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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1일 금요일 농성 163일
1.
민주노총 서울본부 동지들과 연대동지들이 서울지역 희방버스를 타고 점심시간에 우리 농성장으로 오셨다. 감기 몸살이 걸려 노래만 하고 가려고 했다는 김성만 동지는 오시자 마자 농성장 앞 청계광장에서 하는 도보축제 행사의 음향소리가 큰 것을 보시더니 농성장에있는 엠프소리로는 집회를 해도 들리지 않는다면 동지의 차에 있는 장비들을 순서대로 서두루지도 않고 꺼내신다.
아침에 쌍차 정비지부에서 출투부터 하고 출발하신 동지들이 차가 막혀 예정시간보다 조금 늦게 도착하시고 투쟁가를 틀었는데, 우와! 우리 집회하는 엠프방송 소리가 축제하는 행사소리에 눌리지 않고 시원하게 퍼진다.
건물 관리사무소를 비롯하여 싸가지 없는 상가주인들 상대하며 피곤하던 묵은 체증이 한꺼번에 내려간다.
2.
저녁 6시,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에서 토론회가 있었다. 가나다라 토론회라던가, 정기적으로 하는 토론회인대 이번에는 현대차 성희롱 부당해고 피해여성노동자의 투쟁의 의미에 대한 토론이었다. 어떤 토론을 했는지는 따로 정리되어 나올것이고 나로서는 지금까지 혼자 생각해오던 것들, 잠깐씩 단상만 말했던 것들이 많이 정리되어서 좋았다. 마음을 열고 머리를 맞대 함께 논의해 줄 준비가 된 좋은 토론자들이 모인 자리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채고, 머릿속에 있는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을 말하느라, 돌아보니 말을 너무 빨리 너무 많이 했다는 생각도 든다.
동지들에게 고맙다. 들어주고, 함께 논의해주어서 고맙다. 누구보다 우리 농성장에 헌신적으로 연대해주신 동지들이 마련해주신 토론회라 더욱 마음 따듯하다. 언니네 멍동지도 반가웠어요. 우리 농성장에도 놀러 오세요. 무거운 걸음으로 오실테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돌려보내 드릴게요.^^
11월 12일 토요일 농성 164일
1.
노동자대회 전야제를 나는 참석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피곤해서 사람들이 많은 날은 오히려 집에가서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언니가 가고싶어하는 눈치를 보이길래 함께 가서 소책자를 팔기로 했다.
확인해 보니 500권을 제작한 소책자는 그새 다팔고 150권정도가 남아있다길래 1000권을 더 인쇄해 달라고 질러 버렸다. 진즉 확인하고 미리 준비했어야 하는데, 아침에 주문해서 밤에 받으려니, 아니나달라 사고가 났다. 6시 30분부터 전야제 장소에서 판매하기로 한 책자가 9시가 돼서야 도착했다. 덕분에 비는 시간동안 언니와 백곰동지와 전야제 장소 돌아다니며 구경하고 전철연 주점에서는 오뎅을 사먹고 구속노동자 후원회에서는 양말을 샀다.
마지막으로 유성지회와 우리 사내하청지회가 공동으로 하는 주점에가서 술을 먹었다. 소곡주는 앉은뱅이 술이라고 먹기 시작하면서 말했었는데, 언니가 취했다.
자리를 옮겨가며 여러 동지들과 함께 마시다 9시쯤 소책자가 도착했다는 소릴 듣고 나는 소책자를 팔러가고 언니는 붉은 목소리동지들과 계속 먹었는데, 한시간쯤 후 와보니 언니는 딱 기분좋게 취해 혀짧은 소리를 하고 있다.
마지막에 조합원들을 보고 반가워 인사하며 함께 마신 술이 결정적이었던 것 같은데, 문제는 이동이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올해는 유난히 전야제 행사장에는 안가고 주점에 죽치고 술먹는 동지들이 많더니, 언니를 좀 함께 부축해서 농성장으로 돌아갈수 있게 도와줄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멀쩡한 정신인 사람이 하나도 없다. 할수 없이 한잔더 하고 싶다는 언니를 막차 타야한다고 독촉하여 돌아왔다.
2.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언니를 재촉하여 우리 집, 농성장에 도착하니, 이곳은 또다른 세상이다. 진보신당 청소년소위 동지들의 셧다운 반대 밤샘 게임집회가 한참이었다. 70여명의 동지들이 모여 락음악 공연을 보고 있는게 드럼소리가 선동하여 금방이라도 터질것처럼 열기가 뜨거웠다.
‘모니, 노동자대회 전야제는 술판이더니, 열정은 우리집에 있었구만.’ 그러나, 나는 피곤하고 소리는 너무 시끄럽다. 게임하는 동지들에게 농성장을 부탁하고 노조로 가서 자자고 하는데 언니는 기어코 농성장에서 자겠다고 고집을 부려 나만 노조 여성휴게실로 갔다.
잠들기 전에 잠깐 트윗을 확인했더니 여정훈동지가 ‘저녁기도’ 찬송가를 만들었다며 보내주었다. 취하고 피곤할 때 들어 그런가 마치 자장가같은 저녁기도가 편안했다. 다음 기도회때 우리 농성장에서도 불러달라고 부탁을 했다. 소외된 사람들의 아픔을 볼줄아는 밝은 눈을 갖은 여정훈동지는 재주도 많다. 노래가 참 좋다.
11월 16일 수요일 농성 168일
1.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내부 논의들이 복잡해 그런지 정당 동지들의 참여가 저조한대, 참여당 이혜경 서울시당 여성위원장님은 빠짐없이 요기할 간식거리 들고오신다. 음료수나 아이스크림과 함께 빵을 사들고 오셨었는데, 오늘은 과일을 들고 오셨다. 진보신당 김수경동지가 지난회의에서 탄수화물이 부담스럽다고 하셨던 말을 기억하셨다네. ^^ 김수경동지답고 이혜경동지 답다. 김수경 동지, 담 회의에는 꼭 오삼. 목요일날 농성장에서도 보지만 회의때도 보고싶다오.^^
2.
법률원 김태욱 변호사가 건물관리사무소와 상가들이 금속노조 박유기 위원장을 고소한 건에 관해 논의할 것이 있다해서 잠깐 만났다. 사실 뭐 대응논의를 하고 자시고 할것도 없다. 물리적인 폭력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구체적인 방해행위를 한 것도 없다. 박유기 전 위원장이 지난 금요일에 출두해서 조사를 받았는데 경찰들말이 자기들도 별거 아니라고 생각은 하는데, 워낙 상가사람들이 여러차례 고소를 해서 어쩔수 없다고 했단다. 이것들이 장난하나. 위법사실이 분명해야 조사를 하는거지, 뭐 여러차례 고소를 하니까 할수 없이 조사 한다고, 그게 말이니 망아지니. 지금이라도 내가 가서 정몽구 회장 날마다 고소하면 니네는 정몽구도 조사할거냐. 당췌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그런데 검사는 한술더 뜬다. 더 많은 조사가 필요하다고 했단다. 지랄한다. 뭘 더 조사하니.
김태욱 변호사가 박유기 전 위원장도 한두차례 더 조사받을 듯하고, 박유기위원장님이 경찰의 조사과정에서 주로 ‘모른다’ 고 답변 했기 때문에 그러면 실제 농성하고 있는 당사자들을 찾아서 출두요구서가 올수 있다고 전해준다. 나와 언니에게 출두요구서 올수 있으니 준비하라는 말이다. 박유기위원장님이 조사후 직접 전화로 알려 주셔서 ‘모른다’고 답했다는 말은 이미 들었다. 집회신고가 금속노조 위원장명의로 났을 뿐, 지원대책위가 주도해서 하는거고, 자기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거지. 일단 알았다고 말은 했다. 변호사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경찰, 검사보다 박유기 위원장이 더 얄미워진다. 모르긴 뭘 모르니, 모르면 되니. 실망스럽다.
언니와 나에게 출두요구서가 오면 경찰서에 가서 ‘금속노조 박유기 위원장님이 다 시킨건대요. 저는 그냥 조합원일 뿐이거든요.’ 요렇게 말할 생각이다.
3.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백곰 동지가 타로카드를 들고 와서 여러사람의 점을 봤다. 우와! 요거 재밌네. 언니는 “나는 기독교인이라 점안봐.” 했다가 이건 점이 아니고, 재미로 하는거고... 등등 여러동지들이 꼬셔서 함께 봤다. 언니는 카드점이 다 잘나오는데 특히 말년 운세가 끝내준다. 편안한 차림의 여왕이 꽃밭에서 아이들과 논다. 언니에게 너무 잘 어울리는 카드다.
음---, 나는 처음에 연애운을 봤다가 쇼크먹었다. 내가 뽑은 카드가 중무장한 기사가 한팔에 칼을 번쩍 치켜들고 바람을 가르며 말을 달리는 카드였다. 이게 뭐니. 나영동지가 자기는 권수정의 연애운은 카드점 안봐도 안다면서 “언니 올해 연애운은 투쟁이고, 내년 연애운은 완정정복이고, 5년후 연애운은 칼들고 투쟁이야. 10년후도 알것 같아.” 그러고는 어찌나 기분좋게 푸하하하 웃던지. 내참.
마음에 안들어 찜찜하다 내년 운세를 보고 흡족하여 더 이상 카드점에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 내년 운세는 새로운 관계를 맺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며, 한편 지금까지 근면성실하게 살아온 많은 성과를 스스로 흡족하게 바라보며 쉬는 운이다. 맘에 든다. 백곰동지말이 쉬면서도 다음에는 뭘할까, 생각하는 카드라며 일중독처럼 그러지말고 가능한 많이 쉬라고 충고한다.
타로카드 타고 동지들 마음이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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