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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장 일지
* 이 글은 여성가족부 앞에서 피해 노동자와 함께 농성을 하고 있는 권수정 대리인 님이 작성하신 글입니다.
9월 23일 금요일 농성 114일
재판을 방청했다.
가해자의 변호사는 직업을 잘못 선택했더군. 변호사가 아니라 배우를 했어야 한다. 리액션을 그렇게 많이 하는 변호사 처음 봐. 우리변호사가 증인심문에 앞서 심문 내용중에 사건과 상관없이 언니의 개인적인 사생활의 내용이 많으니 비공개로 진행하면 좋겠다고 했다. 판사보다 먼저 이여자가 날렵하게 끼어들어 우리 변호사를 경멸하는 눈빛으로 처다보며 “피고들에 대해서는 이미 언론으로 전국적으로 다 떠들어놓고 왜 원고는 비공개로 하자고 합니까?” 한다. 순하고 착한 우리 변호사 ‘뭐 이런 여자가 다있어’하는 표정으로 쳐다보기만 하고 말말을 못하더군. 나같으면 “그게 가해자와 피해자의 차이죠. 원래 가해자는 처벌하고 피해자는 보호하는 것이 우리 법이거든요. 그것도 모르면서 변호사해서 돈벌면 쪽팔리지 않아요?” 했을텐데. ^^ 이건 내방식이고 우리 변호사의 방식은 아니다.
증인으로 나온 금양물류 동료는 연습을 많이 했더라. 여러 가지 거짓증언을 하는데 상황마다 모범답안을 똑같이 말한다. 그 결과 그 상황을 조금더 집요하게 질문하면 갑자기 자기쪽 변호사를 쳐다보고 기억이 안난다고 했다가, 더 집요하게 물으면 결국 다른말을 한다.
그런데 그런 질문들을 모두 판사가 했다. 증인에게 이렇게 집요하게 질문하는 판사를 보지 못했다. 검사출신인가? 그결과 누가 보기에도 증인이 거짓말한다는 것, 증인의 말이 이상하다는 느낌을 갖게 되는데, 판사가 우리를 도와주려고 그랬다기 보다는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궁금한것을 물어보니 그런 결과가 되었다는 느낌이다. 적어도 판사가 사건의 맥락을 잘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다행이었다.
한편 가해자들의 변호사는 증인이 언니에 대한 불륜이니, 잘삐지는 성격이니, 언니가 오히려 성적농담을 즐겨했다느니 등의 증언을 하면 “아휴”, “네에~~, 그랬군요.” 이런 말로 증인을 격려하며 마치 엄청난 진실을 밝힌다는 태도로 분위기를 몰하가더라. 어처구니 없다.문득, 저여자들은 참 잘어울리는 한쌍이네. 저렇게 살아 행복할까. 가해자를 편들어 거짓증언하는 여자와, 그것을 격려하며 편집해가는 여자를 보며 궁금해졌다.
피곤하다. 재판장에 아산공장에서 늘 보아온 현대자동차 관리자들이 떼로 왔더라. 지난 겨울 내내 우리 조합원들을 두들겨패고 발로 차고 했던 것을 내눈으로 직접 봤던, 그러지 말라고 항의하면 비린내나는 웃음을 흘리며 우리를 비웃던 그놈들이다. 어찌하여 신성한 법정에 개새끼들이 놀고 있는가.
9월 24일 토요일 농성 115일
오후 두시부터 청계광장에서 여성가족부 행사를 한다고 아침부터 시끄러웠다. 미리 둘러보니 제목이 ‘여성폭력없는 행복한 세상’이다. 성매매방지 특별법시행 8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더군. 이미 100일이 넘게 직장내 성희롱 당하고 해고된 억울한 여성노동자의 농성이 여가부 정문앞에서 진행되었는데 그것은 외면하면서 여성폭력 없는 행복한 세상이라고, 심지어 용역깡패 들에게 성희롱 피해자가 폭행을 당해도 모른척해놓고, 성희롱 예방교육을 하는 곳이기 때문에 할것이 없다면서, 여성폭력 없는 행복한 세상이라니, 이제보니 이것들이 정신병자 아냐.
성희롱 피해자의 농성장 옆에두고 햇살좋은 가을날 소풍나온 사람들의 여유있는 행복한 컨셉으로 지네끼리 놀고 있다고 생각하며 빈정이 상했다. 행사장 앞에서 1인시위를 하는데, 행사 진행하는 여성들이 피켓을 읽어보더니 힘내라고 격려해주며 간다. 다행이다.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이 모두 여가부 관료들처럼 정신병자들은 아닌 모양이다.
행사에 참여했던 김금래 여가부 장관님이 농성장을 방문했다. 언니의 손을 꼭 잡고 법적으로 어려움이 있지만 다양한 채널을 통해 최선을 다해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해 본다고 했다. 기다려보라고 한다. 고맙다. 백희영 전 장관과는 달리 어쨌거나 언니를 찾아주고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해준다니 고맙다.
아니나 달라, 장관님 옆에 앉은 여성가족부 관료, 권익증진과 과장인지 부장이었다는 이분 하시는 말씀이 기가 막히다. 전임 장관을 포함해서 그동안 농성장을 안찾아본 이유는 기자들이 두려워서 그랬단다. 한국일보 기자가 백희영 전임장관이 식품영양학과 출신이라 여성인권문제에 대해 잘모른다는 식으로 비판한 기사를 들먹이며, 자기는 기자들이 두렵단다.
“우리는 백희영 전임 장관이 무슨과 출신인지 알지도 못했어요. 우리가 그렇게 쓰라고 인터뷰한것도 아니고요. 우리가 인터뷰한 내용중에는 사실이 아닌것이 없는대요.” 했더니, 안단다. 그래도 두렵다네. 우리와 연관되면 기자들이 뭐라고 쓸지 몰라서.
뭐, 이런 여자가 다 있어.
“오늘도 김금래 장관님 아니면 안오셨겠네요.”
“네. 사실 저는 전직 장관님도 방문하신다는 의견이 있을때 제가 반대했거든요.”
“저런, 직장내 성희롱 당하고 길바닥에 나앉은 피해여성의 고통보다 언론이 무서운 본인의고통이 더 크다는 거네요.”
“네. 저는 그래요.”
이여자가 내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말한다. 하, 내가 졌다. 여가부의 노력이 부족해서 미안하다는 맆서비스 수준도 아니고, 여가부가 할 일이 뭔지 모르는 수준도 넘어, 기자가 무서운건 알면서 국민이 무서운건 모르는 여자네. 이건 뭐 땡깡부리는 초등학생이쟎아. 별나라 공주님이 왜 한국땅 국가기관 여성가족부에서 일을 하며 기자들 무서워하니. 그냥 니네 별나라로 가지. 그러나, 별나라로 돌아갈게 아니라 계속 세금 축낼거라면 지금이라도 잘 보렴. 니가 무서워해야 하는건 기자가 아니라 성희롱당한 피해자와 그 대리인이란다. 우리가 무서운 사람들이란다.
성희롱 당한 피해자의 고통보다 기자가 두려운 저런 관료들 밥먹이는 우리 국민들의 금쪽같은 세금이 아깝다. 어쨌거나, 장관님이 직접 농성장을 방문해 언니를 위로해준 것은 고맙다.
“장관님, 감사합니다. 기대하고 있습니다. 추워요.”
9월 26일 월요일 농성 117일
1.
오전 10시 영등포에 있는 근로복지공단에서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 수치심 유발 근로복지공단 규탄 및 성희롱 피해자 보호하는 산재조사 지침 마련 촉구 기자회견’을 했다.
지난 9월 1일날 직장내 성희롱으로 산재를 신청한 언니의 조사과정에서 벌어진 조사관의 2차가해에 대한 규탄이 주된내용이다. 더불어 이후에도 직장내 성희롱 산재신청하는 여성이 국가기관으로부터 2중의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내부의 매뉴얼을 준비하라는 촉구이기도 하다.
현대자동차에서 14년을 일하면서 성희롱을 당했고, 참다못해 사건을 제보하고 국가인권위에도 진정을 냈다는 이유로 해고된 언니는 다만 가해자 처벌과 복직을 바랄뿐인데, 다시 성희롱 당하기 전의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길 바랄뿐인데, 한걸음 한걸음이 모두 위태로운 비탈길이다. 우리나라의 첫 번째 직정내 성희롱 산재신청자가 되고 싶었던것도 아니고, 그것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다시한번 공단의 조사관에게 2차가해 당하는것도 언니가 원한것은 아니다. 하다보니 언니는 대한민국 성희롱, 성폭력 사건의 최전선에 서 있다. 언니에게 미안하다.
영등포 근로복지공단에서 기자회견을 마친후 바로 천안으로 내려갔다. 천안 근로복지공단에 항의하고 추가조사를 요청했다.
징징대는 여가부 관료들 짜증나더니, 근로복지공단 관료들은 멍청하든지 못됐든지 둘중 하나다. 아무리 말해도 못알아듣는다. 말을 못알아 듣는다. 그러면서 웃고 앉아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한다. 뭘 잘못했는지 뭘 바꿔야 하는지 못알아들으면서 다 들어주겠다고 한다. 결국은 벽이다. 우리 얘기를 들으려는 자세가 안되있는거다. 어쩔수 없이 들어주는 형식만 취하고 있는거다. 나쁜 놈들.
뒤통수를 후려칠수 없으니, 적당히 말하고 추가조사 했다. 언니와 내가 한번더 진빠지는 일이지만 지난번 조사를 금속노조 노안실에서 실수했으니, 어쩔수 없다. 정신차리고 이번에는 최선을 다해서 해야지. 지난번 조사가 폐지되고 없어진것이 아니라 살아있기 때문에 어차피 부담스럽다. 한국성폭력 상담소 토리 선생님이 옆에 함께해서 여러 가지로 도움을 받았다. 고맙다.
2.
왔다갔다 하는길에 기자들 전화 받으면서 여가부 건물 주인이 금속노조를 상대로 주거침입과 퇴거불응으로 고소한 사실을 알았다. 이런 된장, 여가부 장관님 너무하네. 바로 이틀전에 피해자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손 꼭 잡고 갔는데, 이건 또 뭐니. 쉽지는 않겠지만 추워지기전에 마무리 되도록 노력해본다더니, 그 마무리라는 것이 농성장 방빼라는 거였니. 뭐니. 국가행정부가 일개 건물주인이 하는짓을 점검하고 강제하지 못한다면 그게 말이되니.
이제 언니는 어디로 가야 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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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인권을 보호받으려면, 여가부가 아니라 인권위에게 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가부는 기득권층의 여성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단체입니다. 절대로 국민을 위한 인권단체가 아니죠. 복지부의 서비스 일을 받아가는 거 밖에 하지 않습니다. 근로복지공단의 실적은 노조와 회사의 관계 문제를 매끄럽게 해결하는 것입니다. 근로복지라는 이름에서 회사 측도 그 대상에 포함하기 때문에, 그들의 권익도 생각하게 되고, 무엇보다 공단에 주는 혜택을 저울질하죠. 모르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척이라는 것이 옳습니다. 안타깝네요.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