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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장 일지
* 이 글은 농성 중인 피해 노동자가 직접 작성하신 글입니다.
유성동지들이 다시 일터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기쁘다. 유성동지들의 합의안에 대해서는 나는 잘 모른다. 그저 잘못한 것도 없는데 길거리에서 더 이상 고생하면서 고통을 안당해도 된다는 생각에, 내 일이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내일처럼 기뻤다. 며칠전 유성동지가 다녀가면서 나에게 “동지가 우리보다 먼저 들어가시면 밥사세요.” 해서 그런다고 했는데, 유성동지들이 먼저 들어갔으니 나에게 밥을 사주어야 한다. 언제 와서 밥사려나. 기다린다. 유성동지들은 나에게 밥을 사시오!
오후에 조합원들에게 농성장을 지키라하고 운동을 하러 갔다. 가다보니 어버이연합 할아버지들이 모여서 앉아있고 학생들이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기에 한 장 받아 읽어보니 희망버스를 절망버스라고 비난하는 글이었다. 순간 화가나서 “학생, 제대로 알고 이런일 하는거야?”하고 물으니 그 학생 알고하는 일이라고 대답한다. 아무리 돈이 좋고 뭘 몰라도 그렇지 어떻게 “예”하고 서슴없이 대답할 수 있을까. 그 학생 얼굴을 보면서 내가 아는 동생이 희망버스 갔다가 어버이연합이라는 분들이 떼로 달겨들어 꼬집고 때리고 해서 온몸이 멍투성이가되서 다쳐서 왔는데 왜 이런 거짓말을 하냐며 제대로 알고하라고 하고 돌아왔다. 젊은애가 쫌 한심했다.
조금 걷고 있는데 수정씨한테 전화가 왔다. “언니, 어디계세요.”한다. 나이론 동생인데 늘 언니처럼 챙겨준다. 나는 운동중이라 걷고 있다고 하니 농성장에 KBS 기자가 왔다고 가까이 있으면 가보라고 한다. 기자란 말에 으~~~~, 인제 좀 덜할때도 됐는대, 아직도 기자들은 스트레스고 예민해진다. 처음엔 기자님들이 취재를 해가면 금방 내문제가 해결될거라 생각했던 아줌마였는데, 이제 조금은 안다. 매스컴을 탄다고 금새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수정씨에게는 알았다고 하고 농성장으로 갔다.
내가 여지껏 본 카메라하고 달랐다. 사이즈도 엄청 크고, 카베라 옆에 먼지털이게 같은것이 하나 달려있었다. 합이 셋, 남자만 셋이 왔다. 첫인사가 늦게와서 미안하다고 사건을 알고있었는데 국가인권위 결정이 났기 때문에 문제가 해결이 났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면서 전날 공투단 발언대에서 권수정씨 발언하는 소리를 듣고 알았다고 한다. 그래서 찾아왔다고 겸손하고 진솔해 보였다. 여러 가지 얘기를 하고는 적당한 날을 잡아서 농성장의 하루를 촬영하겠다고 한다. 언제나 그랬듯이 카메라는 부담 그 자체다.
8월 18일, 8월의 크리스마스 퍼포먼스가 있는날로 잡아서 촬영을 했다. 새벽 미명 5시 30분에 노조로 가서 샤워를 하고 왔더니 기다리고 있다. 오는 길부터 찍기 시작했다. 8월의 크리스마스 행사는 성공적으로 마쳤다. 청계천 옆에서 물소리를 들으며 루돌프사슴코 노래가 울렸다. 너무 새로웠다. 여성가족부 건물주가 우리 농성장에 설치해준 나무가 트리를 달기엔 아주 적합한 나무다. 우리가 적절하게 활용한 것이다. 케롤송 중에 제일 맘에 든 것은 징글벨을 개사한 곡이다. 재미났다. 한여름밤의 복직 크리스마스 퍼포먼스는 성공리에 끝났다. 고생하고 애써주신 많은 단체와 농성장을 채워주신 많은 분들과 고구마 케익을 사와서 뒷풀이도 즐겁게 도와주신 진보신당, 아침부터 하루종일 무거운 카메라들고 촬영하느라 수고한 케이비에스 기자님들, 모든 분들게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날 고사리같은 작은 손으로 솜을 이용해 눈을 만들던 진보신당 홍춘 씨의 딸이 너무 귀엽고 예뻤다. 인기짱이었다. 내 덕분에 방송 한 번 지대로 탔다. 요새는 홍춘 씨에게 언제 티비에 나오냐고 물어본단다.
진보신당 동지들이 요새 여성가족부 농성장에 자주 오신다. 구자혁 동지는 내가 여가부 앞에 처음 농성장 차렸을 무렵 비가 오는 날 처음 보았다. 진보신당에서 오신 동지들 모두 우비를 입고 바닥에 앉아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이날 처음 왔다가 나에게 비오는 날 모자를 빼앗긴 동지다. 벗기고 나니 훤하여 조금 미안했다. 그래도 웃으면서 아낌없이 주고간 동지가 그때만 해도 이렇게 자주 오실 줄 몰랐다. 비가 그렇게 오는데 우비를 입고 앉아 찐감자를 맛있게 나누어 먹었다.
진보신당 구자혁 동지는 멀리서 걸어오면 눈이 좀 부신다. 한쪽 어깨엔 기타를 메고 인자하게 웃으면서 나타난다. 항상 손에 먼가 들려서 온다. 씨디, 테잎, 녹음기능이 동시에 되는 성능좋은 건전지용 라디오를 사오셨다. 노래듣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라디오는 끝내주는 선물이었다. 내가 가끔 혼자서 농성장 지킬때면 그냥 있기가 맘이 울적한대 음악을 들으니 훨씬 났다. 우리 지회 조합원동지들과 함께 한잔하다가 실수로 우리조합원이 구제역 동지라고 부른 바람에 한바탕 웃었다. 구제역! 생각이 깊고 믿음직한 진보적인 동지다.
진보신당 김홍춘 동지는 수줍게 웃으며 찾아왔다. 아는 것도 많고 똑똑한 동지인데 겉으로 보기엔 정말 착하고 순진해 보이는 순박한 여성이다. 술도 못마시게 생겼지만 은근히 잘 마신다. 토요일날 점심을 해온다 해서 맛있게 먹어야지 하면서 기다렸다. 밥보다 먼저 김치 버무리는 커다란 다라는 꺼내놓았다. 이름하여 다라비빔밥이다. 맛도 크기도 칼라도 끝내주는 점심이었다. 수정이 생각이 났다. 이런거 좋아하는데, 나만 먹으려니 사진을 찍어 수정씨 핸드폰으로 보내주었다. 얼마전에 김홍춘 동지가 시집을 한권 주셨다. 김홍춘 동지의 시가 담긴 시집인데 보니 마음에 편안해지는 시였다. 세상에는 참 재능이 다양한 사람들이 많다. 그러고보니 나는 별로 재주가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새삼 드는 날이었다. 홍춘 씨는 망초꽃 당신이란 시를 내게 지어주었다.
김성만 동지가 홍춘 씨가 만든 시를 보고는 노래를 지어주었다. 노래 제목은 ‘작은꽃 아픔으로 피다’, 김성만 동지는 내가 아산공장에서 추운 겨울을 날때도 찾아와서 책과 씨디를 주면서 힘내라고 격려해준 동지다. 서초경찰서로 처음 상경했을때도 기운내라며 자기가 아끼는 엠프시스템이라고 두고 쓰다가 투쟁이 끝나면 돌려달라며 빌려주고 가셨다. 나에게 박사랑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김성만 동지는 자상한 동네 아저씨 같다.
진보신당 고미숙 동지는 가냘픈 갈대와 같은 여인이다. 홍춘 씨보다 먼저 우리 농성장에 비빔밥맛을 보여준 동지이다. 강된장 맛이 독특한 비빔밥이었는데 그날 수정씨가 참 맛도있게 먹던 모습이 생생하다. 물론 나도 맛나게 먹었다. 이 두 동지들 다라 싸이즈가 자기 체격처럼 달랐다. ^^ 그 조그만 체구로 어떻게 들고왔는지 만화책을 한보따리나 끙끙거리지도 않고 씩씩하게 들고와서 여가부앞 마당에 내려놓고는 환하게 웃는다. 덕분에 심심할 때 잘 봤다. 보고싶은 분들은 여가부앞 농성장으로 오세요. 고미숙 동지 감사해요.
진보신당 김수경 동지는 건강한 체구에 시원시원한 성격이다. 50일 문화제 때 걸개그림을 해다준 동지, 영어,한문, 일어로된 외국인을 위한 번역 현수막을 신경써서 걸어두고 본인이 흐뭇해하던 모습이 인상깊던 아줌마다. 내가 기분이 별로인날에는 벌써 알고 내게 신경을 써준다. 김수경 동지의 남편은 금속에서 일하신다. 법없어도 살아갈만큼 착한 사람이라고 얼굴에 써있는 아저씨, 농성장에 두분이 오면 술 조금만 마시라고 아내가 구박해도 한마디도 안하신다. 두분의 금슬이 부럽다.
작은꽃 아픔으로 피다의 걸개그림의 문구가 시도 지어지고 노래도 만들어지고 천 장의 티도 탄생시킨 동지의 연대에 감사드립니다.
국민참여당 여성위원동지들이 우리 농성장에 점심을 한번 가져와서 먹고 간뒤로 아주 열심히 도와주려고 많이 애를 쓰고 있다. 농성장에 찾아와 애쓰는 모습이 고맙다. 기사를 써서 오마이뉴스에 올려주겠다고 한다. 처음 찾아와서 1년이나 된 내용을 설명하느라 조금 피곤했지만 찾아온것이 늦었다면서 도울길이 없나하고 걱정해 주는 진심이 담겨있어 고맙다.
4차 희망버스가 청계광장으로 오는 날이다. 오후가 되니 삼삼오오 점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청계광장에 깃발들이 들어오면서 시끌벅쩍 해진다. 수정씨는 녹색티를 입고 나는 자주색 티를 입고 티셔츠 판매를 했다. 저녁 밥 먹는것도 잊고 여러동지들이 오셔서 함께 티셔츠를 입고 판매를 해주셨다. 그동안 희망버스를 한번도 못가봐서 가보고 싶었는데, 내가 있는 청계광장에서 행사를 하니 좋았다.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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