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 돌려 2차 피해 … 실질적인 고용주는 책임 회피만
"내가 남자편력이 심했다니 ….
현대차가 국회에 돌린 문건 내용은 또 다른 성희롱 아닌가요. 예전엔 '이 정도가 왜 성희롱이냐'고 하다가 국가인권위에서 성희롱 판결이 내려진 다음엔, '관리자와 싸워서 그랬다'고 하더라구요.
대기업이 책임을 회피하려고만 해요."
현대차 사내하청 성희롱 피해자 A(46)씨는 16일 현대차그룹의 문건에 대해 '치졸한 상투성 음해'라고 비난했다. 현대차가 지난 한달간 국회 여성가족위원회를 중심으로 배포한 이 문건은 A씨에 대해 '사생활이 문란하다'라고 표현했는데, 최영희(민주당) 의원이 국회 브리핑을 통해 공개하면서 외부에 알려졌다.
얼마전 고려대 의대 성폭행사건에서 가해자가 피해자를 사생활이 문란하다고
매도했다가, 오히려 여론의 공분을 샀던 전례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4개월 전인 6월 21일부터 여성가족부 앞에서 농성중인 A씨는 2009년 자신의 성희롱 피해사실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했다는 이유로 지난해 해고당했다.
A씨를 징계한 금양물류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는 손해배상 권고 결정을 내렸고, 고용노동부는 과태료
처분을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씨는 예전의 일터로 다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현대차는 이 일에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고, 고용노동부로부터 부당해고 처분을 받은 옛 금양물류는
폐업했기 때문이다.
금양물류와 도급계약을 맺은 회사는 글로비스고, 글로비스는 다시 현대차와 도급계약을 맺어 다단계로 이뤄진 도급관계 때문에 책임이 불투명해진 것이다. 게다가 옛 금양물류는 형진기업으로
이름을 바꿨다. 종전에 일하던 직원
전원뿐만 아니라 가해자도 고용을 승계한 상태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는
당초 18일 예정된 국정
감사 증인으로 현대차 사장을 채택하려 했으나, 한나라당에서 '현대차는 책임 당사자가 아니다'라고 주장해 무산된 상태다. 위원회는 대신 A씨가 일했던 금양물류와 직접 관련 있다고 하는 글로비스 사장을 증인으로 요청했으나 전무가 대리
출석을 통보해온 상태다.
"현대차는 실질적인 고용주면서 사내하청 뒤에 숨어서 모른 척해요. 사건이 공론화된 후엔 아예 악의적이고 폭력적으로 나왔어요."
A씨는 '옛 금양물류는 글로비스와 도급계약을 맺은 업체일뿐, 현대차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주장에 대해 "모두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그는 1997년 입사 후 줄곧 원청인 현대차 관리자로부터 작업지시를 받았고,
출퇴근과 근무시간에 대한 관리도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해 7월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의 고용주는 현대차'라는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왔고, 노동위원회에서도 사내하청 노동자의 고용주는 원청업체라는 결정이 이어졌다. 당시
재판부는 업무공정이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한 자동 흐름 방식으로 진행됐고, 지휘명령이 사내하도급업체의 현장관리인을 통해 이뤄졌어도 사실상 현대차에 의해 통제됐던 점 등에 비춰볼 때 현대차의
노무지휘를 받는
파견근로자라고 봤다. 이는 2년 이상 사내하도급업체에서 일한 노동자는
정규직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이었다.
또 현대차는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 보낸 회신을 통해 '(피해자 A씨의) 복직요구와 관련해
직원채용에 대해 간섭할 여지가 없고, 이에 대해선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명확히 확인한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가인권위원회는 당시 '위원회
조사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된다'고 했을 뿐이다.
최영희 의원은 "현대차엔 130개 사내하청에서 8000여명의 노동자가 일하고 있고, 사내하청 사장자리는 대부분 현대차에서 근무한 임직원이 맡고 있다"며 "현대차의 명령 없이는 누구도 사내하청 사장이 될 수 없다고 한다"고 강조했다.
최 의원은 또 "성희롱 피해자를 해고한 후 사장과 기업명칭만 바뀌었고, 가해자와 노동자들이 같은 자리에서 일을 하고 있다"며 "현대차가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하면 누가 믿겠냐"고 비난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문건 내용중 A씨와 관련된 소문은 주변 동료들로부터 확보한 것"이라며 "A씨가 주장하는 원직복직에 대해서는 현대차가 금양물류와 직접적인 도급계약을 맺지 않아 책임져야 할 의무가 없다"고 말했다.
A씨는 자신처럼 비정규직이면서 여성들이 작업현장에서 크고 작은 인권침해를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차 사내하청
사업장엔 나처럼 성희롱 피해를 받는 여성들이 한둘이 아니예요. 발로 엉덩이를 차고, 엎어치고…. 힘없는 비정규직이니 어떡해요. 먹고 살아야 하니 참을 수밖에 없죠."
A씨는 "내가 원하는 것은 가해자 처벌과 원직복직뿐"이라며 "이 싸움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경흠 기자 khk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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