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류님의 [걷다 -100329 터키] 에 관련된 글.
# 셀축까지 다시 이동. 중간에 이즈미르라는 도시를 지나쳤다. 터키의 3대 도시 중 하나라고 한다. 지나는 길에 유채꽃처럼 노랗게 핀 꽃들이 많았는데 아나손이라고 한다. 정말 유채를 닮았다. 터키의 소주인 라키는 이것의 향을 넣어 만든 술이라고 한다. 전에 사무실에서 마신 적이 있는데, 무슨 화장품 냄새 같다고 생각했다. 매우 강한 향과 높은 도수로 많이 마시기 힘들었는데 보통 물에 희석해 마신다고 한다. 신기한 건 물에 타면 우유빛으로 변한다는 거. 그래서 '사자의 젖'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3:7이 제일 좋다는데 뭐 그건 개인마다 다를 수 있겠지. 해안가에 늪지가 있기도 하고, 지나다니다 보면, 해안선보다 낮은 지대도 있다고 한다. 바다의 느낌이 아무래도 다르기는 하다. 이틀째 보는 차창 밖 풍경은 무엇보다도 넓은 땅이 펼쳐지는 것이 인상적. 한국은 정말 산자락에 자리잡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셀축은 에페스 유적지가 있는 곳. 터키 최대의 고대 도시 유적이라고 하고 로마 시대의 것이다. 셀축에는 아르테미스 신전 터가, 기둥 하나만 남아있지만, 있다는데 거기는 못 들렀다. 이 근방은 터키로 성지순례 오는 기독교도들이 들르는 구약 7대 교회가 모여 있는 곳이라고 한다. 로마의 유적이라 아고라와 원형 극장, 수로, 목욕탕 등이 갖추어져 있다. 원형 극장은 대개 도시 인구의 10%가 입장할 수 있는 규모로 지어졌다고 한다. 원형 극장보다 규모는 작지만 비슷한 모양의 오데온이라는 곳이 있는데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곳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서로의 말을 잘 들을 수 있도록 목소리가 끝자리까지 잘 들리게 치밀하게 설계되었다는데, 흠. 어쨌든 가이드는 로마는 '민주정'이었다는 걸 매우 강조했다. 여기에 셀수스 도서관의 흔적도 남아있는데, 사진과 똑같다. 물론 사진으로 보는 것과 직접 보는 것의 차이는 있겠지만, 가끔은 딱 사진만큼인 것도 있는 듯하다. 감흥이 덜했다기보다는, 사진에 담긴 모습이 충분히 설레기 때문일 수도.
# 걸어가는 길에 헤라클레스의 기둥이라는 것이 있었다. 사자 가죽을 들고 있는 모습이라는데 사자의 머리 부분이 허리 아래께에 있다. 얼핏 보았을 때 타로 카드의 메이저 아르카나인 '힘' 카드와 매우 흡사했다. 한 성인이 사자의 가시를 뽑아준 일화(이교도에 대한 선교를 상징하기도 한다는)를 바탕으로 그려진 카드인데, 왠지 어떤 연관이 있을 듯도 했다.
# 아고라와 목욕탕 터를 지나 죽 이어지는 길가에는 이런저런 로마 황제들에게 바치는 신전이 있었다. 문득 브레히트의 시가 생각났다. 신전을 지어올린 노동자들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저 황제의 이름이 남을 뿐. 그 신전을 쌓아올린, 이런저런 조각들을 새겨놓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다가 죽어갔을까. 그런 이야기들이 역사로 남지 못하는 건 아쉽다. 자연스럽게 이런 이야기들이 오가면 좋을 텐데 가이드에게 그런 것까지 물어보기는 그렇다.
# 유적지에 남아있는 것들 중에는 복원품인 것들도 꽤 있다. 진품들은 대영제국박물관이나 루브르 박물관, 가끔은 독일의 무슨 박물관에 가 있다고 한다. 유적은 원래 있던 곳에 보존되는 것이 바람직할 텐데, 제국주의의 한 단면이기도 한 듯하고, 약간은 보존 자체를 위한 목적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이유더라도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그런데 문득 한국의 국립중앙박물관은 어떤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부산이나 경주나 서산이나, 어디에서 발견되었거나 귀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은 여기로 모여있는데, 국경을 넘나드는 것이 아니라 그런지,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비슷한 맥락이 있는 것 같지 않나. 한 나라 안에서든, 하나의 나라라고 생각하는 영역 안에서든, 중심지에 귀한 것들을 모아놓는 것. 쩝.
# 인근의 쉬린제 마을에 들렀다. 그리스인들이 살다가 언젠가 그리스에 사는 터키 사람들과 바꿔 살게 된 동네라고 한다. 산 따라 들어가는 산골 마을 같은 곳이다. 집들 중에는 아주 오래된 것도 많다고 하는데 직접 보지는 못했고 벽을 모두 하얗게 칠해놓아 눈부셨다. 평온한 느낌. 면직물에 코바늘뜨기를 이용해 무늬를 넣은 옷을 하나 샀다. 마을 구경을 하는데 한 눈에 확 마음이 끌려서 얼마냐고 물어봤더니 한국 돈으로 만 원 조금 넘는다. 염색한 것도 보고 다른 무늬도 보고 그러다가 아무래도 처음 눈에 들어왔던 게 제일 예쁜 것 같아서 샀다. 옷을 내어놓고 팔던 이는 3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여성이었는데 순박한 느낌이었다. 노점은 어떤 나즈막한 건물의 앞쪽에 있었는데 슬쩍 들여다보니 옷을 만드는 작업장인 듯했다. 실패들과 테이블이 얼핏 보였다. 흡족한 구매였다. (이건 터키에서 돌아오는 날까지 쓴 돈 중에 하나도 안 아까운 거였다.)
# 쉬린제 마을 입구에는 군인들이 서 있었다. 아무래도 군복처럼 보여 물어봤더니 군인 맞댄다. 잔다르마라고 부르는 군 경찰이라고 한다. 경찰은 물론 따로 있다. 워낙 산간이라 그런가도 싶었는데 어쨌든 생뚱맞았고 당혹스러웠다. 한국에서 지리산 등산로 입구에 군인이 총을 매고 서있으면 아주 당혹스럽지 않을까? 터키에 오기 전 읽은 책에는 터키는 군대의 영향력이 매우 강한 나라라고 했다. 정치에 대한 개입도 심하다고. 개입이 아주 일상적인 건 아니지만 결정적이라는. 군부정치인 셈이지. 그런데 국민들의 군인에 대한 신뢰는 뭇 정치인들이나 전문가들에 대한 신뢰보다 훨씬 높다고 한다. 여행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건 한계가 있고, 체제가 다르다고 함부로 평가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 싶었다. <잔인한 국가 외면하는 대중>에 소개된 앰네스티 캠페인이 생각났다. 시민들에게 보내는 여름철 홍보물에 당신이 휴가를 떠나려고 하는 나라는 이런 곳이다, 그래도 가겠느냐, 는 내용을 담았다는 내용이다. 그때 포함된 나라 중의 하나가 터키였다. 하지만 터키의 인권 문제는 별로 아는 바가 없고, 쿠르드 족에 대한 탄압 정도를 어렴풋이 아는 정도라, 여행 오기 전 찾아보려다가 알아보지 못한 채 떠났던 참이었다. 어떤 국가의 인권 현실을 이해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인 듯하다. 그러고 보면 한국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내가 한국 안에서 부딪치고 속상해하고 싸우고 그러면서 외치는 '인권'은 아무래도 정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 다시 파묵칼레 온천이 있다는 데니즐리로 이동. 파묵칼레 온천은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곳이라고 한다. 터키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 많다. 쨌든. 파묵칼레는 온천 지대인데 석회 성분을 포함한 온천수가 흐르면서 계단식 온천탕이 형성된 곳이다. 호텔에서 노천온천욕을 즐길 수 있도록 장사하다고 유네스코가 못하게 했다고 한다. 규모가 꽤나 크다. 지금 만들어진 숙소들은 그냥 물을 끌어와 쓰는 거라고 한다. 우리가 묵은 숙소에도 온천이 있었는데, 물이 엄청 미지근하다. 40도도 안되는 듯. 뜨끈뜨끈한 물에 몸을 풀어보려고 했으나 불가능. 게다가 노천온천의 바닥에 일부러 진흙을 깔았다고 한다. 이유는 모르겠다. 어쨌든 흙탕물이었던 셈. 그냥 실내수영장에서 일행 중 한 분에게 물안경 빌려서 수영이나 했다.
# 밤에 로비에서 밸리댄스 공연이 있다고, 엄마가 가서 보면서 맥주나 한 잔 할까 하신다. 엄마는 술을 안 먹는다. 그냥 얘기나 좀 할까 하는 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엄마는 술 안 먹잖아, 그러고 말았다. 밸리댄스 보다가, 차 한 잔 하고 갈까 물었는데, 엄마가 됐단다. 피곤하니 그냥 들어가서 쉬자고. 나 정말 왜 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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