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류님의 [엄마와 함께 터키 다녀오다] 에 관련된 글.
# 패키지 여행이라 여행사 직원인 인솔자가 함께 간다. 인상이 매력적이지는 않아 조금 실망스러웠다. (이때는 인솔자가 가이드 역할을 하는 줄 알았기 때문에 뭔가 오랜 시간 여행을 다닌 사람의 분위기를 기대했다. 일주일 가까이 같이 다니는 동안 첫인상과는 다른 느낌을 받았고 전혀 실망스럽지 않았다.) 비행기를 타자마자 기내식이 나오는 줄 모르고 점심을 사먹었다. 먹다가 조금 늦어져서 전화를 걸었는데, 이야기 말미에 "저는 전 과장이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라고 말한다. 과장이라는 걸 강조하고 싶은 건지 뭔지 잘 모르겠고 굳이 또 그런 얘기를 불쑥 하는 건 무슨 마음인지도 모르겠고, 다만 이렇게 다니는 여행에서 사람들이 뭐라 불러야 할지 몰라서 곤란해하거나 제멋대로 함부로 부르는 사람도 있나 보다, 생각하고 말았다.
# 여행 준비는 거의 못했고, 책은 세 권을 샀는데, 한 권을 비행기 타기 직전까지 읽었다. <터키, 신화와 성서의 무대>라는 제목의 책인데 개괄적인 책으로 볼 만하다. 그런데 신화와 성서에 대한 얘기는 별로 없고, 글의 군데군데에서 묻어나는 민족주의나 이런저런 편견들, 다소 보수적인 성향 등이 조금 불편했다.
# 비행기 안에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기 시작했다. 재밌다. 한번 읽어봐야지 생각했던 건, 학교 다닐 때 잠깐 들뢰즈의 책을 보는 동안이었는데 거의 십 년 만에 실제로 읽게 된 셈이다. 재밌다고는 하지만 막 웃음이 나올 정도의 재미는 아니다. 아무래도 외국어로 쓴 글이라, 이 부분은 참 재밌는 말장난일 듯하군, 흠, 이런 부분은 말장난이면서도 의미를 곱씹어보게 하는 철학적 질문이군, 하는 등의 흥미로움은 있었으나 그냥 그 정도였다. 그래도 단숨에 끝까지 읽어내렸다. 다른 이들에게도 읽어보라고 하고 싶은 책이었다.
# 내일 시작될 일정부터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터키의 유혹>이라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터키에 살고 있는 한국인이 쓴 소개서다. 꽤 두툼한 분량이고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그의 소개가 얼마나 적절한지를 판단할 능력은 없고, 다만 터키에 상당한 매력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라는 건 충분히 느껴진다. 한반도의 네 배 정도 되는 땅(대한민국의 여덟 배 정도)에 구석기 시대부터 이어져오는 문명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고 고대와 중세, 근대를 거치는 동안 종교와 민족과 등등에 따른 복잡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나라.(이 복잡한 역사는 세계사 시간에도 얼핏 들었던 동로마 서로마 오스만제국 등으로 이어지는 역사인데 돌아올 때까지도 잘 알게 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다른 이슬람 국가와 달리 정치와 종교를 명확하게 분리한 나라이고, 초대 대통령인 무스타파 케말이 거의 신적인 존재로 여겨진다는 거, 그외 기후와 식생과 음식 등등의 이야기. 이런 이야기들이 서술된 총론에 이어 지역별로 정리된 장들이 이어지는데 에게해 부분을 읽었다. 엄마는 여행안내서인 프렌즈 터키 편을 읽었는데 눈이 침침하다고 이내 잠들었다. <프렌즈 터키 편>은, 한국어로 되어 있는 몇 안되는 여행안내서 중에는 제일 낫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그리고 09년 정보를 바탕으로 쓴 거라고 해서 샀다. 배낭여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는 유용할 듯했다. 다른 걸 보지 못했으니 뭐 평가하기도 애매하다.
# 조금 자다가 일어나서 <위건부두로 가는 길> 읽었다. 책을 너무 많이 들고 간다고 핀잔을 들었지만 잘한 일인 듯. 게다가 <위건부두로 가는 길>은 불현듯 들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전날 저녁 교보문고에 가서 굳이 산 책이었는데, 정말 잘 들고 왔다. 당시 영국의 탄광 노동자들이 어떤 집에서 어떤 생활을 했는지, 일은 어땠는지 등을 정말 생생하게 그려낸다. 보는 것과 하는 것의 차이일 수도 있겠다. 노동자들의 삶의 모습뿐만 아니라 그이들의 의식과 감수성에 대해서도 속깊이, 그가 탄광의 가장 깊은 곳까지 내려갔듯이, 들어가 꺼내 보인다. (며칠 더 들고 마저 읽었다.)
# 가는 동안 내내 낮이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니까 그런가. 신기하다. 가는 길에 넓게 펼쳐진 대륙이 보인다. 서울에서 제주도 가는 비행기에서 보는 땅과는 확실히 다르다. 이게 해외여행인 거구나.
# 이스탄불의 아타튀르크 공항에 도착. 시계는 두 시를 가리키는데 여긴 아직 저녁. 현지에서 가이드가 나왔다. 한국인이다. 버스에 올라 자기 소개를 한다. **, 이라고 불러달라고 하면서, 미스 박, 아가씨, 이렇게 부르지는 말아달라고 부탁한다. 그렇게 부르는 사람들이 곧잘 있나보다. 그럴 때의 불쾌함에 공감이 가면서, 괜히 뭔가 통하는 구석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이름은 한글 이름과 비슷하게 지은 건데 터키말로는 물과 생명이라는 뜻으로 읽을 수도 있어 대충 그런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앞으로 여행 일정에 숙소가 대체로 아주 좋지는 않을 거라고 강조하면서, 그래도 이스탄불에서 묵는 첫날과 마지막날 숙소가 좋은 편이니 편안히 주무시라는 인사로 말을 마쳤다. 호텔은 매우 좋았다. 평생 그런 데서 자볼 날이 또 있을까. 엄마 몰래 담배 한 대 피고 와서 씻고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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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ng.I 2010/04/06 18:35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그래도..
그냥.. 그저.. 마냥.. 부럽기만한 1ㅅ
미류 2010/04/06 19:56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ㅎ 좀 부러워해줘도 고맙지~ 근데 그대는 더 많은 곳들을 다녀왔잖우~ ^^
Rong.I 2010/04/06 22:03 고유주소 고치기
생각해보면..
엄마랑 그런 여행을 다녀와 본 적은 없네용..;;
사실 엄마랑 붙어 있으면 참 많이도 싸우지만.. 그래도...ㅜㅡ
미류 2010/04/07 00:47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ㅎ 그러게 가끔 통화하는 것 들으면 엄마한테 심하다 싶은 생각이 들 때 있었는데, 나도 똑같은 듯. 여행, 마음의 준비 잘해서 함께 다녀와 볼 만한 듯. 나는 몇 년 전 단양-소백산-영주 정도를 3박 일정으로 엄마랑 다녀왔는데 단 둘이 다니는 배낭여행이기도 했고, 쨌든 그때는 안 싸웠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