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류님의 [걷다 -100328 터키] 에 관련된 글.
# 호텔에서 나와 버스에 올라탔다. 호텔로 들어가는 회전문을 한 할아버지가 닦고 있었다. 단정하게 차려입고 회전문을 닦는 모습이 약간 생소했다. 한국에서는 건물의 문을 닦는 일이 주로 50~60대 여성 청소용역 노동자인 경우가 많기 때문인 듯했다. 이슬람교를 주로 믿는 터키에서는 여성이 밖에서 일을 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고 한다. 식당이나 카페의 서빙도 그렇고 한국에서 주로 여성적인 일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을 남성이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책(둘 중의 어디에 나온 얘긴지는 모르겠으나) 내용이다. 한국에서도 호텔이나 고급식당에서 서빙하는 일은 주로 남성들이 하는 걸 보면 꼭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고, 초대 대통령이 매우 역점을 두었던 것 중의 하나도 성평등이었다는데 실제로 어느 정도인지도 궁금하고. 어쨌든 회전문 닦는 할아버지는 인상적이었다.
# 이스탄불에서 마르마라 해협의 해안선을 따라 겔리블루로 갔다. 차낙칼레 해협을 배로 건너 랍세키라는 도시로 갔다. 겔리블루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접시에 볶은 밥과 고등어구이(구웠다고 하기에는 찐 것처럼 밋밋하기도 하고), 양배추가 주된 재료인 샐러드가 나왔다. 현지식에 대한 기대가 컸는데 쫌 많이 실망했다. (다행히도 이후에 먹게 된 현지식들은 괜찮았다.) 쌀은 길쭉한 모양의, 주로 동남아 지역에서 난다고 얘기되는 것과 비슷한 모양의, 하지만 조금 더 통통한 것이었고, 터키에서는 한국과 같은 밥은 없고 모두 볶은 것이라고 한다. 터키도 흑해, 에개해, 지중해로 둘러싸인 반도이지만 생선요리가 다양하지는 않은 듯하다. 여행 안내서에 소개된 음식들 중에도 생선요리에 대한 언급은 별로 없다. 다만 함씨라는, 한국의 멸치인데 멸치보다는 조금 더 큰 생선을 많이 먹는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돌아가기 전에 한 번 먹어볼 기회가 있기를 기대.
# 차낙칼레 해협은 이런저런 전투가 많이 벌어졌던 지역이라고 한다. 해협을 건너 닿은 곳은 트로이 유적지라고 알려진 곳이다. 하인리히 슐리만이라는 독일의 사업가가 <일리아스>에 꽂혔는지 유적지라고 예상되는 곳을 무작정 파헤치다 보니 발견된 곳이다. 트로이 전쟁이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사건인지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지만 대체로 실제로 있었다고 여겨지는 듯하다. 땅을 파보니 일곱 가지 정도의 층이 구분되어 드러났다고 하고, 이것을 설명하는 방식은, <일리아스>가 있기 훨씬 전부터 있던 도시의 흔적 위에 새롭게 도시를 세우고 그 위에 또 도시를 세운 것이라고 한다. 성이 있고 사람들이 살았던 집이 있는데 거기를 다시 흙으로 덮어 그 위에 또 성을? 실제로 각 층의 시간 차이가 백 여 년 안팎인데 그게 가능한 얘기인지 아무래도 모르겠다. 여러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이 눈에 띄었다. <일리아스>와 같은 이야기가 유럽인들에게는 나와 다른 느낌일지 궁금했다. 나에게는 그냥 먼 옛날 먼 나라의 이야기 정도인데, 로마의 건국이나 그리스 로마 신화들의 연장선에서, 그런 이야기들이 익숙한 사회에서 사는 사람들이 '트로이'에 대해 가지는 친밀감은 다른 느낌일까 하는. 유적지는 넓은 땅에 흩어져있는데 인상적이었던 것은, 꽤나 인기있는 관광지라는데 마치 '버려진 땅'의 느낌을 주는 점이었다. 봄이라 그런지 풀들과 들꽃들이 어지럽게 피어있고 돌무더기들이 그냥 흩어져있고 유적들이 그 사이사이에 그저 놓여있는 듯한 느낌. 정돈된 느낌이 하나도 없달까. 한국에서 유적이라고 할 만한 곳들의 깔끔함보다 훨씬 매력적이었다. 사실 유적들 하나하나가 감동적이지는 않았다. 트로이 전쟁 이야기가 여전히 생소한 내가 몇몇 흔적들을 바탕으로 거대한 서사를 눈으로 그려볼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돌 하나에 감동할 만큼 감수성이 예민한 것도 아니고. 다만, 희생 제물을(주로 양이었다고 한다) 죽여 피를 씻고 신에게 바쳤던 제단 터라는 곳에 조금 눈이 붙들렸다. 신을 부르는 간절함이 전해졌달까.
# 여행 '손님'은 엄마랑 나까지 모두 스무 명이었다. 50대 정도로 보이는 여성 여섯 분과 부부가 같이 온, 대체로 예순 전후로 보이는 분들이었다. 아무래도 나는 뭔가 어색하고 불편하다. 인솔자와 현지 가이드, 버스 운전기사, 그리고 또 한 명이 함께 다녔는데 터키 사람이다. 자세히 소개를 안해줘서 어떤 역할을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야샤르, 라는 이름을 가진 남성, 담배를 엄청 많이 피우는 사람이다. 트로이에서 보니, 우리가 들어가기 전에 미리 입장권을 구매하고 나눠준다. 입장권을 사는 것 정도는 현지 가이드도 터키말을 하니까 충분히 할 수 있을 텐데, 이것저것 처리해줘야 할 일이 많은 건가, 궁금해하다가 말았다.
# 트로이에서 나와 에게해 연안을 따라 아이발릭까지 가서 짐을 풀었다. 땅이 넓으니 이동 시간이 꽤 걸린다. 터키의 남단은 울산쯤 북단은 백두산쯤이라고 한다. 기온은 비슷한 편인데, 해안과 내륙의 차이가 꽤 크다고 한다. 여름에 건조하고 겨울에 우기라 습하다는 것이 차이. 그리고 대부분의 면적을 차지하는 내륙 지방은 한국의 분지처럼 더울 때 엄청 덥고 추울 때 엄청 춥고, 일교차도 심하다고 한다. 올해는 봄이 늦게 와서 한국과 비슷한 기온이라고 할 수도 있겠는데, 아무래도 조금 더 추운 것 아닌가 싶다. 지나가면서 보이는 나무들은 대부분 올리브 나무다. 잎의 뒷면이 회색빛이라 멀리서 보면 먼지를 뒤집어쓴 것처럼 뿌옇다. 들풀들은 비슷한 게 꽤 많다. 씀바귀, 민들레, 쥐손이풀, 등등 엄마는 한국에서 나는 것들과 매우 비슷하다고 한다. 날씨가 맑아 바다가 반짝반짝 빛난다. 중간에 꽤 높은 곳에서 잠시 쉬었다. 전망이 좋은 곳이라 멈춘 듯하다. 사람들이 종종 쉬었다 가는 곳인지, 노점이 많았다. 주로 올리브유와 말린 과일들을 팔고 있었다. 한국에서 국도변에 종종 과일이나 막걸리빵 같은 것들을 내놓고 파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라솔을 친 형태의 노점은 아니었고, 정확히 뭔지 모르겠으나 슬레이트 지붕 같은 것으로 경사지게 천장을 덮고 나무로 짠 진열대에 상품들을 펼쳐놓은 작은 노점들이었다. 인근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일까. 관광철이 아니어서인지 다른 이유에서인지, 예닐곱 개 되는 노점 중에 문을 연 곳은 두 군데밖에 안됐다. 바람도 시원하고 꽃들도 알록달록 피어있고 하늘은 맑고, 뭔가 예감이 좋다.
# 이동하는 동안 가이드가 이런저런 얘기를 계속 해준다. 아이발릭으로 오는 동안에는 신화 얘기를 했다. 아테네의 왕 아이게우스의 아들로 태어난 테세우스가 크레타 섬으로 가 미노스의 공주 아리아드네의 도움으로 미궁 속의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돌아오는데 돛의 색깔을 바꾸지 못해 아버지가 죽었다는 안타까운 이야기. 이 이야기는 이카로스의 이야기로 이어지기도 하고 그러는데 어쨌든 긴긴, 혹은 짧지만 복잡한 이야기를 술술 잘도 풀어낸다. 미궁 속의 괴물 얘기 정도는 알겠는데 다른 이야기나 사람 이름은 책에서 본 적 있다는 기억만 나고 통 기억나지 않는다. 얼마나 보고 듣고 말하다 보면 저 정도가 될까 궁금해진다. 어쨌든 그리스로마신화의 무대가 터키까지 뻗어있다는 게 낯설었다. 터키가 그리스와 매우 가깝게 있고 그래서 서로 알력 다툼도 심하고 사이프러스(키프러스)섬에서는 여전히 대립 중이라는 건 이번에서야 알게 됐으니 말이다. 어쨌든 고대 세계사 시간에 도통 '이해'가 안되는 이런저런 나라들의 전쟁과 흥망성쇠와 등등이 터키와 관련있다는 게 생소했고, 터키를 잘 보고 가려면 그런 역사도 좀 이해할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
# 숙소에 조금 일찍 도착했다. 엘리베이터가 '냉장고 엘리베이터'(가이드의 표현)다. 냉장고 문을 열듯이 직접 열어서 타야 하는 거다. 그리고 욕조가 없는 호텔이다. 이슬람 사람들은 고인 물에서 몸을 씻지 않는다고 한다. '하맘'이라고 불리는 목욕탕 문화가 있는데 이 곳도 고인 물을 받아놓고 들어가 몸을 불리는 한국과 같은 탕 문화는 없다고 한다. 저녁 시간까지 시간이 좀 남아 엄마랑 해변을 걸었다. 이 곳은 해수욕을 하는 동네 같다. 오는 동안 신기했던 건 대부분의 해안이 땅이 뚝 끊기는 모양으로 생겼다는 것. 간혹 사람이 살지 않는, 여름에 휴가를 보내기 위한 별장처럼 사용된다는(이런 문화가 아주 부자들만의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주택들이 늘어선 동네를 보면 그 너머에 해수욕장이 있는 건가 싶기도 했는데, 흠, 잘 모르겠다. 가이드의 말로는, 에게해 연안은 전반적으로 조석간만의 차이가 거의 없다고 한다. 어쨌든 둘째날 묵은 동네는 레스보스 섬이 코 앞에 있는 동네다. 코 앞인데 그리스 땅이래, 헉. 뭐 그냥 괜히 반가웠다는 거.
# 저녁을 먹는데 일행 중 한 분이 맥주를 샀다. efes pilsen이라는 맥주. 맛있었다. 돌아가기 전에 또 한 번 마시고 싶어. 터키에는 맥주가 두 종류 있다고 한다. 에페스는 파란 상표고 또 다른 하나는 녹색 상표인데 이름이 지금은 기억 안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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