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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7일 목요일 농성 169일
1.
아침 일찍 일어나 대전질병판정위원회 소회의에 언니와 함께 참석하고 왔다. 10시까지 대중교통으로 가려니 견적이 잘 안나왔는데, 어제 와서 농성연대한 김태석동지가 차로 대전까지 태워줘서 수월했다. 김태석동지도 위니아에서 해고된 동지라 왔다갔다 기름값을 주기로 했는데 깜빡 잊고 그냥 와버렸다. 계좌번호 보내라니까 못받는 다고 한다. 자기도 해고자면서 왜 못받아. 다음주에 오면 잊지말고 줘야 한다.
오전 6시 30분에 출발하는데, 6시부터 비는 농성장을 지켜주겠다고 스캇이 왔다. 11시까지는 학생행진 동지들이 있을수 있다고 했는데, 언니가 스캇에게 아침일찍 오라고만 하고 몇시에 오면 되는지 말을 안한것이다. 저런, 아직 어둑한 새벽길을 왔는데 막상 농성장에 오니 다른 동지들 있어서 11시부터 빈다하니 스캇도 황당해 한다. 미안해라. 다녀와서 언니가 점심을 쏜다하고 나왔다.
질판위 소위원회는 뭐랄까, 왜 그렇게 자리 배치를 하는지 모르겠다. 전문위원이라는 의사들은 빙둘러 편안한 의자에 앉아 있고 언니와 나는 그 앞에 마치 죄인이 취조받는 느낌의 플라스틱 의자에 불편하게 앉아서 질문하면 답하고, 뭐 이런 자리 배치는 그 자체가 억압적이고 권위적이다. 잘난것들에게 내 양심을 뒤집어 보여야 하는 느낌.
질병판정위원회는 산재를 당한 사람이 그 고통을 호소하는 곳이다. 산재는 지들 돈을 주는게 아니라 노동자와 사업주가 생산현장에서 재해당할때를 대비해서 보험들어 놓은 것이다. 우리 돈이고, 이럴때를 대비해서 미리 준비해둔 것이란 말이다. 지네가 우리 앞에서 어깨에 힘주고 잘난척 할 이유가 아무것도 없다는 거지. 심지어 법원에서처럼 형법의 죄를 다투는것도 아니라는 말이다.
대한민국은 어딜가나 노동자들은 굽신거려야 하고 지들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것이 마땅한것처럼, 그런 표정으로 앉아 있는것들이 많다. 재수없어.
그래도, 잘 하고 나왔다. 언니는 워낙 말을 잘한다. 본인이 당한 고통과 그 원인, 그 결과에 대해, 지금 현재도 겪고 있는 아픔에 대해 언니는 다시한번 진술을 했다. 나오며 판단에 대한 느낌은 나쁘지 않았다. 국가인권위 결과도 있고, 천안지청이 금양물류 사장에 대해 성희롱을 인지한 사업주가 피해자에게 불이익을 준것을 인정해 약식기소한 결과가 있는데, 설마 근로복지공단이 산재 인정을 하지 않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2.
오후 네시 민주노총 결의대회를 했다. 그동안 집회 조직하느라 애쓴 박승희 여성위원장님 긴장해서 사회보신것도 좋았고, 노래공연 몸짓공연도 좋고 많은 동지들이 나와서 한 발언도 좋았다. 공무원이고 공공서비스고, 여성연대고 어디고 간에 어쩌면 그렇게 사업장에 직장내 성희롱이 만연해 있는지, 성폭력을 주제로 규탄대회를 하는것 같고, 새삼 직장내 성희롱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확인하기도 했다.
마지막 발언해주신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소속 변호사동지의 발언도 참 좋았다. 여성가족부가 지금이라도 나서서 할수 있는것이 없다 하지 말고, 법제도 개선을 위한 입법주체가 되어 입안해야 하는것 아니냐는 말에 동의한다. 할수 있는게 없는게 아니라 하고 싶지 않은거겠지.
처음으로 하는 민주노총 결의대회에 많은 동지들이 참석했다. 인도가 좁이서 그동안 낡아 펄럭이던 현수막을 모두 떼고 시원하게 넓게 앉았다. 나는 몰랐는데 정보과 형사가 현수막을 모두 철거했더니 언니에게 와서 “현수막 새로 다실거죠?” 묻더란다. 별게 다 궁금하다.
이왕 현수막을 모두 철거했으니 남대문 경찰서 정보과 명의로 ‘현대차 성희롱 부당해고 피해자의 투쟁을 지지합니다.’라는 내용의 현수막 하나 걸어주면 다른 연대단위 현수막은 안걸수 있다고, 정보과 형사와 현수막 교섭을 해봐야겠다. 사실 뭐, 정보과 명의 현수막 하나랑 연대단위 지지현수막 수십개랑 바꾸는 거라 우리가 밑지지만, 그래도 정보과 현수막이니까 우리가 살짝 손해보는 느낌이라도 큰맘먹고 바꿔줄수 있다. ^^
3.
하루종일 정신이 없었다. 아침부터 대전 질판위 소위원회 갔다 와서 바로 회의하고, 집회준비하는데 그 와중에 변호사가 와서 철거가처분 준비하는 서류 전달해 주고, 집회 끝나고는 한의사 선생님와서 진맥하시고, 저녁먹고 촛불문화제까지. 이런날도 있다. 정신이 하나도 없다.
촛불문화제 끝나고 건설 백순애 부위원장이 담근술을 가지고 와서 둘러앉아 나눠먹었다. 언제봐도 씩씩한 백순해 동지, 200일이 되는 12월 17일에는 아산공장앞에서 투쟁승리 보고대회 하자며 술을 먹었다. 그렇게 되길 바란다.
11월 18일 금요일 농성 170일
1.
신임 여가부장관 취임후 두달만에 공식적인 면담을했다. 여가부 장관 면담하는것 참 어렵다. 11월달에는 시간이 없다고 그러더니, 장관은 보고받은 적 없다하고 지들끼리도 말이 안맞는다. 그러더니 장소를 프레스센터로 해서 오후 4시에 만났다. 나는 반대했다. 피해자가 여가부앞에서 농성한지 170일인대, 안하면 말지 여가부를 코앞에 두고 뭐하러 프레스센터에서 만날까. 더욱이 피해자와 민주노총 부위원장, 금속노조 부위원장으로 인원도 지들이 제한을 한다. 웃긴다. 그래도 공식적인 만남이 한번도 없었으니 한번 보자는 의견들이 많아서 만나기로 했다.
장관을 만나고 나온 언니가 얼굴이 좋지 않다. 여가부장관이 언니에게 법적으로 해도 4,5년은 걸리고, 법으로 이긴다해도 복직은 할수 없으니 다른대 일자리 알아보는게 어떠냐고, 그걸 의견이라고 말했다고 언니가 전해준다. 성희롱 당하고 부당하게 해고된 여성노동자가 국가인원위의 판정을 받고도 가해자는 현장에서 일하고 피해자인 언니는 복직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것이 억울해서 여가부앞에서 농성한지 170일인대, 뭐라고 딴대가서 일자리 알아보라고. 나쁜 년. 나는 안가길 잘한건지도 모른다. 내 앞에서 그런말 했으면 여가부 장관 입을 찢어 버렸을 것이다. 지가 상관인 이명박 대통령에게 성희롱 당하고 그걸 말했다고 오히려 장관직을 박탈 당하면, 저는 그러고 그냥 살 모양이지. 돌이켜 생각할수록 불쾌하고 괘씸하다. 나쁜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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