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 -100404 터키

미류님의 [걷다 -100403 터키] 에 관련된 글.

 

# 아침에 일어나 지하에 있다는 수영장에서 잠깐 수영을 했다. 나름 쌓인 피로를 푸는 시도. 약간은 몸이 상쾌해지는 느낌.

 

# 마지막날 일정은, 돌마바흐체 궁전, 배 타고 보스포러스 해협 구경, 점심, 지하 저수지 아르베탄 사라이, 톱카프 궁전(박물관). 아침에 들은 얘기 중 하나. 터키에서도 도로에 차가 밀리면 이것저것 파는 사람들이 나오는데 흔한 것 중 하나가 장미라는. 근데 사람들이 많이 산댄다. 사서 선물하기도 하고 기다리면서 그냥 즐기기도 하고. 이건 또 어떻게 만들어진 문화일까 궁금. 터키의 손꼽히는 건축가, 엄청나게 많은 사원과 등등을 지은 미마르 시난의 이름을 딴 대학도 지나는 길에 있었다.

 

# 돌마바흐체 궁전으로 가는 길에, 슐레이마니예 사원이 보인다. 갈가타 다리를 건너서 보면 전경이 더 잘 보인다. 가이드의 말처럼 사원 주위는 매우 낙후한 밀집거주지역인 듯. 지역 주민들과 어떻게 만나는 사원일까 궁금. 수수한 느낌이라, 실체를 알기 전까지는 호감을 갖고 보게 될 듯. 실체를 알고 나서 더욱 호감이 생기는 사원이라면 좋겠다는 바램도.

 

# 돌마바흐체 궁전은 오스만 제국의 술탄들이 살았던 곳. 삐까번쩍하고 으리으리하다. 온 세계에서 상납한 선물들로 장식되어 있다. 좌우대칭의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웬만한 선물들도 다 쌍으로 있던데, 알고 보낸 건지, 그렇게 보내라고 친절히 알려준 건지. (언젠가 다시) (이틀 후) 선물은 세계 각국에서 보낸 매우 호화롭고 고급스러워보이는 것들이었다. 잘 만든 것들. 가이드는 이런저런 선물들이 어느 나라에서 온 것인지 알려줬다. "이건 메이드 인 차이나예요." 모두들 큭큭 웃는다. 여행 다니는 동안 터키에서 물건을 살 때도 '메이드 인 차이나'를 조심해야 한다는 주의를 몇 번 들었기 때문이다. 값싼 노동력을 활용한 저가의 (그리고 대체로 질이 낮다고 여겨지는) 상품의 대명사는 메이드 인 차이나. 돌마바흐체 궁전의 메이드 인 차이나는 당대 최고의 장인이 손수 빚은 고가의 도자기. 중국에서 만들었을 뿐인 메이드 인 차이나가 갖게 된 상징을 아무런 고민 없이 받아들여도 되는 것일까. 지구적 착취구조는 지역적 상품 뒤로 숨어버리고 상징만 남았다. 메이드 인 차이나가 왜 메이드 인 차이나인지 물어야 하지 않을까.

 

# 보스포러스 해협은 한강보다 조금 넓은 느낌이라고 하면 너무 좁게 본 걸까. 어쨌든 바다라고 하기에는 좁은 곳을 흘러가는데(해협은 처음 구경했으니) 적어도 짙푸른 서늘한 물빛만은 바다를 느끼게 했다. 수심이 깊은 곳은 100미터까지도 된다고 한다. 해협 양안은 거의 대부분 별장들, 그리고 가끔 대학과 거주지가 있었다. 해협에서 보이는 대학들은 나름 잘 나가는 대학들이라고 한다. 바닷바람이 쌀쌀했는데 햇살에 등을 들이대고 있으니 따뜻해졌다. 누가 뒤에서 꼭 안아주는 것처럼. 바다 본 지 오래됐다.

 

#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 예정에 없던 어시장 구경을 했다. 시간이 좀 여유있었는지, 이스탄불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노량진의 반의 반의 반의 반 정도나 될까 싶은 시장을 들렀다. 연어 토막이 먹음직스럽게 놓여 있었다. 쩝쩝. 어시장 근처에는 생선요리를 파는 노점이 서너 개 있었는데 고등어구이를 팔고 있었다. 노점과 고등어구이, 생소한 풍경. 버스로 돌아가려는데 마지막 노점에 함씨(멸치인데 한국에서 먹는 것보다 크고 통통한, 열빙어 또는 쪼잔한 노가리 정도의 크기)를 꼬챙이에 꿰어 구운 걸 팔고 있었다. 군데군데 탄 흔적과 적당한 정도의 바삭바삭한 느낌이 확 나를 이끌었다. 얼마냐고 물어봤더니 4터키리라(2유로)라고 한다. 터키리라로 환전한 돈은 없었고 며칠전 거스름돈으로 받은 동전이 있어서 꺼내보이면서 물끄러미 쳐다봤는데 그건 아니라고 고개를 젓는다. 유로로 계산해도 되냐고 물어보려는("유로 ok?" ^^;;) 찰나, 엄마가 부른다. 얼른 버스에 타야 한다는 얘기인 줄 알고 갔더니 그쪽에서 파는 함씨구이를 가리키며 먹어보겠냐고 묻는다. 에이, 저쪽에서 사려던 참이었는데. 그냥 엄마가 가리킨 걸 샀는데(2유로가 없어서 1.5유로만 내고) 바삭바삭하지도 않고 구운 지 오래됐는지 눅눅하게 조금 문드러져있는 게 영 입맛이 안 당겼다. 괜히 또 엄마한테 짜증났네. 흑.

 

# 점심은 도뇌르 케밥. 한국에서 흔히 케밥이라고 부르는, 세로로 긴 꼬치에 다진 고기를 뭉쳐 돌리며 구운 걸 저며서 내놓는 음식. 케밥의 종류는 이외에도 많다. 점심 전에 또 쇼핑 시간이 있었다. 여기 역시 뭔가 커넥션이 있는 곳인 듯. 식료품과 화장품 등 다양한 물건들을 파는 잡화점이었다. 마지막날이 되도록 선물을 준비하지 못해 결국 매우 질이 좋은 데다가 비슷한 상품의 원조라고 하는 장미비누를 샀는데, 가격과 효용 때문에 (질은 아직 모르겠고, 써본다고 알아질 지도 모르겠고) 나중에 많이 후회했다.

 

# 지하의 거대한 물 저장고인 아르베탄 사라이로 갔다. 로마 시대에 만들어진 물 저장고. 여기저기 무너지거나 폐허가 된 신전의 기둥들을 주워와 땅을 받쳤다고 한다. 독이 있는지 재빨리 알아채기 위해 늘 물고기를 풀어놓았다고 한다. 물고기 똥이 들어있는 물은 어떻게 사용됐는지 궁금. 여러 기둥들 중에는 눈물기둥이라고 불리는 것이 있었다. 눈물이 뚝뚝 흐르는 듯 물방울무늬가 새겨진 기둥인데, 정말이지 유독 그 기둥만 촉촉하게 이끼가 끼어 있었다. 기둥도 참 아름다웠지만 신기하기도 했다. 맨 안 쪽에는 사람들이 모두 허리를 구부려 들여다보는 기둥이 두 개 있었다. 메두사의 머리가 기둥 아래 깔려있는 곳이었다. 에페스 유적에서도 메두사의 머리는 종종 보였다. 당시에 부적의 의미도 있었다고 한다. 거꾸로 뒤집혀, 하나는 옆으로 눕혀진 채 기둥 아래 짓눌린 메두사를 보는데 왠지 모를 애틋함이 느껴져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크게 뜬 눈망울은 무언가 말하는 것만 같은데.

 

# 톱카프 궁전. 마지막 일정이다. 박물관으로 사용되는데, 플랭카드를 보니, 크렘린 궁의 보물들도 동시에 전시하고 있다고 했다. 안에서 찾아보지는 못했다. 본격적인 관람에 앞서 화장실 다녀올 사람들은 다녀오라길래 그늘 벤치에 앉아 쉬고 있었다. 옆에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들이 예닐곱 명 있었는데 자기들끼리 킥킥거리면서 힐끗거리는데 알아들을 수 있는 유일한 단어는 '레즈비언'이었다. 머리가 짧아서 그런가, 생긴 게 좀 그런가, 어쨌든 내가 '레즈비언'이라는 종류의 생물이라고 생각하며 킥킥대는 듯했다. 좀 불쾌할 수도 있었겠지만, 왠지 뿌듯하기도 했다. 내가 레즈비언이든 아니든, 그들에게 '레즈비언'의 존재감을 확인시켜준 듯한 느낌이랄까. 문득 여행 중 종종 보였던 게이 커플들(나의 게이더나 레즈더는 검증된 적이 없으므로 전혀 믿을 만한 게 못되지만 그래도 그렇게만 보였던)의 다정한 기운이 떠올랐고, 그런데 돌아보니 레즈비언 커플이 둘이서 다니는 걸 본 기억은 전혀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워낙 단체로 관광온 이들이 득시글거렸기 때문에 둘이서 다니는 것 자체가 쉽게 눈에 띄지 않았고, 역시나 나의 레즈더가 검증된 적이 없으므로, 레즈비언 커플이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다소 젠더가 반영된 현상이지는 않을까 슬며시 궁리해보다가 말았다.

 

(# 앉아있으면서 오가는 사람들을 쳐다보다가 문득 '세계 속의 한국'이라는 말이 떠올랐는데, 이 말은 말 그대로의 뜻과 달리 한국의 선진성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사용되고, 그래서 오히려 한국 밖의 세계를 지우는 구호인 듯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잘 정리되지 않아 일단 유보. 다이어리에는 "세계 속의 한국?"이라는 메모가 남아있다.)

 

# 책에서 궁전이 모두 네 개의 정원으로 구성되어 있고, 정원마다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제한되어 가장 안쪽의 공간은 술탄만 들어갈 수 있고, 각 정원마다에는 뭐가 있는지, 뭐 이런 설명들을 좀 봤는데, 막상 들어갈 때는 전혀 눈치도 못 챘다. 어디가 정원이라는 건지.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벌써 세 개의 문을 지나쳐 세번째 정원으로 들어왔다는 걸 알게 됐다. 공항에 빨리 갈수록 좋다며 톱카프 궁전은 서둘러 돌아봤고 둘러불 시간도 별로 주어지지 않았다. 설명을 들은 후 유명하다는 보석전시관에서 80캐럿인가 하는 다이아몬드와 루비로 장식된 단검과 등등을 봤는데, 사진으로 보나 직접 보나 감흥의 차이가 없는 건 왜일까. 금 바탕에 각종 보석으로 장식을 단 요람을 볼 때는, 정말 이런 걸 쓰고 싶었을까 하는 생각밖에는. 모세의 지팡이랑 무슨 칼이랑 등등이 있다는 성물관은 보석관보다 더 빽빽하게 사람들이 들어차 아예 입구에서 포기해버렸다. 톱카프 궁전은 바다 가까운 절벽(그리 높고 가파른 건 아니다)에 지어진 거라 주위 풍광도 참 좋다. 언덕에서 바다를 내다보면 시원하게 마음이 트인다. 모이기로 한 시간이 됐는데, 주어진 시간에 줄을 기다리느라 별로 못 봤다는 사람들의 아쉬운 소리들이 있어 시간을 더 주었다. 대충 둘러보고 말았다. 여전히 빽빽했기 때문에. 시간이 남아 박물관 매장에 갔다가 마음에 드는 수첩을 하나 발견해, 그게 좋았다. 쫓기듯 다니느라 톱카프 궁전은 처음부터 포기한 셈이다. 시간 계산하며 돌아보려니까 갑자기 흥미가 뚝 떨어져버렸거든.

 

# 중간에 이런 일이 있었다. 설명을 하기 위해 일행을 기다리던 가이드에게, 가장 늦게 온 일행 한 분이 "근데 아까 오면서 듣다 보니까 다른 가이드는 다르게 설명하대." 문 앞 땅바닥에 남아있는 깃발 꽂는 자리에 언제 깃발을 꽂았는지에 대한 설명이 다르다는 얘기다. 우리 가이드는 왕이 없을 때라고 설명했는데 다른 가이드는 왕이 전쟁에 나갔을 때라고. 뭐 그런 게 문헌으로 정확히 기록에 남지 않았을 수도 있고 그 정도면 비슷한 얘기일 수도 있겠다 싶은데, 좀 듣기에 불쾌하게 말한다 싶은 느낌도 들었다. 그런데 가이드가 "선생님은 어느 일행으로 오신 거예요?"라고, 조금 달아오른 얼굴로 묻는다. 가이드마다 설명이 조금 다를 수도 있고, 뭐가 맞는 거냐고 묻는 건 그쪽 가이드한테도 실례되는 일이라고 말한다. 약간 쏘아붙인다는 느낌도 들었고, 어쨌든 매우 불쾌한 듯 싶었다. 그래도 좀 과하다는 느낌? 뭔가 배려가 없는 질문, 윤곽이 없는 대답이었다. 그 사람들의 부족함이 보였다는건 아니다. 잠깐의 대화 속에서내 모습이 보였다. 설명을 들으며 '아닌것 같은데...'라고 혼자만 생각했지만 미심쩍은 눈길을 거두지 않았던 거나, 누군가 내가 모르는것 또는 덮어두고 싶은걸 끄집어내거나 지적할때 불쑥 튀어나오는 까닭모를 불쾌함(까닭을 모른다고만할 수는 없지)이 스쳤던 것이다. 쉽지 않아. 

 

# 저녁은 다시 한식집. 그럭저럭 먹고 공항을 향했고, 비행기가 만석이라더니 정말 이미 도착해 수속을 밟고 있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었고 한참을 기다려 끄트머리에서 좌석을 배정받았다. 들어가서는 살까말까 고민하던 라키를 결국 샀고 눈을 또 확 잡아끄는 팔찌가 있어서 언젠가 공연을 하게 되면 끼고야 말리라 생각하며 또 지갑을 열었고 남동생 선물로 면세점에서 티셔츠를 고르는 엄마를 보며 돈 아깝다고 생각했지만 내 지갑을 열었고, 뭐 그렇게 안 쓰고 그대로 들고 가려던 봉투를 비웠다. 쩝.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04/07 13:24 2010/04/07 13:24
태그 :
트랙백 주소 : http://blog.jinbo.net/aumilieu/trackback/696

<트랙백>

  1. 미류님의 [걷다 -100404 터키] 에 관련된 글. # 보내며? 보내고 남은 것은 무엇일까? # 날씨는 한국보다 쌀쌀하다 싶었는데 돌아와보니 서울도 완전 쌀쌀. 대부분의 지역에서 일교차가 심했다. 낮에 반팔을 입을 정도로 덥지는 않았지만 후끈한 느낌. 전반적으로 건조하다. 바삭바삭. 땅이 넓어서 버스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정말 많다. 그걸 아끼는 방법은 돈을 들여 비행기를 타거나, 버스를 덜 타고 한 지역에서 여러 날을 보내는 것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