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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장 일지
* 이 글은 여성가족부 앞에서 피해 노동자와 함께 농성을 하고 있는 권수정 대리인 님이 작성하신 글입니다.
10월 8일 토요일 농성 129일
드디어, 희망버스에 참가했다. 충남지부, 사내하청지회 동지들과 함께 참여하려고 일부러 어제 저녁에 아산으로 내려왔다. 밤사이 국회에서 ‘지금 투쟁하고 있는 동지들 1년안에 전원복직시킨다’는 안으로 중재안을 냈고 조남호 회장이 그걸 받았다는 소식이 들린다.
김진숙 동지를 저 높은 허공 위에서 더 이상 메달려 있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이 안을 받아야 하는것인가, 순간 헷갈렸다. 어떤 동지는 의미있는 안이라고 말했고. 어떤 동지는 한진 스머프 동지들의 결정을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김진숙 동지가 고공농성 하러 올라간 것이 해고자들을 복직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리해고를 철회시키기 위해서 였다고, 지금 우리가 희망버스 타고 왕복 10시간 걸리는 부산으로 가는 이유는 바로 그 요구를 관철시키려고 하는 김진숙 동지에게 연대하기 위해서라고, 이제야 그나마 중재안이라는 것이 나오고, 이제야 그 오만한 조남호가 뭔가 ‘안’이라는 것을 받는 수준이 되었지만, 그러나 장투사업장에 사측이 교섭자리에 앉기 시작하면 그 때부터 새로운 2차전이 아니냐고, 우리 이렇게 조 금더, 조금 더 밀어서 85호 크레인을 중심으로 투쟁을 확장시켜 정리해고 철회시키고 김진숙 동지가 안전하게 이 땅 위에 굳건히 설 수 있는날을 만들어 가자고, 말하지 못했다.
2004년 노무현정부 시절 겨울, 비정규법을 확대 개악하려는 정부에 맞서 국회앞 크레인에 우리 지회 김기식동지를 비롯하여 네동지가 올라 갔을때, 이틀만에 이 동지들을 내려오게 해야한다는 주장들이 나왔다. 그러면 안된다고, 저 동지들이 정말로 죽을 각오를 하고 올라갔는데 비정규법 철폐를 내걸고 올라갔는데 왜 벌써 내려오라고 하냐고, 일단은 저 크레인을 중심으로 연대와 투쟁을 확대하고 하다하다 정 안되면 그때는 모르지만 왜 벌써 그런말을 하느냐고, 그러나 비정규직 대표자동지들과 의견충돌이 심각했다. 그때 한동지가 나에게 울부짖으며 고래고래 지른 소리를 나는 잊지 않는다. “니가 저 위에 있는 동지들을 죽이려고 하는구나, 저 동지들 생명을 니가 책임질거냐? 저 위에 있는 동안 손배가 몇백억이 될지 알어. 니가 그거 다 책임질거야!”
마치 원맨쇼의 슬로모션을 보듯이 그가 나를 향해 울부짖는 동안 아무말 없이 지켜보았다. 결국 6일만에 크레인 위의 동지들이 제발로 순순히 내려오는 순간 집회 장소에서는 색색깔 풍선이 폭죽처럼 올라갔다. 6일동안 미친년처럼 서울바닥을 돌아다녔던 그 겨울의 찬바람을 나는 잊지 못한다.
이런 순간마다 2004년 겨울일이 어제일처럼 떠오른다. 이제 ‘기만적인 중재안 따위 개나 물어가라 하고 의연하게 싸워야 하는것 아닐까’ 생각만 해도 “니가 한진 해고된 동지들을 책임질꺼야? 니가 크레인위에 있는 김진숙을 죽이려하는구나!” 아무도 하지 않은 말들이 이미 내 머릿속에 울려 고통스럽다.
버스안에서 내내 곰곰 생각해 보니, 멈추지 않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죽음이 아직 중단되지 않았다. 이른바 죽은자들 이라고 불린 정리해고된 동지들 말고, 1년후 복직시키겠다고 합의했던 무급휴직자들, 해고된것도 아니고 고용된것도 아닌 이 동지들을 쌍차 노동자들은 좀비라고 표현했는데, 지금도 복직되지 않고 있다. 그 고통위에서 쌍차동지들의 죽음의 행렬이 멈추지 않고 있다. 그런데, 1년안 전원복직을 어떻게 믿어? 적어도 이건 아니군, 부산에 도착할 즈음에는 그런 생각을 했다.
다행이다. 오후 세시 부산진역에서 하는 민중의 힘 집회에서 구호는 여전히 ‘정리해고 철회’였다. 안심이 되고 힘이 났다.
다섯시 부산역앞으로 이동해 저녁을 먹었다. 각진 빨간모자에 얼룩무늬 해병대 옷을 입고 목에는 호루라기를 걸고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할아버지들이 다른 노인분들에게 하얀색 머리띠를 나누어준다. 붉은 글씨로 ‘전쟁선포’라고 씌어있다. 글쎄, 노동자들을 한꺼번에 정리해고 시키는 것은 사실 한꺼번에 죽이겠다는 전쟁선포가 맞긴 맞는데, 노동자들이 투쟁할때마다 엄정한 법집행 한답시고 공권력으로 짓밟고 두들겨패서 잡아가두는 것이 전쟁이 맞긴 맞는데, 거 참, 노인분들 손에 쥐어주어 전선에 몰고나온 대한민국 자본의 수준이 천박하다. 인간적으로 대한민국 자본이 참 싫다.
김꽃비라는 배우가 한진중공업 작업복을 입고 레드카펫위에 섰다. 예쁘다. 늘 번쩍이는 조명은 양복과 이브닝 드레스를 위한 것이었다. 노동자들은 결혼식이나 장례식이 아니면 입지 못하는 옷이 양복이고, 드레스라는 물건은 결혼식때나 한번 입으면서 다른 나라에 유례없이 결혼사진을 거금들여 따로찍어 보관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 아닌가. 작업복이 조명을 받아 본적이 없고, 작업복을 입고 레드카펫 위에 설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다가, 김진숙동지에게 마음이 움직여 작업복을 입고 레드카펫위에 선 꽃비라는 그녀가 예쁘다. 사실은 김진숙동지가 선것이 아닌가 말이다. 그 레드카펫 위에.
뉴욕 증권가를 점거하고 투쟁하는 동지들에게 김진숙동지가 전화로 실시간 인터뷰를 한단다. 전세계 노동자계급이 영웅이 되었구나. 소금꽃 김진숙동지는, 자랑스럽다. 그러나 우리 언니의 감정과 나는 겹친다. 그녀는 어쩌면 노동자계급의 영웅이 되길 바란것이 아닌지도 몰라. 우리 언니가 한국사회 성희롱 성폭력문제의 최전선에 서길 바라지 않은 것처럼. 저렇게 씩씩하고 여유있어 우리 모두를 감동시키는 김진숙동지는 어쩌면 계급투쟁 전선의 가장앞에 서고 싶지 않았을지도 몰라.
왜 이럴까. 남들은 깔깔갈 웃으며 간다는 가을소풍이 나는 자꾸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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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롱 진정했다고 해고” 138일 천막농성 (경향신문)12면| 기사입력 2011-10-17 22:12
김순옥씨(가명·오른쪽)가 17일 여성가족부 앞에서 함께 농성 중인 여성단체 회원들을 바라보고 있다. | 김기남 기자
ㆍ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 “복직시키고 가해자 처벌”
“날씨가 추워져서 그냥 자기엔 이불을 두 개 덮어도 춥게 느껴진다. 저녁에 나영이가 제일 비싼 핫팩을 두 봉지나 사들고 왔다. 수정이랑 내가 핫팩 때문에 싸울까봐서 한 봉지씩 서로 사이좋게 나눠 쓰라고.”(김순옥씨의 블로그 ‘농성장 일기’)
김순옥씨(46·가명)는 17일로 138일째 ‘거리생활’을 하고 있다. 서울 한복판인 청계광장 인근 여성가족부 앞에서 농성을 하고 있지만, 청계천 한 번 제대로 돌아볼 틈이 없다. 김씨는 “여기를 비우면 안된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여기’는 천막이다.
천막에도 규칙이 있다. 자고 일어나서 공동화장실로 가 세수하고, 머리를 감는다. 식당에서 밥을 사먹고 오전엔 주로 잠을 잔다. 김씨는 “밤낮이 바뀌어서 낮에는 병든 닭마냥 해롱해롱한다”고 했다. 지난 주말엔 조금 바빴다. 충남 아산 시골 집에 ‘겨울 옷’을 챙기러 다녀왔고, 자신을 응원하겠다며 명동에서 열린 후원주점에도 참석했다.
손님은 꾸준히 찾아온다. 신문을 넣어주거나 음식 담은 비닐봉지를 놓고 가는 이도 있다. 어느 날 밤에는 김씨의 이야기를 들은 행인이 그 자리에서 휴대전화를 열더니 10만원을 계좌에 넣어줬다. 물론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철거용역 직원들이 몰려와 천막을 철거하기도 했다.
김씨는 1997년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의 사내하청업체에 입사했다. 결혼한 그는 ‘아이들 키우면서 일하기 괜찮을 것’이란 소문을 믿고 공장에 들어갔다. 14년간 품질검사 및 차량출고 부서에서 일했다. 딸 둘과 아들 하나를 그렇게 키워냈다. 자랑스러운 직장이었다.
2009년 4월 끔찍한 일을 겪기 시작했다. 회사 간부 2명이 지속적으로 성희롱을 해왔다. 간부들은 “나 ○○ 좋아 사랑해”와 같은 문자메시지를 보내거나 “나야 자기 생각하고 있지. 거기 가서 잘 테니까 그런 줄 알아” 등의 전화를 걸었다. 작업 중 음담패설을 들은 것도 여러 번이었다. 참다 못한 김씨는 지난해 9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다. 그는 “회사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참을 수 없어 폭발한 것”이라고 했다.
며칠 뒤 회사 징계위원회는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를 해고했다. “인권위에 진정해 물의를 일으켰다”는 게 이유였다. 그해 겨울 인권위는 김씨의 성희롱 피해를 인정하고 해당 간부 2명에게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고 권고했다. 해당 하청업체 사장에게도 부당해고를 한 만큼 900만원을 배상하라고 했다.
김씨는 “원하는 건 원직복직과 가해자 처벌, 딱 두 가지다. 그게 대한민국 땅에서 1년이 넘도록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인권위의 권고장도 힘이 되지 못했다. 회사와 가해자는 사과하지 않았고 권고도 이행하지 않았다.
원청업체인 현대차는 “하청업체의 일”이라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고용노동부가 구제신청을 내라고 했지만 그 사이 하청업체가 폐업해 버렸다. 폐업한 사업장에서는 같은 사람들이 이전과 같은 업무를 하고 있다. 가해자도 그곳에서 당당하게 일하고 있다.
지난 6월 김씨는 여가부 앞에 천막을 쳤다. “마지막 호소”를 하고 싶었다. 여가부는 그러나 “우리에겐 성희롱 예방·교육 권한만 있다. 도울 힘이 없다”고 했다.
김씨는 “날이 추워지는데 아직도 타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힘들고 마음이 조급해진다”면서도 “기운이 떨어졌다가도 사람들이 와주면 위로를 받는다”고 했다.
그는 “기회가 되면 남대문 시장에 패딩 바지나 사러가야지”하며 웃기도 했다. 김씨가 아산에 살 때 취미는 재래시장 구경이었다. 음악 들으며 시장 한 바퀴 돌고 오는 것이 힘든 공장생활에 활력을 주곤 했다.
혼자 있을 땐 책을 읽거나 ‘농성장 일기’를 쓴다. “그날 있었던 일 그대로를 썼을 뿐”인데 블로그에 올려놓으니 호응이 좋다. 몇 군데서 원고 청탁도 들어왔다. 김씨는 ‘성희롱에 따른 정신질환 피해를 산업재해로 인정해달라’고 신청한 첫 당사자다. 김씨는 지난 7월 산업재해 요양신청을 낸 뒤, 지난주엔 정해진 절차에 따라 병원에 800문항이 넘는 설문지를 내고 왔다. 이달 말이면 결과가 나온다.
그는 “(제 투쟁이) 널리 알려져서 다른 사람들도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싸울 수 있는 힘’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자본도 권력도 쓰러진 그를 일으켜주지 않았지만, 그는 스스로 일어서고 있었다.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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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차 1인시위-성희롱 피해 여성 지지와 연대를 위한 시민 실천단김용기 | 2011·10·16 23:12 | HIT : 14
지난 10월 14일(금), 성희롱 피해 여성을 지지하고 연대하기 위한 일인시위는 희망버스 시민승객이신 두분의 시민께서 함께 해주셨습니다. 비도 오는데 수고 정말 많으셨습니다.
여기는 근로복지공단 천안지사 앞입니다.
근로복지공단은 현대차 비정규직 성희롱 피해 여성의 산재를 인정하라!!
피해자 원직복직! 가해자 처벌!
현대차 아산공장 비정규직 여성 성희롱사건 현대차가 나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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