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초같은 여성. 명예 남성 .

이런 말로 과거의 나를 자조를 섞어 규정하곤 한다.

최근까지 여성주의적 문제를 마주하거나, 누군가 나에게 그러한 것들에 대한 의견 혹은 도움을 요청할때 이런 식의 단서를 붙이곤했다.
"나도 혼란스러워. 왜냐면 나도 얼마전까지 거의 명예남성에 가까웠거든. 마초였지.남성들의 사회에 편입되고 싶어했어. 흔히 남자의 로망이라는 것에 걸맞는 취향에 호응하고 소녀 취향이 아닌 나를 자랑스러워했지. 넌 여자같지 않다. 터프하다. 이런말을 칭찬으로 여겼어."등등등.

이말은, 겸양을 가장했지만, 빠저나갈 구멍을 파는 사전작업에 해당하기도 하고  정면 충돌을 피하기 위한 우회의 수단이기도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런 말을 했던것은 '정말' 혼란 스러웠기 때문이다. 가부장적 편견, 억압, 습속이 내 뼛속까지 배어있다고 생각하니 모든게 의심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이런말은 남성적인가? 이런 태도는 마초적건가? 이런식으로 '성찰'을 넘어선 '자기검열'에 이르는 상태까지 나를 몰아가고 있었으니까. 남성성과 여성성의 이분법과 그에 대한 가치판단을 무자르듯 하려고 하는 것이 다시 혼란으로 나를 몰아가고 있었다. 생물학적 본질주의가 얼마나 억압적일수 있는지, 성역할 구분이 얼마나 억압적일 수 있는지 잘알고 있으면서 반대로 나는 그 성별 감별법을 작동시키고 본질주의적인 생각을 하곤 했기 때문이다.(이에 대해서는 쓰기로했던 '남성페미니스트'에 관한 글에서 더 쓰기로하고..)

결심한다. 명예남성이었다는 과거를 들먹이면서 내 의견을 피력하는 것에 대한 위험부담을 줄이려는 짓을 하지 않겠다고. 물론 과거를 성찰하는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하지만 나는어두웠던 과거를 들먹이면서 자신의 한계를 긋고 그안에서 편리하게 안주하고 있다.
특히나 일부 남성들과 여성주의적 문제를 논 할때, 내 과거 레파토리로 나는 논쟁의 '완충지역'을 계속 만들고 있다. '아, 나도 니맘 잘 알지, 내가 예전에 그랬었거든. 다 이해해.' 어물쩡어물쩡 논쟁을 피해간다.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는 이런 구실로  언제나 내가 '판단유보'의 구실을 스스로 만든다는 것이다.구실로서 성찰을 이용하는것은 얼마나 후진가..

내자신이 판단할 근거가 아직 충분하지 않다라는 입장을 넘어서서, 누가 모범답안을 배달해주길 기다리지 않고, 두발로 서야겠다. 틀렸다면, 여기저기서 현명한 여성주의자들이 비판해 주겠지!


Vanessa Beecroft
  VB 08  http://vanessabeecrof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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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30 02:21 2004/12/30 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