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일 오전. 한국여성노동자회·한국여성민우회·사회진보연대 등 여성·사회단체와 민주노동당·진보신당 등 진보정당들이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 앞에 모여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성희롱 피해자 부당해고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 홍현진 |
|
|
"하청 노동자는 성희롱 당하고도 성희롱 당했다고 말도 못합니까. 성희롱 당했다고 국가 인권위에 진정도 못냅니까. 그것이 사회통념상 근로관계를 더 이상 지속 못 시킬 이유가 됩니까."
성희롱 피해사실을 알렸다는 이유로 해고당한 여성노동자 A(46)씨의 대리인 권수정씨는 절규했다.
갑작스럽게 떨어진 기온에, 매서운 칼바람까지 불던 2일 오전. 한국여성노동자회·한국여성민우회·사회진보연대 등 여성·사회단체와 민주노동당·진보신당 등 진보정당들은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 앞에 모여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성희롱 피해자 부당해고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권수정씨는 "성희롱 피해자 A씨가 지난 1일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던 도중 경비들에게 폭행을 당해 현재 입원 중"이라고 전했다.
"나는 밤새 해도 끄떡없다"... 언어적·신체적 '성희롱'
|
▲ 성희롱 피해자 대리인인 권수정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내하청지회 조합원이 경과보고를 하고 있다. |
ⓒ 홍현진 |
|
|
지난 97년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하청업체에 입사한 A씨는 2002년 남편과 이혼하고 혼자가 된 후 세 아이의 생계를 책임져왔다. 그런데 2009년부터 A씨 신변에 문제가 생겼다. 이때부터 금양물류 소속 B소장과 C조장이 지속적으로 성희롱을 해왔다는 것이 A씨의 주장이다.
B소장은 2009년 6월 18일 A씨에게 "너희 집에 가서 자고 싶다"며 하룻밤 사이에 수차례 성희롱을 했고, A씨는 이런 내용을 휴대폰으로 녹취했다.
C소장 또한 작업 도중 A씨의 엉덩이를 무릎으로 치고 어깨와 팔을 주물럭거리는가 하면, "나는 워낙 힘이 좋아서 팍팍 꽂으면 피가 철철 난다", "나는 밤새 해도 끄떡없다"는 등의 음담패설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A씨의 직장동료에게 "그X이 한 번 대줄 것 같은데 영 대주지 않는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A씨는 C조장 역시 자신에게 "좋아한다, 사랑한다"는 내용의 핸드폰 문자메시지를 지난해 4월 18일 보냈다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우리 둘이 자고 나면 우리 둘만 입 다물면 누가 알겠느냐"는 말을 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성희롱 피해자'인 A씨가 인사위원회에 회부되었다. B소장이 A씨에게 보낸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직장 동료에게 보여주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인사위원회에는 '성희롱 가해자'로 지목되고 있는 B소장도 포함되어 있었다. 인사위원회 결과, A씨는 "회사의 규칙을 위반, 잘못된 언행을 감행하여 회사 내 질서를 문란하게 하거나 회사 이미지를 실추시켰다"는 이유로 '정직 6개월과 보직변경'이라는 징계 처분을 받았다.
이에 A씨는 "성희롱을 당한 피해자는 나인데 이런 징계가 말이 되느냐"며 인사위원회에 재심을 요청했다. 하지만 '피해자'인 A씨에 대한 징계 수위는 '감봉 3개월, 시말서 제출' 정도로 경감됐을 뿐이었다.
'성희롱' 피해사실 제보하자 문자로 '징계 해고' 통보
|
▲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사무처장이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성희롱 피해자 부당해고를 규탄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
ⓒ 홍현진 |
|
|
그로부터 8개월이 지난 8월 12일. A씨는 금속노조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내하청지회에 가입하고, 성희롱 피해사실을 제보했다. 이후 9월 3일에는 국가인권위에 진정서를 접수했다.
그러자 금양물류는 9월 20일 인사위원회를 개최해 A씨에게 문자로 '징계 해고'를 통보했다. "회사 내에서 선량한 풍속을 문란하게 한 경우, 기타 사회 통념상 근로관계를 계속 유지하기가 곤란한 경우"가 해고 사유였다. 그리고 9월 28일, 재심 인사위원회를 열어 A씨에게 '징계 해고'를 최종 통보했다.
해고 이후 A씨는 지난 10월 5일부터 현대 자동차 아산공장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했다. 하지만 지난 10월 14일에는 이를 저지하는 경비들과의 충돌로 인해 전치 4주의 부상을 입기도 하는 등 계속해서 갈등을 빚고 있다. 현재 사측인 금양물류는 "오는 11월 4일 폐업하겠다"는 신고를 낸 상태다.
이에 대해 A씨는 이날 발표한 '피해자 입장'을 통해 "업체가 폐업을 해도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의 금양물류가 있던 사무실은 이름만 바뀌어 운영되고, 새로운 사장이 올 뿐이고, 똑같은 곳에서 똑같은 사람들이 똑같은 일을 할 것"이라며 "그런데 법적으로 업체가 폐업되고 사장이 바뀌니까 제 부당해고에 대한 책임을 물을 사용자가 없다, 법이 그렇다고 한다"고 답답한 심경을 나타냈다. "성희롱과 부당한 해고에 대해 누구 한 사람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A씨는 "어차피 당할 것은 다 당했다, 뭘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포기할 수 없다"며 "비록 힘은 없지만 그게 뭐든 할 수 있는 것은 다 할 것이다, 이미 나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거듭 다짐했다.
"현대자동차 안에서 하청여성노동자라는 이유로 아무 말 못하고 성희롱 당하고도 해고될까봐 말도 못하고 쉬쉬하며 혼자 가슴앓이 하고 있는 여성노동자는 없어야 합니다. 나의 이 고통을 다른 사람이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더 이상 겪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래서 포기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든 복직하고 가해자들이 처벌받도록 하고 싶습니다."
"14년동안 현대차 만들었는데, 현대차엔 책임 없다고?"
여성·사회단체들은 원청 업체인 현대자동차에도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법적으로 사내하청 업체에 대해서도 성희롱 예방 교육을 1년에 한 번씩 실시하도록 강제하고 있고, 가해자에 대한 적절한 조치와 피해자에 대한 불이익이 없도록 사업주의 책임을 묻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자동차가 의무와 책임을 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문을 통해 "현대자동차 공장 안에서, 현대자동차를 만드는 여성노동자에게 일어난 일에 대한 책임이 현대자동차에게 없다면 도대체 누구에게 있겠는가"라고 성토했다. 이날 규탄발언에 나선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사무처장은 "매우 경악스럽고 매우 분노스러운 일"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현대자동차는 이렇게 광고한다. '여러분의 댓글로 차를 선물하세요'. 참 아름답다. 사회공헌? 개나 주라고 해라. 당신들이 고용하고 있는 당신들의 노동자를 보호하지 않고 당신들이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보호하지 않을 때 당신들의 목소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목소리가 될 것이다."
이에 현대자동차는 "금양물류는 운송회사인 글로비스와 도급관계에 있는 협력업체일뿐 현대차와는 아무런 계약형태가 존재하지 않는 회사"라며 지난 9월 아산공장 사내하청지회 지회장 등을 '허위사실 유포 및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상태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2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금양물류는 현대자동차와 계약관계에 있는 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드릴 말씀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피해자 대리인 권수정씨는 "현대자동차와 관련이 없다면 왜 정규직 관리자들이 나와서 피해자를 몰아내고 때리고 짐짝처럼 들어내나"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금양물류 "성희롱 없었다"... 현대자동차 "금양과 관계 없어"
금양물류와 피해자측의 주장도 전혀 다르다. 금양물류 사장 임아무개씨는 2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성희롱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12월 A씨에게 징계를 내린 것은 성희롱 때문이 아니라 C조장이 보낸 문자 메시지 때문에, A씨가 C조장의 부인과 싸워 분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라며 "이와 관련, A씨와 C조장 그리고 그 부인에게 모두 징계를 내렸다"고 해명했다.
또 "B소장과 C조장 모두 성희롱을 한 사실이 없으며 A씨가 성희롱의 증거로 내세우고 있는 B소장과의 통화 내용, C조장의 문자 메시지 역시 성희롱과는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임씨는 "지난 8월까지 성희롱에 대해 아무런 말도 없던 A씨가 사내하청 지회에 가입하면서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며 "A씨가 허위사실을 유포해서 14년 동안 일궈낸 꿈이 무너졌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폐업 이유에 대해 임씨는 "이 사건 때문에 몸이 안 좋아져서"라며 자신을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한편, 여성·사회단체들은 금양물류 폐업예정일인 오는 5일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앞에서 규탄집회를 열 예정이다.
|
최근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