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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과 관련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마음 아픈 이야기들이 많다. 오늘 입양부모들이 있는 한 카톡방에서 입양을 준비하던 한 가정이 입양을 포기하겠다는 말고 함께 카톡방을 나갔다.
문재인 대통령이 2021년 신년기자회견에서 말을 하던
여전히 입양하고자 하는 마음은 강하지만 아이하고 맞지 않는다고 할 경우에 입양아동을 바꾼다든지
이런 차원이 아니라 그 부부는 입양을 하고자 하는 마음은 강했지만, 결국 입양 상담을 받는 동안 재산이 없다는 이유로 입양 기관으로부터 거절을 당했기 때문에, 결국 입양을 포기한 것이다.
나는 이 부부를 잘 알지 못한다. 단지, 그들이 지금 어떤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지는 상상은 된다. 왜냐하면 만약 2012년 이 후 현재의 입양특별법 아래에서 내가 아이를 입양하고자 했다면, 분명 나도 거절을 당했을 테니까.
그들이 입양을 결정하기 까지 얼마나 힘들었을 까? 그리고 그 힘들 결정 과정을 넘어서 입양 상담 까지 진행을 했는데, 입양을 진행 할 수 없다는 것이 재산 문제로 인한 것이라고 할 때 얼마나 마음이 답답했을 까?
지난 2012년 입양특례법이 전면 개정되면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생각해보면 우리 부부가 2012년 전면 개정된 입양특례법이 아닌 그 이전에 아이들을 입양한 것은 기적이다.
우리 부부가 첫 아이를 입양하던 2006년 가정 형편은 정말 뭐라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광명시에서 미자립교회를 하고 있었고, 3층 건물 중 2층에서는 교회를, 3층 위 옥상에는 건물주인과 이야기를 해서 가건물에 방을 만들어 살고 있었다. 바닥은 전기 판넬이었고, 요즘과 같이 추운 겨울이면 장모님 댁으로 피난가야 하는 곳에서 우리는 살고 있었다.
아내는 1년 전 몸이 많이 아팠었고, 교회는 들어오는 게 수입이고, 나가는 게 지출인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 부부는 첫째를 입양했다. 겨울이면 첫째는 다른 집에 가게 되면 얼굴이 벌겠다. 추운 집에 있다가 더운 집에 들어가면 일어나는 현상을 아는 사람들은 알거다. 그런 아이가 지금 16살 사춘기를 지나고 있다.
입양 상담을 할 때 아이는 돈으로 키우는 것이 아니라는 취지의 말씀을 해주신 담당자 분께 너무나 감사하다. 당시 살고 있는 집을 방문을 하셨을 때, 옥탑방 가건물 원룸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셨음에도 두 사람을 보니 아이와 함께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취지의 말씀도 해주셨다.
사실 2012년 이 전에는 우리 같이 가난한 목회자들도 많이 입양을 했었다. 어떤 이들은 기독교 가정에서 아이들을 입양하는 것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사실 부정적 시각으로 이야기하는 이들의 말처럼 아이를 입양하는 목적이 무슨 선교니 이런 차원의 접근이 아니었다. 아이를 낳는데 선교의 목적으로 아이를 낳나?
현재는 입양 업무를 사후관리만 하는 곳이지만, 그곳에서 우리 부부는 첫 아이를 만났고, 덕분에 우리는 둘째도 만날 수 있었다. 만약 재산이나 건강 문제로 첫째 아이를 만나지 못했다면, 둘째도 그리고 지금 같은 우리 부부의 삶도 없었을 것이다.
2012년 이전 가난하지만 아이들과 잘 살아보고자 했던 많은 집이 입양을 했다. 그런데 2012년 이 후 가난한 집에서는 아이를 입양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졌다.
2006년 첫 아이를 입양했던 기관 담당자와 이야기를 나누던 기억이 있다. 담당자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기독교인들이 나이가 많이 들어서 입양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가 시편 127 편 3 절과 같은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와 같은 내용들 때문이라고는 말씀을 하셨다.
아이를 낳지 못하면 뭔가 신앙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서 다양한 노력을 하다가 결국 입양을 결정하느라 나이가 많아져서 온다는 말씀이었다. 지금도 아이를 낳지 않으면 뭔가 신앙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분들이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 내 나이가 30대 후반이었음에도 젊은 부부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필요할까? 내 나이 34에 결혼을 했으니 무슨 말이 필요할까? ㅎㅎㅎ
당시 그 기관에서 공개입양으로 아이를 입양한 집이 우리가 첫 사례였을 정도로 공개입양은 우리 사회에서 이제 막 자리를 잡아가고 있던 상황이었다. 한국입양홍보회라는 입양 가족 단체가 공개입양이라는 말을 꺼냈고, 나는 먼저 공개입양의 길을 걸었던 선배들의 글을 읽으면서 입양에 대해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어쩌면 내가 이렇게 글을 적는 이유도 입양 선배들이 일기장이라는 것에 글을 적었던 것처럼 누군가에게 입양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아서다.
입양특례법이 전면 개정되어 실행이 되던 2011년, 입양에 대한 공적 시스템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던 이를 만났다. 우연찮게 한국입양홍보회를 갔었는데, 당시 나는 입양에 대해 나름 마구 마구 열정이 높았을 때 였다. 왜냐하면 당시 둘째 입양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당시 회장이었던 한연희 씨가 뿌리의 집 김도현 대표를 만나러 간다고 해서 얼떨결에 같이 갔었다. ( https://blog.naver.com/coolie1/110108447645 )
김도현 대표 부부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입양특례법이 전면 개정되어 실행된다면, 입양되는 아동의 수가 극벽하게 줄어들 것이고, 결국 입양이 되지 못하는 아이들은 시설에서 생활을 해야 할 텐데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던 것 같다.
김도현 대표와 나는 입양에 대한 어느 지점에 있어서 평행선을 걸었고, 지금도 그 평행선은 좁혀지지 않고 있다. 어쩌면 더 많이 어긋났을지도 모르겠다.
할 말이 많은데 또 길어지는 것 같아 정리한다.
아이를 양육함에 있어서 재정 안정이 중요하다는 걸 나도 인정한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데 재산이 가장 큰 중심에 선다고 한다면 더 이상 나와 같은 가난한 사람들은 입양을 하지 못할 것이다.
윈스턴 처칠이 이야기 했다지? 바람이 불지 않으면 노를 저어라
그래 바림이 없으면 노를 저으면 되지.
사진은 지난 2021년 1월 16일 강화도 동막해수욕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