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에 집에서 뒹굴거리며 채널을 돌리다가
<매트릭스 3>를 봤다.
기계와 인간의 대전이 나왔는데
인간편 장군의 이름이 '미푸네'(Mifune)였다.
우연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찾아 보니 역시 구로사와 아키라 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미후네 도시로의 이름을 딴 것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본 구로사와 회고전 상영작 중에서
두 편인가를 빼놓고는 모두 미후네가 나왔다.
내 기억 속에 미후네라는 인물을 기입한 영화는 <거미집의 성>인데
일본 영화배우 중 내가 처음으로 이름을 외웠던 사람이 그였으니
인상적(impressive)이라는 말의 정의에 가장 부합하는 인물이었다.
(일본 영화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말고는
구로사와 아키라와 오즈 야스지로 영화 약간밖에 본 적이 없어
지금도 내가 이름을 외우는 일본 배우는 서너 명을 넘지 않는다.
주위에 팬들이 많아 이름만 기억하게 되었을 뿐 얼굴하고 일치시키진 못하는 오다기리 조와
<노다메 칸타빌레>를 통해 알게 된 우에노 주리(꺅!) 정도?
물론 구로사와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한다면
적어도 시무라 다카시 이름은 외웠어야 했겠지만 말이다..)
이번 회고전 자료집에 따르면
<거미집의 성> 라스트신은 특수 촬영이 아니라
실제로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명사수가 미후네를 겨냥하고 쏜 것이라고 한다.
촬영이 끝난 후 미후네는 위험한 촬영을 감행했다며 감독을 격렬히 비난했고
심지어 술에 취해서는 산탄총을 들고 감독 집에 찾아갔다고.
미후네에게는 좀 미안한 일이긴 하지만
관객의 입장에서는 구로사와의 위험한 시도를 절대적으로 지지할 수밖에 없다.
정말이지 그 라스트신은 운명 앞에 선 인간의 무력함을
어떻게 해볼 수 없을 정도로 표현하며
이 장면으로써 <거미집의 성>이 원작인 <맥베스>를 뛰어넘는
실로 엄청난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Posted by 아포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