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1018)
완도를 가기로 길을 정하고 나니 가는 길에 해남 대흥사에나 들러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떻게 가면 될지 찾아보다가 미황사에서 18일에 괘불재를 올린다는 걸 알게 됐다. 미황사라는 절 이름을 그 전에 알았는지 몰랐는지도 모르겠는데 흔치않은 기회다 싶어 마음을 먹었다.
광목천 같은 데다 크게 그려놓은 부처님은 붉은색과 녹색이 어우러진 가사를 걸치고 있었는데 빛이 바래 은은한 기운이 더욱 곱게 느껴졌다. 달마산 하늘 아래 걸린 괘불 앞에 사람들이 공양을 올리는 순서였다. 만물공양. 사람들마다 1년 동안 정성들여 가꾼 것을 부처님 앞에 내어놓는다. 쌀, 콩, 깨, 천연염색한 방석, 사업계획서, 떡, 그림 등등 갖은 정성들이 나왔다.
"아래마을 **에 사는 ***입니다. 1년 동안 키운 **를 올립니다. 세차장을 하는 아들 사업이 잘 되게 해주세요." 끝없이 이어지는 소원들. 그 중에는 "내년에는 큰아들이 결혼할 마음을 먹게 해주세요."라는 소원도 있었다. 결혼하게 해달라기도 미안했는지...
곧 끝날 줄 알았는데 끝없이 이어진다. 끝도 없이. 괜히 먹먹해진다. 누군가에게, 오로지 드린다는 마음만으로, 정성스레 키운 것을 내어놓는 행위는 어느 순간 큰 감동이 되어 다가왔다. 그러다가 결국 그 마음들이 너무 무겁고 부담스러워 절 안을 기웃거렸다. 크지 않은 절이라 돌아보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지만 그 동안에도 공양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공양이 이어질수록 부처가 매우 가까이 다가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가끔 바람이라도 한 줄기 불어오면 그것이 부처일까 싶을 정도로.
공양이 끝나고 모두 함께 예경문을 읽고 '통천'이라는, 하늘과 땅과 사람에게 소원을 비는 순서를 가졌다. 불경 읽는 것도 괜히 익숙한 느낌이었다. 괘불재가 끝나고 작은음악회까지 시간이 남아 달마산에 올랐다. 울퉁불퉁한 하나의 능선을 가진 산이었다. 봉우리에 오르니 진도가 먼저 눈에 들어왔고 바다로 달려나가는 땅끝마을도 보였다. 고개를 돌리니 다음날이면 밟아보게 될 완도와, 의외로 작고 허름한 완도대교가 눈에 들어왔다. 지도가 없어서 짐작만 하다가 나중에 확인한 것이긴 하지만 날이 맑아 눈으로 실컷 걸었다.
어스름한 저녁에 작은음악회가 시작되었고 인도에서 온 이들의 연주가 여는 듯 마는 듯 어둠을 비집고 퍼져나갔다. 120년 전 돌아가셨다는 스님들의 혼을 달래는 춤사위에 이어 풍물굿판이 벌어졌고 강강술래를 하며 음악회가 마무리됐다. 풍물은 우도굿이었는지 가락이 익숙하지 않았지만 어린 아이들부터 나이든 어른들까지 어우러지는 기운이 느껴졌다.
미황사는 아주 오래된 절인데 120년 전 배를 타고 시주를 나갔던 스님 마흔 분이 풍랑을 만나 모두 죽으면서 거의 폐허가 됐다고 한다. 아무도 찾아들지 않는 절에 20년 전쯤 지금의 스님들이 하나둘 들어와 절을 다시 세우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 괘불재는 중창불사 회향기념으로 더욱 정성스레 준비했다고 한다. 주지인 금강스님의 말로는, 절에 온 후로 청산도를 한번도 못 가봤다고 한다. 멀지도 않고 어렵지도 않은 섬이지만 가깝기는 어렵고 쉽게 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섬이었음은 분명할 테다. 올해서야 청산도로 배를 타고 가 120년 전의 죽음을 마주하고 왔다고 한다. 천 년의 꿈, 120년의 원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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