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물머리를 그대로 내버려둬
나의 화분 2011/06/07 02:30
매일매일 20km 정도의 단거리는 타고 다녔지만 장거리 라이딩이 오랜만이어였는지 쉽게 지치는 것 같았고, 또 시골의 오르막길이 힘들게만 느껴졌다.
아직 내가 이 길에 자전거로 많이 다니지 않아서인지 익숙하지 않아서 이리라, 고 생각했다.
두물머리 컨테이너로 들어서자 먼저 유영훈 팔당공대위 위원장이 길에 서서 공사 현장쪽에 사람들이 서서 막고 있으니 그쪽으로 가라고 손짓해주었다.
자전거를 타고 들어오는 나를 반갑게 맞이해주면서 말이다.
서규섭, 최요왕, 봄눈별, 말랴, 잇 등 먼저 와있던 농민들과 친구들이 역시 나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첫번째 공격에서 저들은 간을 보러 올 것 같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더 한 명이라도 더 많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저항에 따라 저 포크레인 삽날의 공격을 늦출 수도, 막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명의 힘이라도, 한 명의 정성이라도, 한 명의 열정이라도 더 모아내야 한다.
프레시안과 KBS 그리고 오마이뉴스 기자들도 모였고, 이 정도면 공사 차량의 진입은 막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람들도 속속 집결했다.
결국 얼마 후 분위기를 알아챈 저들이 공사차량 한 대에 문제가 생겼다면서 진입 자체를 포기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핑계를 대면서 김빼기 작전을 펼치는 것이라고 농민들은 성토했다.
며칠 내로 반드시 다시 올 것이라면서, 이에 속지 말고, 더욱 굳건히 이곳을 지키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나는 이곳에서 다시 한번 대추리와 도두리 농민들의 질긴 자존심을 보았다.
이것은 땅에 뿌리를 박고 살아온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대지에 대한 깊은 애정에서 비롯된 고고한 존엄의식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돈으로 꺾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님을, 돈을 던져 주면서 먹고 떨어지라는 것은 오히려 이들을 모욕하는 것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황새울 농민들에게서 배웠고, 용산 철거민들에게서도 배웠고, 두리반의 유채림과 안종녀에게서도 배운 것이다.
그리고 이제 두물머리 농민들이 같은 싸움을 시작하려고 한다.
고단하고 힘든 싸움이 될 것이다.
더불어 몇몇 농민들에게만 맡겨놓아서는 안 되는 그런 싸움이기도 하다.
이것은 모두가 나서서 함께 짊어져야만 하는 싸움이다.
나는 두리반이 승리로 끝나면 다시 두물머리로 들어갈 궁리를 하고 있다.
두물머리는 흙도 좋고, 햇빛도 잘 들어서인지 일주일마다 가면 풀들이 엄청나게 자라나 있다.
이렇게 생명력이 넘치는 곳은 별로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공사차량들이 물러간 뒤 두물머리 유기농 텃밭을 둘러보았다.
새 소리, 풀벌레 소리, 개구리 소리, 닭과 개 소리, 딸기가 익어가는 소리, 파릇파릇 돋아나는 소리, 아이들 소리.. 온갖 소리들이 나를 맞이해주었다.
고마웠다.
아직 그대로 있어줘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