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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장 일기] 9월 2일, 농성장 침탈 당하던 날-용역, 경찰, 중구청의 연이은 합동 침탈

농성장 일지

  * 이 글은 여성가족부 앞에서 피해 노동자와 함께 농성을 하고 있는 권수정 대리인 님이 작성하신 글입니다.

 

 

9월 2일 금요일 농성 93일

 

1.

오전 8시 30분경 포크레인과 용역깡패 30여명 여가부 건물앞 도착. 9시 30분경 침탈.

 

다행이다. 박승희 여성위원장님 같이 있어서 불안한 마음이 덜하다. 여자 둘이나 셋이나 용역깡패 애들을 당할수 없는 것이야 똑같지만, 언니랑 둘만 있으면 마음이 더 안좋았을 것 같다. 어제밤 농성 끝낸 조합원들은 일찌감치 돌아간 다음이고, 마침 함께 있던 조성웅 동지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을 했다. 다행이다.

텐트안에서 용을 써봤자 용역깡패 여러명이 달랑 들어 내던지면 끝이다. 연락을 들은 금속노조 사무처 동지들이 도착을 한다. 누가 누가 왔는지 기억이 잘 안나는데 여러동지들이오셨다.

 

용역깡패 애들이 마치 포장이사를 하듯이 우리 텐트 두 개를 탐앤탐스 앞 인도쪽으로 가져다 놓은것을 도로 여가부 앞으로 끌고 왔다. 90일넘게 살았던 살림살이들, 한미리 식당 손님이라는 놈이 더럽다고 했던 우리 물건들이 길바닥에 여기저기 흩어져 서럽다.

언니와 나의 처지가 저와 같구나. 우리는 성희롱 당하고, 성희롱 당한것 말했다고 해고되서 억울하다고 어디 갈곳이 없어 여성가족부 앞에 나 앉아 농성을 하는데, 우리는 깡패를 동원해 치워야 하는 쓰레기구나.

 

여성가족부가 그래도 국가기관 아니냐. 니네가 판단하기에 내가 법을 위반했고 그리하여 우리 농성장을 치우고자 한다면 차라리 경찰을 부르지, 어찌 용역깡패냐. 국가기관이 용역깡패 뒤에 숨어 농성장을 침탈 하니. 니네는 그러고도 부끄럽지도 않니. 아무리 대한민국이 용역깡패의 나라라지만 여성가족부 공무원들 니네는 참 한심하다. 에라이, 식충이들아.

 

11시가 넘은 시간, 노조 사무처 동지들이 살림도 수습을 하고, 차에서 음향시설 꺼내 노래도 튼다. 용역깡패 애들은 우리를 밀어내고 포크레인으로 파헤친 자리가 마치 지켜야할 무엇이라도 되는양 삥둘러 서있다. 언니가 화가나 여성 용역깡패에게 너는 왜 그렇게 사니? 물어보니 웃으며 대답했단다. “배운게 이건데 어쩌라고.”

저런, 좋겠다. 좋은것 배워서 먹고 사는구나. 국가에서 너의 배운짓을 유용하게 써먹으니, 니네도 공무원해라. 너의 뻔뻔함의 배후에 국가가 있으니, 내 참 할말도 없다. 저것이 아직 어린데 저러고 평생을 살아 얼마나 많은 사람을 더 고통스럽게 할까.

 

 

2.

기아자동차 비정규분회 이상언 분회장이 돌지난 아들 유모차에 태워 아내와 함께왔다. 농성장이 침탈당한줄은 꿈에도 모르고 며칠전 아들의 돌잔치하고 남은 돈 중 일부를 투쟁기금으로 전달한다고 봉투에 넣어 왔다가 놀란다.

명동 철거민들 농성장 마리에 있는 동지들 몇 명이 허겁지겁 뛰어온다. 땀을 비오듯이 흘린다. 숨을 몰아쉬며 아침부터 명동 현장에도 포크레인과 용역깡패들 와서 대치하고 있다고 그래서, 이제야 왔다고, 또 가봐야 하지만 마음이 안놓여서 와봤다고. 한참을 앉아 있다 다시 침탈한다 소식받더니 뛰어간다.

사진찍은 덕에 기자들에게 사진 넘겨주며 분부한 조성웅동지는 그 와중에 틈틈이 시를 쓴다. 진이 빠져 누워버린 내대신 금속노조 사무처동지들이 연락받고 달려온 동지들 모아 12시에 규탄 집회를 한다.

 

3.

12시 30분경, 이번에는 경찰과 중구청 정비팀이라는데 철거담당하는 자들이 와서 침탈을 한다. 인도위에 있는 우리 텐트가 시민들의 통행을 불편하게 한단다. 이게 무슨짓들인지 모르겠다. 오전에는 용역깡패 오후에는 경찰, 내가 보기에 니네가 서로 다른일을 하는것도 아닌데, 왜 따로따로 와서 지랄들 하는지. 그리하여 이번에는 용역깡패 보는 앞에서 경찰이 쓰레기처럼 우리를 치우는구나.

 

연대오신 동지들이 고생을 많이 하셨다. 이제 돌지난 이상언동지의 아들 유모차를 경찰들이 번쩍 들었다 놓기도 하고 만삭인 정유림동지도 그 자리에 있었다. 농성장 텐트 붙들고 버틴다고 동지들 안전은 염두에도 없었으니, 뒤늦게 미안하다. 폭력에 대한 기억은 잠재의식 속에서도 오래가는 법인데, 부디 아이들이 별탈 없이 건강하기를.

와중에 임용현동지는 번쩍 들려 연행되었고, 더운날 얼음 동동뜬 시원한 냉커피 주겠다고 손수 준비해온 김홍춘동지는 도착하니 아비규환이라 황망해 하다 침탈끝난후 우리에게 냉커피 나누어 주고 가셨다. 세상에서 가장 맛난 커피를 먹었습니다. 고마워요.

 

4.

동지들이 도착한다. 농성장이랄 것도 없는 인도에 깔판 하나 깔고 앉아 챙겨주는 사람도 없으니 동지들이 스스로 서로서로 챙기며 함께 지켜준다. 가시는 동지, 오시는 동지, 먹거리 사오시는 동지, 모두들 알아서 지켜주시니 고맙다.

오후내내 여러 언론사 인터뷰에 바빴다. 어제까지 기운없던 우리언니, 농성장 침탈 당할때는 포크레인 앞에 가서 누워버리고, 용역깡패와 싸우느라 목이쉬고, 경찰이 침탈할때는 여기 만삭인 임산부있는데 니네가 뭔짓을 하는거냐고 소리치더니, 반복해서 말해야 하는 인터뷰도 씩씩하시다. 다행이고, 고맙다.

 

5.

저녁7시 농성장 침탈하는 여가부 규탄 촛불문화제 하고 쎄븐일레븐앞에 다시 텐트 두동을 설치했다. 역시 용역깡패, 경찰들 떼로 몰려와 한꺼번에 지랄하는데 많은 동지들이 함께 해주셔서 무사히 설치했다.

들어보니 오늘하루 제주 강정마을부터 명동의 철거민들과 우리 농성장까지 마음먹고 침탈을 했다. 명박기가 우리에게 추석맞이 선물을 안겨주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네.

 

촛불문화제에 많은 동지들이 발언해 주셨는데, 모두 고맙다. 집회 사회를 본 이원재 미비(미조직 비정규직) 국장님, 우리의 놀이터를 망가뜨려놓았다며 연대를 말씀하신 사회당 서울시당위원장님, 4차희망버스때 보고 와서 함께하고 있다는 시민분의 분노, 그리고 진보신당 구자혁 동지의 낮은 목소리가 울림이 깊다. “우리가 이 문제, 이정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진보정당들이든 금속노조든 민주노총이든, 우리가 이 정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운동을 그만두어야하는것 아닌가 생각이 든다.”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나영 동지의 마지막발언 또한 구구절절이 우리의 마음을 대변해준다.

 

모두들 고마워요. 우리 농성장의 ‘우리’는 나와 언니가 아니라 연대오시는 모든 동지들, 음료수 주고가시는 모든 시민들 포함한 ‘우리’ 농성장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확인시켜 줘서 고마워요. 침탈당해 황폐한 마음에 위로를 얻는다.

 

 

9월 3일 토요일 농성 94일

 

아는 병이지만 때마다 아프다. 때마다 눕는다. 어제 침탈당해 아직 살림살이도 마음도 어수선한데, 생리통이 심해 집으로 간다. 집에 다녀온지 오래되서 당장 갈아입을 옷도 없으니 어차피 한번 다녀오기는 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마음이 잘 놓이지 않는데, 그래도 간다.

 

아니나 달라. 집에 도착해 언니에게 잘 도착했다는 문자를 보내고, 언니는 아무일 없었던것처럼 “수정씨 잘쉬고 와요”답문자만 받았는데, 무슨생각이 들어 그랬는지, 잠깐 트위터 확인하니 그사이 농성장에 언니 혼자 있는동안 관리사무소 청소하는 사람이 텐트에 물을 뿌리고 언니에게 덤벼 싸운 모양이다.

 

걱정할까봐 말하지 않은 언니마음도, 몸이 두 개가 아니라 어쩔수 없다고 생각하며 누워버리는 내마음도, 그런데 모두 짜증이 난다. 누구에게랄 것 없이 무럭무럭 화가 차 오른다. 몸이 아프니 마음도 사나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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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장 일기] 8월 31일, 수술을 받아야 하는 딸과 농성장의 엄마 그리고 근로복지공단 산재인정 조사관의 2차 가해

농성장 일지

  * 이 글은 여성가족부 앞에서 피해 노동자와 함께 농성을 하고 있는 권수정 대리인 님이 작성하신 글입니다.

 

8월 31일 수요일 농성 91일

 

1.

수요일, 변함없이 혁명기도원의 기도회. 나는 이 시간이 참 좋다.

막걸리 좋아하는 언니를 위해 편의점에서 팔지 않는 ‘고급’ 막걸리 준비해서 오는 혁명기도원 원장 여정훈 동지도 좋다.

 

오늘 읽은 마르코 복음은 드디어 예수가 체포되어 재판을 받는 장면이다. 빌라도가 재판장이 되어 추궁을 하는데 예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이렇게 초라할 수가! 하나님의 아들이고 이스라엘 백성의 메시아가 아닌가. 신의 아들인데, 온갖 잡범들 속에 섞여 무기력하게 재판을 받는다.

나는 그 심정을 알것 같다. 내가 재판받을 때의 심정, 어쩌면 그렇게 검사들과 판사들은 말이 통하지 않던지. 특히 공안검사라는 자들은 어쩌면 그렇게 오만하고 사람말을 못알아들으려고 작정을 했던지, 그러면서 어쩌면 그렇게 잘난척을 하시던지. 판사들은 왜 그렇게 높은 곳에서 나를 내려다 보던지. 나는 우리나라 재판의 그 좌석 배치도 참 재수가 없다. 판사면 다야? 왜 니가 높은 자리에서 나를 내려다 보냐고!

 

그런데, 뭐여. 하나님의 아들도 별거 아니쟎아. 지들끼리 다 해쳐먹으면서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들에게만 호랑이처럼 덤비는 세상의 난폭한 질서앞에 이렇게도 힘없이 초라하챦아! 그래도 하나님의 아들인데, 요런꼴로 재판을 당하고 있으면 하늘이 쩍 열리고 번개라도 떨어져 빌라도 뒤통수를 후려치며 “야, 임마. 예수 걔가 내 아들이다.” 이런 소리라도 하늘에서 쩌렁쩌렁 울려야 하는것 아녀?

 

예수가 나랑 별로 다를것도 없네 뭐, 의기양양, 요렇게 생각하다 문득 대승불교의 그 유명한 유마경 한구절이 생각났다. ‘중생이 앓으면 나도 앓는다.’

인민들의 삶과 고통의 현장에서 함께 고통을 알아야 인민들을 구원도 할 것 아닌가. 예수도 부처도 모두 살아있다면 우리 투쟁의 현장에 함께 하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며, 새삼 혁명기도원 동지들이 대견해 보였다. 동지들 고마워요.

 

 

2.

오늘은 언니가 기도회에 참석하지 못했다. 언니의 큰딸이 무릎에 연골을 이식하는수술을 해야하는데 사전에 검사를 하고 수술날짜를 잡으러 가셨다가 기도회가 끝난후 지쳐서 발을 끌며 오셨다. 하루종일 몸이 불편한 딸과 함께 아홉가지 검사를 했고, 수술날짜는 내년 1월로 잡혔다고 한다.

 

오는길에 따님은 엄마의 일하는 농성장에 와보겠다 하고, 언니는 혹시라도 농성장의 초라한 텐트를보고 딸이 마음 아플까봐 못오게 하면서 실랑이 하다가 그냥 저녁만 함께 먹여 보내고 오시는 길이라고, 말하는 언니 목소리에 물기가 묻어난다.

 

미안하고 미안하다.

 

9월 1일 목요일 농성 92일

 

뭐가 잘 안되려면 여러 가지가 한꺼번에 엇박자가 난다. 안그래도 지난 며칠 유난히 언니가 심란하고 기운이 없는데, 7월말 신청했던 산재인정 조사 때문에 근로복지공단에 다녀 와서는 녹초가 되서 오셨다.

 

얘길 들어보니 가해자들의 편집본으로 언니에게 질문을 하고, 그 질문에 대해 피해사실을 말하면 언니의 진술은 제대로 적지도 않으면서 무려 4시간 30분을 언니를 앉혀놓고 진을 다 빼 놓았다는 것이다. 4시간 30분. 가해자의 의도대로 질문하고 피해자의 대답은 듣지도 않는 4시간 30분.

근로복지공단 조사관이 조사한답시고 오히려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했다. 기가 막힌다.

 

이번 사건의 경우 국가인권위에서 이미 성희롱이 맞고 성희롱으로 인한 고용상의 불이익을 당한것이 맞다고 판단했다. 공단에서 조사를 한다해도 인권위 조사 결과에 근거해 현장에서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권력관계에 의해 벌어진 일인지만 확인하면 된다. 아니 인권위에서 이미 다 결정한 것을 재조사 해야 한다는것도 짜증이 나는데, 도대체 피해자가 몇 번이나 자신이 당한 피해사실을 국가기관에 말해야 한단 말인가. 지루하게 남아있는 재판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미 인권위, 노동부에서 다 조사를 했고 모두 성희롱에 대해 판단을 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인권위에서 석달넘게 조사해서 판단을 했으면 근로복지공단이든, 노동부든, 여성가족부든 국가기관은 그 판단에 근거해 지네가 할 일을 좀 해야 할것 아닌가. 굳이 피해자가 다시 진정내고 고소하고 그러지 않아도 국가기관이 알아서 해야지, 그러진 못할망정 반복해서 피해사실을 말하게 만드는 그놈의 조사 자체가 화가난다. 그런데 그나마 그 조사라는 것도 가해자 편집본으로 질문하고 피해자의 대답은 문답서에 적지도 않으며 지가 쓰고싶은 말만 써놧다. 정말 가관이다. 어쩌면 이렇게 국가기관이라는 것들이 피해자를 골탕먹이려고 작정을 한듯이 지랄을 하냐는 말이다.

 

안그래도 낼 모레면 농성시작한지 100일이 되고 추석은 다가오는데, 얼마안있으면 해고된지도 일년이고, 날은 추워지고, 현대자동차는 쌩까고, 여가부는 성희롱 예방교육하는데라고 하더니 19금 쓸데없는 지랄이나하고, 길바닥에 나앉아 있는 언니 맘이 심란한데, 어쩌면 이렇게 국가기관의 공무원이라는 것들이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피해자를 한번더 후려치냐는 말이다.

 

내일 당장 노안실과 논의해서 조사를 중단시키고 조사관의 교체를 요구해야지. 전면 재조사 하도록 해야겠다. 다음에는 내가 같이 가야지. 지금까지 모든 조사를 언니와 함께 했는데, 나는 화장실도 따로 안가고, 언니 피곤하면 커피마시면서 쉬면서 하자하며 함께 했는데, 산재문제는 노안실이 전문이니 잘하겠거니 했더니, 내 실수다. 다음에는 내가 직접 가야지.

 

화가나서 잠도 안온다. 어디 가서 악이라도 써야 속이 좀 풀리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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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장일기] 피해 노동자 분이 농성에 연대하는 이들에게 전하는 따뜻하고 진심어린 메세지와 9월 20일의 일기

농성장 일기

 

* 이 글은 여성가족부 앞에서 농성중인 피해 노동자 분이 직접 작성하신 글입니다.

 

 

금속노조 정유림 여성부장 을 만나게 된 것은 내가 문제를 제기하고 사내하청지회와 나의 대리인 권수정씨와 함께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하던 날이다. 서울에서 보게 된 이 여성은 처음 본 날부터 따스한 봄 햇살과 같은 매력 있는 여성이었다. 처음 보는 나를 보는 눈빛이 애처로운 눈으로 나를 조용하게 바라보면서 내 곁에서 끝날 때까지 지켜보던 여인이다. 짧은 커트식 머리에 아담한 체구 딱 내 맘속에 들어왔다. 그렇게 보고 다시 본 것이 내가 인권위 진정 냈다란 이유로 사회통념상 근로관계를 계속 유지할 수 없는 경우에 해당 함으로 해고 통보서를 받고 난 후에 아산공장 앞에서 일인시위를 하다가 병원에 입원을 하고 있을 때에 답답하여 병원 복도를 나오다보니 여성부장이 찾아왔다. 괜찮으세요 하는 말에 그간 있었던 일이 서러워서 끌어안고 많이 울어버렸다. 보내고선 좀 창피했었다. 언니가 돼가지고 울었으니.. 성격이 차분하고 친절하며 조용한 여성이다. 아산공장에 문제 해결을 위해서 금속노조 김현미 부위원장님이 온다고 하면 유림이도 같이 오겠지 오면 얼굴 볼 수 있겠지하며 기다려지는 여성동지였다. 서울 상경투쟁에 다른 금속식구들이 한진이나 유성 때문에 정신없다는 이유로 잘 신경 못쓰고 있을 때 혼자서 끙끙거리며 이리저리 나름 애를 써 준다. 그런데 그 동안 시집을 갔다. 그것으로 끝난게 아니다. 속도위반으로 얼라를 가져버렸다. 점점 빠르게 배가 불러온다. 지금은 만삭이다. 내가 처음 봤던 그 청순한 이미지가 온대간대 없다 ㅜㅜ 지금은 몸매가 엉망이다ㅋㅋ 그래도 괜찮다. 한 번은 내가 뭐라고 했다. 언니한테 허락도 안 받고 아가를 만들었다고~ 이제 조금만 있으면 산후휴가를 들어간다. 서운하다. 뭔 날짜가 이라도 빨리 가는지. 되돌아보면 언니가 사랑을 받기만했지 해 준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아서 좀 미안하기도 하다. 10월이면 들어가는데 소식은 듣겠지만 언니 복직하는 것도 가까이서 봐야하는데 하는 생각에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 내 맘은 어여쁜 아가를 순산하고 산모와 아기가 건강하길 바랄 뿐이다. 그동안 내가 유림이한테 정이 많이 들은 것 같다. 그냥 다 이쁘다. 유림이 아기는 얼마나 예쁠까 기다려진다.

 

2010년 해고된 때부터 내 문제 해결을 위해서 수고하고 있는 금속 김현미 부위원장님 은 내가 서울 농성 시작한지 한달 반 정도 돼서야 그 분이 솔로인 걸 알게되었다. 이 분은 차가움과 따듯한 면을 동시에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나는 처음 아산공장으로 금속노조 여성부위원장님이 온단 소리를 들었을 때 그 때만해도 노동조합의 조직을 모르던 나는 금방이라도 해결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로 힘과 능력이 있다란 생각을 했던 것이다. 여성위원장하면 호칭부터가 멋있고 권위가 느껴졌기에 이제나 될까 저제나 될까 이번에 왔다 가면 무슨 얘기가 나왔나 기대가 되고 하면서 믿고 여기까지 왔다. 가끔 농성장에 와서 밥을 사주곤 하는데 어느 날 내가 위원장님께 투정을 좀 부렸다. 9월이 되고 추석은 다가오는데 복직에 대한 소식은 아무것도 없고 날은 가을로 접어들어 아침 저녁으로 벌써 쌀쌀해지기 시작해서 그런가 내 맘이 조금씩 심란해지기에 연고도 하나 없는 서울 한 복판에서 추운 겨울을 텐트 속에서 나야하는 심란한 맘에 내가 물었다. 위원장님 무슨 소식 없나요, 저 여기서 겨울을 나야 하는 건가요 했더니, 그러게 나도 그 생각만 하면 잠이 안와.. 하신다. 나는 또 바로 내가 괜한 투정을 했나 싶은 맘에 그럴죠.. 나하고 수정이가 텐트 속에서 자고 있는데 위원장님이 잠이 안 오겠죠 그냥 추석이 다가오니 답답해서 그랬어요. 제가 믿을 데가 어딨어요. 아산에서부터 위원장님 믿고 왔잖아요.. 했다. 그래, 나를 믿었으면 끝까지 한 번 믿어봐. 모든 게 다 잘 될거야. 내가 선거에 당선이 안되더라도 당신 일만은 해결할 수 있어. 그러니 걱정말어. 하면서 그날도 나를 위로해주었다. 내가 아산공장 앞에서 단식하면 해결될 문제이기도하지.. 좀 빠르게 하던 그 말도 난 잊을 수가 없다. 지금 시대가 금속이 예저만 못해서 그런가보다 하는 생각에 믿으며 기다리련다.

 

김형우 부위원장 은 금속 남성 동지들 중에 가장 농성장에 많이 온다. 비정규직 담당자여서만은 아닐거라 깊이 한 번 생각해 본다. 노동자의 길을 아는 것이겠지. 농성장에 처음 온 날 무지 시끄럽단 생각을 했다. 뭐지 저 사람은.. 속으로만 그랬다. 충남지부 사무국장 차를 타고 조합원과 함께 집회장으로 모금함을 돌리러 가는 중에도 계속 노동조합의 실태와 조직도를 논하더니 갑자기 나에게 화살이 꽂힌다. “동지는 고향이 어디요?” “전준디요” “아이고 그랴요, 나도 전주인데 여기서 고향사람을 만나네요, 반갑구만요, 전주 어디에요?” “평화동이에요” 한 것이 첫 날의 대화이다. 그 때부터 자주 찾아와서 그나마 농성장도 지켜주고 노숙도 2번이나 치루었다. 추석이라고 맛있는 것을 사주려고 왔다면서 씨익 웃는다. 한 여름에 자전거 타기며 걷기 대회며 공투단(공동투쟁단)이며 비지회(비정규지회) 당번으로 돌아다니더니 참 볼품도 없이 시커멓게 탔다. 까다롭지 않고 편해서 좋다. 내가 좀 많이 성질을 부렸다. 그래도 다 받아준 김형우 부위원장님께 이 글을 통하여 고맙단 말을 하고 싶다. 명절을 새고 오더니 맘이 심란하다고 한다. 인제 임기가 되어 전주공장으로 평범한 사원으로 고향으로 돌아간단 생각보다는 임기 때에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것에 대한 심란한 마음이 있으리라 미뤄 짐작해 본다. 현장으로 돌아가서도 열심히 싸울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김형우 부위원장님 파이팅.

 

여성민우회 에는 참신한 인재들이 많은 것 같다. 크리스마스 퍼포먼스에는 예쁘게 색칠도하고 그림도 그려서 건물주 관리인들이 농성장에 늘어 놓은 화분에 붙여주고 갔다. 그런데 우리 몰래 새벽에 물에 불려서 떼 내느라고 고생 꽤나 한 것 같다.ㅋㅋ 나도 없는 날에 문화제도 성대하게 치러주고 물티슈도 한 박스나 주고 갔다. 지금까지 요긴하게 잘 쓰고 있다. 명절 전에는 기분 전환하라고 가격도 비싼 뮤지컬 티켓을 무려 4장이나 주고 갔는데 제목은 ‘빨래’다. 참 배려도 깊지.. 자리가 햇살 자리다. 한국민우회 여성사업장에는 빨래터가 있나.. 주부들은 빨래하는 것을 싫어한다. 궁금하다. 어떤 빨래인지.. 한국여성민우회에 무궁한 발전이 있길 바라며 고마움의 마음을 전합니다.

 

9. 14

혁명기도원 은 신학대 학생들의 지지와 작지만 단 한번도 건너뛰지 않고 매주 수요일마다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기도회를 준비하여 농성장을 방문하여 주니 감사하다. 복은 하나님께 받으시길.. 처음에는 집에 있을 때 수정씨에게 전화를 받았다. “언니가 없어서 내가 대신 기도하고 있어요. 너무 좋아요”라고.. 나는 처음 혁명이란 단어만 듣고 혹시 사이비 종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조금 들어서 다음에 온 (자칭) 기도원 원장이라고 하는 학생을 보고 신상 조사를 하였다. 살짝 기분이 나빴을 수도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어쩔 수 없는 조사를 해야 했다.ㅋㅋ 지금은 조촐한 가족 모임 같아서 너무 좋다. 요새 수정이가 혁명기도원 깃발을 만들어준다고 열심히 구상중이다. 또한 아직은 세상의 때가 덜 묻은 학생들이라서 신선하다. 며칠 전 여성가족부가 폭력을 써서 무력으로 미어낸 것을 알고 가난한 제정에도 전단지와 대문짝만한 성명서를 만들어와서 여가부산성에 붙였다. 처음으로 전단지를 만들어 왔는데 주님이 가시면류관을 쓰신 모습이고 여가부와 경찰과 용역들은 너희들의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라는 말씀이었다. (여가부 안에서 일하는 분들이 이 성명서를 보고 회개하면 좋겠다.) 오늘은 명절을 보내고 처음 맞는 수요기도회다. 아직 어린 원장께서 “자매님 오늘 제가 선물을 가져왔습니다”하면서 “자매님의 눈 침침함을 도우려고 큰 글자 새 찬송가를 가져왔습니다”하며 웃는다.

예수님. 이 어린 순박한 청년의 기도가 하늘 아버지 보좌 앞에 상달되어져서 이들의 앞날이 열려지고 장차 이 땅에 죽어가는 수많은 뭇 심령들을 살려내는 크게 쓰임 받는 자 되게 해주시며 지금도 자기들의 잘못을 회개하지 않고 나라 곳곳에서 악행을 멈추지 않는 자본세력이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여 구원받게 하는 그런 기도원이 탄생 되게 하여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명절 저부터 나의 농성장 텐트 앞으로 매일매일 신문이 배달이 된다. 집에서도 안보는 신문을 길바닥에서 보고 있다. 우리의 화끈남 김기식 동지 가 그래도 바른 말을 하는 경향신문사를 선택해서 배달을 시켰다. “누님 제가요 티비도 없이 농성장에만 계셔서 세상 돌아가는 것을 잘 모르실까봐 이런 짓을 했습니다”하면서 껄껄 웃는다. 생각이 꽂히면 바로 실행에 옮긴다. 얼마 전부터 재능교육 농성장에도 보낸다고 한다. 덕분에 눈을 뜨면 아침에 신문을 보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아침 세안 후 신문과 함께 하는 모닝 커피는 죽여준다. 명절 때 과일이 많이 들어와서 사과 한 쪽도 같이 먹는다. 기식 동지 감사해요.

 

금속노조 에는 국제부장 이 있다. 이름도 예쁘다. 99일 문화제 끝나고 촛불문화제 티셔츠를 입고 왔는데 예뻤다. 그 자리에서 작은 꽃 티셔츠를 주고 촛불 소녀티를 바꿔 입었다. 나한테 잘 어울린다. 춥다고 이불과 옷을 가져와서 “언니 따듯하게 자요”한다. 문화제 끝나고 뒤풀이로 술 한 잔했다. 남성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아직도 여성의 능력을 인정해주지 않는다면서 눈시울을 적신다. 버들가지처럼 가냘프지만 흔들리는 세상 바라이 불어와도 부러지지 않는 꼿꼿한 여인이 되었으면 한다. 혜원 씨, 파이팅이야!

 

나영 이가 요새 부쩍 살이 빠졌다.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는 일이 많은가보다. 쌍코피가 터지고 몸살이 나서 백일 때도 못 왔다고 한다. 에고 이팔청춘을 그리 바치고 우짜노 걱정이다. 그래도 언니를 보겠다고 추석 보내고 일 끝나고 오밤중에 찾아왔다. 귀여운 베개 2개를 가지고. 빈 손으로 와도 이쁘고 고마운데 언니의 바램은 우리 나영이가 세상 고단함에만 매이지 않았으면 해요.

 

명절 전날에는 농성장에서 미리 송편과 부침개를 먹었다. 유림이가 송편을, 사노위 용현 동지가 부침개를 가져왔다. 송편을 보니 정말 추석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유현경 동지가 제주 초콜렛 두 박스를 사 왔다. 아직 안 뜯었다. 얼마 전에 4차 희망버스 전에 퍼머를 하더니 살은 좀 붙어 보이는데 나이 들어 보인다. 그래도 퍼머가 더 낫다.ㅋㅋ 생머리보다는 퍼머가 좀 더 따뜻해보이고 부드럽기 때문이다. 언제보아도 너무 부지런한 여성동지다.

 

99일 문화제에 참석한 동지가 침을 놓아주겠다고 한다. 원래 평소에도 물리치료는 받으러 가도 침은 무서워서 한의원 쪽엔 안갔다. 내일 오신다고 하기에 겁이 나서 명절 세고 오세요했다. 명절 때라도 결혼 안해서 별로 안 바쁘다고 그냥 오겠단다. 다음날 저녁에 제자 한 명을 데리고 침통을 챙겨서 오셨다. 다행이도 침탈된 뒤로 새로 장만한 텐트가 3인용이다. 3명은 가볍게 잘 수 있는 크기라서 아주 편하게 누워 침을 맞았다. 여의사인데다가 성격이 차분하고 꼼꼼하여 그런지 맘이 편해진다. 먼저 나의 체질을 파악하여 시술했다. 맞고 나서 정말 잘 맞았다란 생각이 들었다. 안 그래도 뭉친 어깨가 통증 때문에 조금씩 아팠던 참이고 농성장에서 앉아만 있으니 벌써부터 무릎이 아프다. 나도 이런데 수정이는 얼마나 아플까란 생각이 든다. 별명이 춤추는 한의사란다. 고맙고 미안하고 감사했다. 자기가 도와주고 싶은데 도울 건 침을 놔드리는 거란 마음을 감사히 받았다. 내가 알기로 재능교육에 농성장에도 한의사님이 매주 월요일마다 오셔서 침도 놔 주시고 약도 지어 주신다고 들었다. 세상엔 자본가들 빼곤 따듯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참으로 많은 것 같다. 춤추는 한의사님 꽃이불과 꽃베개 잘 덮고, 베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뭐라도 돕고 싶은데.. 언제 한 번 같이 춤춰요.)

 

9. 20

 

아침 일찍 몸에 냉기를 느끼면서 하룻밤을 넘기고 또 하루를 맞는 세상에 눈을 떴다. 아침마다 눈을 뜨면 생각한다. 오늘 하루도 아름답기를. 으래 그랬듯이 세면실로 가서 세안을 하고 가볍게 화장을 했다. 오늘따라 유난히도 가을의 찬바람이 세게 불어서 텐트가 펄렁인다. 쓸쓸하단 생각이 든다. 한 쪽에선 조금의 틈새도 없이 입구를 막아버린 또 하나의 텐트 안에 어제 온 조합원 동지들이 아직 곤히 자고 있다. 텐트 주변 여기저기에는 어제 4시부터 준비하여 밤 11시가 넘도록 고대와 연대가 축제를 벌이고 달아 놓은 파랑 빨강 풍선들이 바람에 부딪히며 난리를 치고 있다. 그걸 바라보고 있던 나에게 그 뒤로 보이는 탐엔탐스 커피숍이 보였다. 온 몸이 추위를 느끼던 참에 갑자기 나는 서울 상경 투쟁 이후로 탐스를 옆에 끼고 살면서 한 번도 나 혼자 한 잔의 여유로운 커피 한잔을 못 마셔 봤구나 하는 맘이 들었다. 자 그럼, 서울에 온지는 백일이 넘었고 해고 된지는 오늘이 딱 일 년이 되는 날이니 나도 한 번 우아하게 커피 한 잔 마셔볼까 하고 들어가서 이름도 괜찮은 ‘아메리카노' 한 잔에 바나나 브라우니라고 하는 딱 한 조각 싸이즈의 케익 같은 빵을 시켜놓고 유리 너머로 텐트와 풍선을 바라보고 있다. 감미롭게 흘러나오는 음악과 함께 나는 그렇게 해고된 지 일 년째 되는 날 아침을 맞았다. 문득 커피숖 안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살짝 무릎이 시리다는 느낌이 들면서 나에게 침을 놔 주시는 춤추는 한의사님의 말이 생각났다. 아침저녁으로 꼭 두 번 씩 산책을 하라고. 걸으라고. 조금 있다가 청계천 주변을 한 바퀴 돌아야지 하는 생각을 하며 커피를 마시며 김기식 동지가 넣어주는 신문을 보다보니 시간은 어느 새 8시를 넘어서고 있고 늘 그랬듯이 정신없이 바쁜 서울 시민들의 아침이 시작되었다. 한 무더기로 떼를 지어 걸어오다가 조그만 입구로 쏙쏙 들어가 사라진다. 여성가족부 건물주 관리인 한 명이 이따금 씩 우리 텐트 주변을 살피고 들어간다. 생긴 것부터가 (재수가 없겠다.)

해고 일 년째 오늘은 피디 수첩에서 촬영을 하러 온다고 한다. 참 기가 막힐 노릇이다. 대한민국 땅에서 그것도 글로벌이라는 대기업 현대자동차 안에서 성희롱 피해자를 해고시키는 일이 벌어지고 그것이 일 년씩이나 되었는데도 해결 못하는 현대차는 이 건으로 인해서 자기네들 기업 이름으로 피디 수첩까지 와서 찍어 방송에 나가게 만드는 것이 정말 우스꽝스럽고 쪽팔리는지를 모른단 말인가. 초등학생도 알고 지나가는 개도 알겠고만 이런 치욕스럽기까지 한 일을 현대자동차는 해결 못하고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있는 중이다.

오늘은 중식 때 현대자동차 영업소 앞에서 전국 동시다발 일인시위가 있는 날이다. 지난 번에 한진 청문회 때문에 관심이 많이 안 모아진 것 같긴 한데 오늘은 다른 일과 겹치지 않고 대박이 났음 좋겠다. 지지의 글 때문에 스마트 폰이 마비가 되도록.ㅋㅋ 지금 이 순간 기도한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본다. “내가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안과는 다르다” 성경 말씀 주님의 말씀처럼 오늘 한 날도 그런 평안을 제 맘속에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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