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최고의 두부를 찾아서

식물성의 저항 2005/04/08 04:19
며칠 전에 '오리'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오리는 이땅에서 병역거부보다 채식에 대해 사람들이 갖고 있는 거부감이 더 큰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하더군요.
제가 아는 사람 중 하나도 제가 채식을 하는 것이 못마땅한지 절 만날 때마다 은근히 내 속을 긁어놓으려고 농담 비슷한 말을 한 마디씩 던지곤 합니다.
뭐라고 했냐면,
"야, 채식하는 사람들은 두부를 워낙 많이 먹어서 뇌에 석회가 가득 차있다면서?"
 
그래요.
채식하는 사람들은 고기를 먹지 않으니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해서 두부를 비롯해 콩으로 만든 것들을 자주 먹지요.
예전에 채식을 하기 전에는 콩이 무척 싫었었죠.
콩을 두고 '땅에서 나는 쇠고기'니 이런 말들을 했었는데, 그 때는 '하도 사람들이 콩을 먹지 않으니까 콩을 먹게 하려고 그런 말을 지어냈나보다'고 생각하기까지 했답니다.
콩에 대한 안좋은 기억은 또 있어요.
감옥에서 생활하는 것을 '콩밥을 먹는다'고 하죠.
그래서 밥에 콩이 들어가면 꼭 그것을 골라내고 먹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오히려 밥에 콩을 넣어서 먹지만요.
 
하여간 예전 박정희가 집권하던 70년대 말에 어느 악덕업자가 두부를 만드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간수 대신 값싼 석회수를 사용해서 커다란 파동이 일었었는데, 놀랍게도 그때 기억이 아직 남아서인지 두부를 먹으면 석회가 몸에 쌓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는 모양입니다.
 
사실 식재료에 들어가는 돈을 줄여서 더많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 저질, 불량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은 수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존재하는 것은 마찬가지인데요, 그렇긴 하지만 예전의 석회두부는 이미 역사속으로 사라져버린 것이겠지요?
값비싼 두부를 먹을 처지가 못되기에 저는 싸구려 두부를 주로 사다 먹는 편이긴 하지만 그럴 때마다 '혹시 이게 석회두부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자꾸 생기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면서 기분까지 나빠지는 것이에요.
내 머리속에 남아있는 석회두부의 추억을 하루빨리 지워버리고 싶습니다.
 
석회두부가 내 인생 최악의 두부였다면 내 인생 최고의 두부도 있어요.
2005년 2월의 마지막날 저는 사람들과 함께 새만금 바닷길 걷기를 하고 있었죠.
그날은 김제 지역을 따라 걷다가 오후 늦게 망해사에 도착한 날이었습니다.
만경강과 동진강이 만나 거대한 갯벌을 이루는 그 드넓은 갯벌을 망해사에서는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데, 그래서 이름도 바다를 바라본다는 뜻의 망해사라고 지은 것 같습니다.
망해사에서 잠시 쉬면서 우리들은 맛좋은 부안 막걸리도 먹었죠.
각 지역에서는 모두 자신의 고장의 이름을 딴 막걸리를 주조하는데, 역시 부안에서 만든 막걸리(그날 먹었던 것이 줄포 막걸리인가요? 저는 먹질 않아서 잘 기억이 나지 않음)가 맛이 제일 좋다고 하더군요. 
하여간 다른 사람들은 망해사에 앉아서 바다바람을 맞으며 막걸리를 마시고 저는 부안 주민이신 김화선님이 손수 만들어온 두부를 먹었어요.
직접 손으로 만든 손두부가 맛있다는 것이야 다들 아시겠지만 특히 요즘 두부는 대부분 미국산 대두를 가지고 만드는데 김화선님이 만든 두부는 직접 부안에서 기른 콩으로 만들었다고 하더군요.
고소하고도 부드러운 두부의 맛에 하루종일 걸었던 피로가 싹 가시는 듯 했습니다.
잘익은 김치와 함께 한입 크게 베어먹던 그 두부 생각만 하면 지금도 입에 침이 고이는데, 그 두부를 먹으면서 저는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어요.
 
'아, 이 두부는 지금까지 내가 맛본 최고의 두부구나'
 
예전에 어느 일본 만화를 봤는데, 진정한 두부의 맛을 찾아 미국인가 어느 먼 나라에서 일본까지 달려온 어떤 두부에 미친 사람의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그 사람은 좋은 간수를 쓰면 다양한 맛이 조화된 오묘한 맛의 두부가 나온다고 말했던 것 같아요.
그정도로 두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제가 봄이 오는 어느날 해가 질 무렵 망해사에서 차오르는 바닷물을 바라보며 새만금 갯벌을 살리기위해 함께 걷던 사람들과 맛보았던 그 두부의 맛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날 행복하게 해줄 그 두부를 다시 먹기 위해서라도 계화도에 꼭 다시 가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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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4/08 04:19 2005/04/08 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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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수진 2005/04/08 19:55 Modify/Delete Reply

    오늘 도서관에 갔더니 두부로 해먹을 수 있는 수십가지의 요리방법을 소개한 책이 있더라고요.. 언제한번 두부 만들기를 비롯해 두부요리 파티 한번 해볼까요?

  2. 돕헤드 2005/04/09 02:04 Modify/Delete Reply

    두부요리 파티라면 언제든 환영입니다!

  3. 두부녀 2005/04/09 14:23 Modify/Delete Reply

    >>제가 아는 사람 중 하나도 제가 채식을 하는 것이 못마땅한지 절 만날 때마다 은근히 내 속을 긁어놓으려고 농담 비슷한 말을 한 마디씩 던지곤 합니다.
    : 그걸 속 긁는 것으로 생각했다니, 사준 빵이 아깝다!

  4. 아침 2005/04/09 18:11 Modify/Delete Reply

    그 두부먹으러 갈 때 불러, 나의 새 친구를 타고는 신나게 달려볼테니 ^^

  5. 돕헤드 2005/04/11 18:39 Modify/Delete Reply

    두부녀님이 사준 빵은 제가 잊지못할만큼 맛이 좋은 빵이었어요.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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