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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장 일지
* 이 글은 여성가족부 앞에서 피해 노동자와 함께 농성을 하고 있는 권수정 대리인 님이 작성하신 글입니다.
9월 2일 금요일 농성 93일
1.
오전 8시 30분경 포크레인과 용역깡패 30여명 여가부 건물앞 도착. 9시 30분경 침탈.
다행이다. 박승희 여성위원장님 같이 있어서 불안한 마음이 덜하다. 여자 둘이나 셋이나 용역깡패 애들을 당할수 없는 것이야 똑같지만, 언니랑 둘만 있으면 마음이 더 안좋았을 것 같다. 어제밤 농성 끝낸 조합원들은 일찌감치 돌아간 다음이고, 마침 함께 있던 조성웅 동지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을 했다. 다행이다.
텐트안에서 용을 써봤자 용역깡패 여러명이 달랑 들어 내던지면 끝이다. 연락을 들은 금속노조 사무처 동지들이 도착을 한다. 누가 누가 왔는지 기억이 잘 안나는데 여러동지들이오셨다.
용역깡패 애들이 마치 포장이사를 하듯이 우리 텐트 두 개를 탐앤탐스 앞 인도쪽으로 가져다 놓은것을 도로 여가부 앞으로 끌고 왔다. 90일넘게 살았던 살림살이들, 한미리 식당 손님이라는 놈이 더럽다고 했던 우리 물건들이 길바닥에 여기저기 흩어져 서럽다.
언니와 나의 처지가 저와 같구나. 우리는 성희롱 당하고, 성희롱 당한것 말했다고 해고되서 억울하다고 어디 갈곳이 없어 여성가족부 앞에 나 앉아 농성을 하는데, 우리는 깡패를 동원해 치워야 하는 쓰레기구나.
여성가족부가 그래도 국가기관 아니냐. 니네가 판단하기에 내가 법을 위반했고 그리하여 우리 농성장을 치우고자 한다면 차라리 경찰을 부르지, 어찌 용역깡패냐. 국가기관이 용역깡패 뒤에 숨어 농성장을 침탈 하니. 니네는 그러고도 부끄럽지도 않니. 아무리 대한민국이 용역깡패의 나라라지만 여성가족부 공무원들 니네는 참 한심하다. 에라이, 식충이들아.
11시가 넘은 시간, 노조 사무처 동지들이 살림도 수습을 하고, 차에서 음향시설 꺼내 노래도 튼다. 용역깡패 애들은 우리를 밀어내고 포크레인으로 파헤친 자리가 마치 지켜야할 무엇이라도 되는양 삥둘러 서있다. 언니가 화가나 여성 용역깡패에게 너는 왜 그렇게 사니? 물어보니 웃으며 대답했단다. “배운게 이건데 어쩌라고.”
저런, 좋겠다. 좋은것 배워서 먹고 사는구나. 국가에서 너의 배운짓을 유용하게 써먹으니, 니네도 공무원해라. 너의 뻔뻔함의 배후에 국가가 있으니, 내 참 할말도 없다. 저것이 아직 어린데 저러고 평생을 살아 얼마나 많은 사람을 더 고통스럽게 할까.
2.
기아자동차 비정규분회 이상언 분회장이 돌지난 아들 유모차에 태워 아내와 함께왔다. 농성장이 침탈당한줄은 꿈에도 모르고 며칠전 아들의 돌잔치하고 남은 돈 중 일부를 투쟁기금으로 전달한다고 봉투에 넣어 왔다가 놀란다.
명동 철거민들 농성장 마리에 있는 동지들 몇 명이 허겁지겁 뛰어온다. 땀을 비오듯이 흘린다. 숨을 몰아쉬며 아침부터 명동 현장에도 포크레인과 용역깡패들 와서 대치하고 있다고 그래서, 이제야 왔다고, 또 가봐야 하지만 마음이 안놓여서 와봤다고. 한참을 앉아 있다 다시 침탈한다 소식받더니 뛰어간다.
사진찍은 덕에 기자들에게 사진 넘겨주며 분부한 조성웅동지는 그 와중에 틈틈이 시를 쓴다. 진이 빠져 누워버린 내대신 금속노조 사무처동지들이 연락받고 달려온 동지들 모아 12시에 규탄 집회를 한다.
3.
12시 30분경, 이번에는 경찰과 중구청 정비팀이라는데 철거담당하는 자들이 와서 침탈을 한다. 인도위에 있는 우리 텐트가 시민들의 통행을 불편하게 한단다. 이게 무슨짓들인지 모르겠다. 오전에는 용역깡패 오후에는 경찰, 내가 보기에 니네가 서로 다른일을 하는것도 아닌데, 왜 따로따로 와서 지랄들 하는지. 그리하여 이번에는 용역깡패 보는 앞에서 경찰이 쓰레기처럼 우리를 치우는구나.
연대오신 동지들이 고생을 많이 하셨다. 이제 돌지난 이상언동지의 아들 유모차를 경찰들이 번쩍 들었다 놓기도 하고 만삭인 정유림동지도 그 자리에 있었다. 농성장 텐트 붙들고 버틴다고 동지들 안전은 염두에도 없었으니, 뒤늦게 미안하다. 폭력에 대한 기억은 잠재의식 속에서도 오래가는 법인데, 부디 아이들이 별탈 없이 건강하기를.
와중에 임용현동지는 번쩍 들려 연행되었고, 더운날 얼음 동동뜬 시원한 냉커피 주겠다고 손수 준비해온 김홍춘동지는 도착하니 아비규환이라 황망해 하다 침탈끝난후 우리에게 냉커피 나누어 주고 가셨다. 세상에서 가장 맛난 커피를 먹었습니다. 고마워요.
4.
동지들이 도착한다. 농성장이랄 것도 없는 인도에 깔판 하나 깔고 앉아 챙겨주는 사람도 없으니 동지들이 스스로 서로서로 챙기며 함께 지켜준다. 가시는 동지, 오시는 동지, 먹거리 사오시는 동지, 모두들 알아서 지켜주시니 고맙다.
오후내내 여러 언론사 인터뷰에 바빴다. 어제까지 기운없던 우리언니, 농성장 침탈 당할때는 포크레인 앞에 가서 누워버리고, 용역깡패와 싸우느라 목이쉬고, 경찰이 침탈할때는 여기 만삭인 임산부있는데 니네가 뭔짓을 하는거냐고 소리치더니, 반복해서 말해야 하는 인터뷰도 씩씩하시다. 다행이고, 고맙다.
5.
저녁7시 농성장 침탈하는 여가부 규탄 촛불문화제 하고 쎄븐일레븐앞에 다시 텐트 두동을 설치했다. 역시 용역깡패, 경찰들 떼로 몰려와 한꺼번에 지랄하는데 많은 동지들이 함께 해주셔서 무사히 설치했다.
들어보니 오늘하루 제주 강정마을부터 명동의 철거민들과 우리 농성장까지 마음먹고 침탈을 했다. 명박기가 우리에게 추석맞이 선물을 안겨주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네.
촛불문화제에 많은 동지들이 발언해 주셨는데, 모두 고맙다. 집회 사회를 본 이원재 미비(미조직 비정규직) 국장님, 우리의 놀이터를 망가뜨려놓았다며 연대를 말씀하신 사회당 서울시당위원장님, 4차희망버스때 보고 와서 함께하고 있다는 시민분의 분노, 그리고 진보신당 구자혁 동지의 낮은 목소리가 울림이 깊다. “우리가 이 문제, 이정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진보정당들이든 금속노조든 민주노총이든, 우리가 이 정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운동을 그만두어야하는것 아닌가 생각이 든다.”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나영 동지의 마지막발언 또한 구구절절이 우리의 마음을 대변해준다.
모두들 고마워요. 우리 농성장의 ‘우리’는 나와 언니가 아니라 연대오시는 모든 동지들, 음료수 주고가시는 모든 시민들 포함한 ‘우리’ 농성장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확인시켜 줘서 고마워요. 침탈당해 황폐한 마음에 위로를 얻는다.
9월 3일 토요일 농성 94일
아는 병이지만 때마다 아프다. 때마다 눕는다. 어제 침탈당해 아직 살림살이도 마음도 어수선한데, 생리통이 심해 집으로 간다. 집에 다녀온지 오래되서 당장 갈아입을 옷도 없으니 어차피 한번 다녀오기는 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마음이 잘 놓이지 않는데, 그래도 간다.
아니나 달라. 집에 도착해 언니에게 잘 도착했다는 문자를 보내고, 언니는 아무일 없었던것처럼 “수정씨 잘쉬고 와요”답문자만 받았는데, 무슨생각이 들어 그랬는지, 잠깐 트위터 확인하니 그사이 농성장에 언니 혼자 있는동안 관리사무소 청소하는 사람이 텐트에 물을 뿌리고 언니에게 덤벼 싸운 모양이다.
걱정할까봐 말하지 않은 언니마음도, 몸이 두 개가 아니라 어쩔수 없다고 생각하며 누워버리는 내마음도, 그런데 모두 짜증이 난다. 누구에게랄 것 없이 무럭무럭 화가 차 오른다. 몸이 아프니 마음도 사나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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