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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나이얼

지난 주부터 약간 억울한 상황에 빠져있는데

사람들은 나는 가만 있어야 한다고, 절대 끼어들지 말고 피해있으라고 조언을 했다.

그 조언을 받아들여 조용히 침묵하고 있지만

잠을 잘 수가 없다.

새벽이면 깨어나서 이미 사라져버린 잠의 꼬리를 붙들려고 노력하다가

아침을 맞곤 한다.

 

세 개의 글을 써야 하고

수업 준비도 해야 하지만

그리고 한의원에도 가고 싶지만

심한 무기력증에 빠져있고

누군가의 얼굴을 보면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같아서

그냥 혼자 가만 있는 중이다.

 

작업실에 가야 하는데 역시나 못 가고서

기분전환을 위해 마당에 나가

야생민트밭의 잡초들을 뽑다가

벌에 쏘였다.

너무 아팠다.

 

다시 집에 들어와서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영화들을 보았다.

아주 많이많이 보았다.

그러다가 만난 '디나이얼'

 

지금의 나를 위한 영화인 것같다.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어빙을 비판하는 책을 썼다가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한 주인공은

학자로서 증언대에 서기를 원하지만

변호사들은 단 한 마디도 못하게 한다.

피해자들도 증언대에 서지  못하게 한다.

예전 재판에서 어빙이 피해자들을 조롱했던 화면을 보여주며

어빙에게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을 심문할 권리를 주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재판이 위기에 처한 날, 주인공은 실망하고 변호사들을 원망한다.

그런데 자신의 변호사가 어빙을 멋지게 한 방 먹인 날

와인을 사들고 와서 이런 대화를 나눈다.

 

주인공:저는 어렸을 때부터 늘 제 일은 스스로 해왔어요. 제가 가진 건 제 목소리와 양심 뿐이죠

변호사:문제는 가장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효과가 있는 건  아니거든요.

 똑바로 서서 악마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자신의 감정을 말하고 싶겠죠.

 그럼 어떻게 될까요? 패배의 위험을 감수하게 되죠. 당신만을 위한 게 아니예요

가만히 앉아서 입을 꾹 다물고 이기는 거죠. 자기를 부인하는 행동이죠.

주인공:자기  양심을 다른 사람한테 맡긴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 줄 아세요?

 

내게 그런 변호사가 있나?

나는 18살때부터 스스로를, 스스로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왔다.

나 또한 가진 것은 나의 목소리와 나의 양심 뿐이다.

나의 양심이 의심받을 때

괴롭다. 힘들다.

 

변호사 주인공이 와인을 너무 좋아해서

그걸 보고 오랫동안 방치해둔 와인을 한 잔만 하고 싶었는데

(수술 후 나는 알콜은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아왔다)

와인 따는 법을 잘 모르겠더라.

20분이 넘는 시간을 써가며 마개를 따고

한 잔 하려는데 맛이 너무 없었다.

되는 일이 없는 것같다는 생각을 했다가

마음을 다잡음.

영화를 보든 산책을 하든 이 늪같은 상황에서

마음까지는 늪에 빠지지 말아야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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