 충성을 바쳐라' '조국을 지키기 위해 나서라' '용감한 군인이 되어라' '신성한 국방의 의무' 등의 달콤한 사탕발림만이 있을뿐.
베트남 전쟁 당시 수 만명의 미국 젊은이들이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거나 탈영의 방법을 통해 전쟁을 거부했다고 한다.
그리고 2003년 이라크 전쟁 발발 이후 제대로 알려지지는 않고 있지만 아주 많은 미국 군인들이 탈영을 해 전쟁에 참여하기를 거부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거의 대부분 미국 국경을 넘어 캐나다로 가서 살고 있다.
미국 정부는 이 탈영자들을 비난하고 매도한다.
그러나 가장 직접적인 책임은 전쟁의 실상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채 달콤한 말로 젊은이들을 군대로 잡아들이는 미국 정부에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비슷한 책임을 한국 정부에도 물어야 한다.
민간인의 신분에서 군인이 된다는 것은 개인의 삶에 있어서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다.
손에 총을 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전쟁이 발발했을 경우에 민간인과 군인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평시에는 사람을 죽이면 커다란 범죄를 저지른 것이 되지만 전시에는 적국의 총을 든 전투원을 죽이면 영웅적인 행위가 된다.
내가 민간인일 때는 평시든 전시든 중요하지 않다.
나를 죽인 사람은 살인범이 되어 처벌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손에 총이 쥐어지는 순간 나를 죽인 사람을 영웅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전쟁이다.
군대에 들어간다는 것은 나 자신이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 만들어진 집단에 들어간다는 뜻이요, 그런 전쟁에 내몰리더라도 국가의 명령에 따라 죽을 수도 있음에 동의하는 것이다.
하지만 징병제가 시행되는 한국에서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이런 동의를 구하는 절차는 없다.
나아가 군인 즉 전투원이 된다는 것이 진정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젊은이들을 신병훈련소로 끌고 들어간다.
한국 정부나 미국 정부나 마찬가지로 그 구성원들의 손에 총을 쥐어 주기 전에 전투원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철저하게 인간성을 파괴할 수 있는 것인지 솔직히 알려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젊은이들을 군대로 데려가는 것은 책임의 방기이며 그 구성원들을 기만하는 것이다.
징병제도가 실시되는 한국에서 전쟁에 참여하고 싶지 않다는 나의 의지(요즘에는 이것을 양심이라고 표현한다)와는 무관하게 나는 군대에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내가 죽어도 정부는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는다.
군대에 들어간다는 것은 전쟁체제라는 거대한 기계의 일개 부속품이 되는 것이다.
한 부속품이 망가지거나 사라지더라도 곧 다른 수 많은 부속품들로 대체해버리면 되기 때문에 정부로서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미국의 전쟁거부자들은 이런 전쟁기계를 돌아가게 하는 부속품이기를 거부하고 탈출한 사람들이다.
누구보다 가까이서 전쟁의 실상을 경험했기에 군대라는 이름을 가진 그 전쟁기계가 얼마나 광폭하고 잔혹한 것인지 몸으로 느낀 사람들이 바로 전쟁거부자들이다.
모병제를 실시하는 미국 같은 나라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이 인정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총을 쏴서 저놈을 죽여라' 등의 구호를 목이 터지도록 외쳐야 하는 신병훈련을 경험해보고서야 병역거부가 얼마나 절실히 필요한 것인지 느끼게 되었다고 한 미국 전쟁거부자는 이야기한다.
그는 이라크 전쟁의 잔혹한 폭력성을 직접 겪고 나서는 그 끔찍함이 가져온 정신적 상처 때문에 아직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전쟁의 아픔이란 직접 겪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아니, 겪어보기 전에 알아야 하는 것이다.
'전시에 탈영을 하면 총살'이라고 군대에서는 주입을 시키지만 실제로 탈영이나 병역거부가 가장 필요한 때가 바로 전쟁이 벌어지는 상황이라는 점을 미국의 병역거부자들은 잘 보여주고 있다.
역사적으로도 처음 병역거부권이 인정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중이었던 것이 우연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전쟁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는, 그래서 돈 없고 힘 없는 젊은이들을 모조리 군대에 보내 '일격필살' 같은 구호를 외치며 산을 달려 올라가 인민군 복장을 한 사람들을 총칼로 찌르고 베는 훈련을 받게 하는 한국 같은 징병제의 나라에서 병역거부권이 인정되어야 함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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