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왜...
마석과 연촌에서 벌어진,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합동단속의 소식을 듣고,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혼비백산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과 경찰들을 피해 도망다니다가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엄마가 잡혀간 줄 아는지 모르는지 마냥 싱글거리는 표정의 아이 사진을 보고, 나는 왜 어떤 모멸감을 느끼고 있는 걸까요.
110명이 넘는 이주노동자들을 잡았다고 하네요.
쫓기다가 다쳐 쓰러진 사람이 있으면, 차라리 그냥 무시하고 다른 이주노동자들을 쫓았다고 합니다.
살아있는 자를 쓰러뜨리는 것만이 유일한 목적인 듯 움직이는 물체가 사.람.이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세상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진실이었던 걸까요.
100명이라는 숫자에 괜히 욕지기가 올라오는 걸까요.
그 누구든 한 명이 잡혀갈 때 지금처럼 분노하지 못한 게 문제겠죠?
이주노조의 지도부만을 겨냥해 단속을 할 때도 작은 힘 하나 보태지 못한 게 부끄러운 거겠죠?
그때도 화는 났어요. 속상했고요. 정말 비열한 정부라는 생각도 들었지요.
그래도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을 뒤로 하고 출입국관리사무소 앞으로 달려가보지를 못했어요.
그때는 그랬는데, 이번에는 왜 이리 마음이 부대끼는 걸까요.
어떻게 해야 할지, 여전히 내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보이지 않는데,
그래도 기자회견한다는 자리라도 쫓아가보기는 해야겠는데,
그것만으로는 울렁거리는 마음이 가라앉지 않아요.
이렇게 또 시간이 흐르고 나면
오백 명이 잡혀가야, 천 명이 잡혀가야 분노하는 내 모습을 보게 되는 건 아닐까 불안해요.
그래서 난 이 모멸감을 헤아리고 다스리고 싶은데 잘 안돼요.
우리도 사람이니까, 사람이니까,
사람이니까, 라는 말밖에는 아무런 기댈 구석이 없었던 것이 미등록 이주노동자지요.
이건 어쩌면 내 편견 탓인지도 모릅니다.
촛불의 거리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붙들려갈 때도,
인터넷에 올린 글 하나를 핑계로 사람들을 끌고갈 때도,
이런 마음은 아니었어요. 무언가 달라요.
빼앗길 것도 없는, 날 것의 사람 그대로. 그것 말고는 호소할 것이 없는 이들. 이라는 느낌.
그래서 어떤 모멸감을 느끼고 있는 것일까요.
이럴 때 그 따위 사.람.이라는 말이 무슨 소용이고
사람의 권리라는 말은 또 무슨 소용인가 싶지요.
그런데도 또, 그래서 사람의 권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요.
있어서는 안될 사람... 누군가를 그렇게 규정짓는 사회는 얼마나 야만적인가요.
지금 우리가 확인한 모욕을 도대체 어떤 말로 달랠 수 있을까요.
말이 아니라 힘으로, 어떤 기운으로, 스며 번지듯 타오르듯, 말이 아니라 무엇으로...
그 무엇이 인권이 아니더라도 지금 내가 다시 꼭꼭 씹어야 할 것이 인권인 것 같아요.
삼키지도 말고 뱉지도 말고 그냥 꼭꼭 씹어야 할 것.
선전포고를 당한 느낌입니다.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전쟁이 아니예요.
나를, 우리를, 사람은 사람이니까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두를 겨냥한 선전포고요.
그러니, 가만히 있지는 말아야겠죠. 그런가요...
전태일 열사가 다독여줄 것을 알고 마침 어제 이런 일이 있었을지도 모르죠.
이랜드 노동자들도 그러니 잠깐은 마음놓고 웃어줬으면,
출입국관리사무소에 갇힌 이주노동자들도 그러니 잠깐은 웃었으면,
어딘가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을 그 누군가도 그러니 잠깐은 마음 놓았으면.
그러니 나도 그저 잠깐은 모멸감을 있는 그대로 놓아두었으면.
여전히 무얼 해야 할지 모르겠는 나도,
어쩌면 영영 무얼 해야 할 지 모르면 어떡하나 하는 조바심도, 잠깐은 내려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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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 2008/11/13 22:28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설명할 단어를 찾지 못하던 내 감정상태에 대해
미류가 모멸감이라고 표현을 해줬네...
감비 2008/11/14 08:47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미류 글 볼 때마다 부끄럽고 착잡한 마음에 한마디 남기지도 못하다가, 오늘 겨우 아는체 해봐요. 힘 냅시다!!
여진 2008/11/14 13:56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미류 글을 읽다가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책이 떠올랐음둥..잡히는 것도 잡아가는 것도 다 인간이네..
미류 2008/11/14 14:28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나루, 응, 나도 문득 생각난 단어인데, 뭔가 수치스러웠던 것 같아. 마치 내가 무슨 수모를 당한 듯이...
감비, 그러면 제가 부끄럽죠. 힘 내요!
여진, 난 아직 못 읽어본 책인데, 나중에 얘기해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