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 마비를 부추기는 이미지 정치는 독

-더민당 ‘양향자 씨’를 통하여 본 단상(斷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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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뉴스 선임기자 박정례= 4.13 총선이 35일 남았다. 각 당에서는 목적을 위해 온갖 책략과 방법을 다 동원하느라 바쁜 가운데 새 인물들을 발굴하여 국민들의 시선을 끌기에 한창이다.

그래서다. 최근에 더민당에서 선보인 ‘양향자’씨를 보며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단상 몇 개가 있다. 양향자씨에게 따라붙는 가장 큰 수식어는 우선 고졸 출신에 최초의 여성 상무라는 것, 그것도 우리나라 최고의 재벌기업인 삼성출신 상무라는 점이다. 아무튼 열심히 살아온 양향자 씨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런데 하도 많은 매체에서 양향자 씨에 대해서 봇물을 이루듯이 보도하는 바람에 잠시지만 넋 놓고 지켜본 끝에 우리에게 양향자는 무엇일까? 하는 물음이 남았다. “더민당에서 양향자 씨를 엄청 띄우고 있으니 이미지만 보고 좋아해도 되는 것일까.” 하는 점과 “양향자 보다 더한 인물도 많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됐다.

그렇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서울시립복지관장인 이명호 씨가 있다. 이명호(이하 경칭 생락)는 해군(海軍)으로 복무하는 중에 뜻하지 않은 사고를 입고 8개월 동안 긴 투병생활을 했다. 고교 졸업도 못한 상태에서 군에 입대했고, 그 흔한 고교졸업장 하나 없이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람이다.

처음엔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자신의 몸에 상이(傷痍)를 지니게 된데서 오는 절망감이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날 장애를 가진 친구 형의 모습을 보며, “아 나는 자포자기를 말아야겠구나. 죄 없는 식구들이나 들볶으면서 사는 인생이어서는 안 되겠구나!”하고 대오각성을 하게 된다. 포장마차를 하면서도 배움의 끈을 잡아당겼다. 검정고시를 통해 고교졸업장을 취득한 것이다. 그러고 나서 서울지하철공사에 입사하게 됐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노조활동을 시작했다. 노조에서는 주로 복지부장을 맡아 회원들의 뒷바라지를 열심히 했다. 착실히 활동을 하다 보니 선출직 노조부위원장에까지 오르게 된다.

이명호의 학업은 직장생활 중에도 계속됐다. 사회복지학과 교육학을 복수전공하고, 석.박사과정에 도전하여 정치학으로 석.박사학위까지 취득하게 된다. 그야말로 쉼 없는 주경야독의 길이었다.

이명호의 사회경력으로는 참여민주주의와 남.북간 교류협력촉진운동과 생활개혁 실천운동을 이어간다. 시민사회단체기관인 환경운동본부를 조직하여 환경오염으로부터 지구촌 보호를 위한 체계적이고도 효율적인 신환경운동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힘을 모았다. 이어 (사)아시아태평양환경 NGO한국본부 수도권본부장, 한국장애인복지관장협의회 회원 또는 간부로 활동했다. 현재는 서울시립복지관장 직을 수행하고 있다.

서울시상이군경복지관은 노원구 중계동에 있는데 전국에서 유일한 상이군경복지관으로서 25개 서울지부의 회원수가 19,823명이다. 이들 중 복지관을 이용하는 숫자는 3천800명에 무료급식과 목욕 이용회원은 매일 700명에 이른다. 이렇게 이명호 씨는 수많은 상이군경들이며 국가유공자들을 돌보는 복지관의 최고책임자로 일한다. 고교졸업도 못한 소년병이 병상에서 일어나 독학으로 고교졸업을 하는 것을 시작으로 대학졸업에, 석.박사학위까지 소지하고서 끊임없이 봉사하는 삶을 살고 있다.

이에 비해서 양향자는 어떤가. 어떤 이는“양향자가 일했던 삼성은 철저하게 금수저를 위한 기업이지 흙수저에게는 관심이 없는 재벌이다. 양향자 역시 본인의 능력으로 '삼성의 별'이 되었다지만, 이는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닌 그저 본인의 성공을 위해 달려온 것일 뿐이다"며 "그가 삼성전자에 있으면서 백혈병으로 죽어간 나이어린 여성노동자들을 위해 한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도 함께 따라다닌다. 그런 그가 어떻게“직장맘들과 젊은 청년노동자들의 눈물을 닦아준다는 말인가?”라고 지적하며 비판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지적을 접하면서 성공한 겉모습만 보고서 무조건 열광하지 않는 사람도 있구나. 선거를 앞두고 거대 야당이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주입해준 이미지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은평을에서 국민의당 예비후보로 뛰고 있는 고연호 씨도 만만찮은 사연을 갖고 있다. 그녀는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는데 위 언니들과 10년에서 17년이나 나이 차이가 나는 관계로 또래 친구도 없이 외롭고도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고, 가난한 형편에 학교 기성회비와 등록금 제 때 한 번 내보지도 못한 학교생활을 견뎌냈다. 별명이“고무신울 신은 아이”로 불리며 오후에는 점방을 보는 일을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해야 해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개인생활이라고는 없는 삶을 살았다.

칠판을 닦는 근로 장학생으로 재수생활을 했고, 대학을 마친 후에는 처녀가장으로서 대일(對日)무역과 이어 중장비업체를 운영하며 정치에 입문한지 13년째로서 지금 현재 은평을 지역에서 국민의당 국회의원예비후보로서 달리고 있다.

힘들게 사는 민초들의 삶이 지천에 깔려있다. 하루 12시간 씩 식당일에 미용 일에 청소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며 비정규직이 850만이나 되는 나라다. 요행히 양향자 씨는 재벌기업에서 승승장구 한 끝에 상무 직에 오르고 오늘에 이르러서는 거대야당에 영입되어 하루아침에 수많은 언론매체가 주목하는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러나 상이군경으로서 좌절을 딛고 복지관장으로서 헌신하는 이명호 같은 사람도 있고, 평생을 처녀가장으로서 입양한 두 딸에 93세 노모를 부양하며 처녀 때부터 기업 활동으로 인연을 맺은 은평을에서 국민의당 예비후보로 뛰고 있는 고연호도 있다. 성북갑의 국민의당 후보인 박춘림 씨는“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냐?”며 정치를 바꿔 반드시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꿈을 토로하는 주부후보다.

국민들은 요구할 권리가 있다. 우리들의 이성을 마비시킬 정도로 이미지 정치만 하지 말고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산 민초들을 내세워달라. 더불어민주당의 ‘양향자 씨’를 통하여 본 단상은 “이건 아니야!”라는 부정적인 느낌이다. 기자의 이런 생각은 현실에서 직접 겪으면서 바라 본 체험이다.

 

*글쓴이/박정례기자.르포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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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08 21:34 2016/03/08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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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김종인의 ‘국보위 식 정치’

-정치공학적인 접근으로는 정권교체 난감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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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가 있는 정치칼럼]브레이크뉴스 선임기자 박정례= 자신의 주머니를 화려한 이력으로 가득 채우는데 뛰어난 사람이 있다. 그래서 이분의 얼굴에서는 알 수 없는 여유마저 묻어난다. 모든 것을 충족한, 그래서 학수고대하던 일을 드디어 다 이룬 사람에게서나 찾아 불 수 있는 여유마저 묻어난다. 김종인(경칭생략)이라는 분이다.

이분을 들여다보면, 다른 사람들은 제 아무리 노력해도 연습생 신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혼자서만 유독 장기간 무대를 주름잡고 있는 불세출의 가수나 다름없다. 이 분은 또한 세상 풍파에서 저만치 홀로 비켜 서있는, 만인 위에 군림하고 있는 초인일 것만 같다. 이분의 이력은 그래서 눈부시고 현란하다. 비례대표국회의원 4번에, 석좌교수직 4번에, 보건사회부 장관에, 대통령 비서실 경제수석에,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에, 더불어민주당의 비상대책위원회대표 등과 같은 빼어난 이력을 자랑한다. 이 분 앞에만 서면 모든 사람들이 작아만 보이는 이유다.

우리나라는 지금 100세인 시대를 구가하는 나라다. 하지만 IMF 이후 55세 정도가 되면 직장에서 내쫒기는 사람이 부지기수인 것도 현실이다. 하니 올해 나이 77세가 된 노인에게 뒷방 늙은이라고 좀 했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다.

이와 같은 뒷방 늙은이 김종인 씨에게 느닷없이 찾아가 손에 떡과 칼을 쥐어준 사람이 있다. 더민당 대표 문재인 씨다. 덕분에 김종인 씨는 화려한 무복(巫服)을 걸치고 제 1야당이라는 작두에 올라타 백수광부처럼 흰 머리 드날리며 사상 유래 없는 신(神) 춤을 추게 됐다. 이게 문제다. 아니면 말고 식으로 휘둘러대는 이분의 칼 앞에서 그 누구라서 말 한마디라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싶어서다.

김종인은 이래저래 잃을 것도 없고, 손해날 것도 없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공천에 목맨 더민당 사람들은 설설 기고 알아서 모시는 사람이 됐다.

그래서 일까? ‘국민의당’이 창당한지 1개월 째 된 바로 그날 ‘당신네들은 그만 당을 접고 들어오시오”라는 말 폭탄을 터뜨린다. 국민의당을 창당한 안철수 대표만 빼고 모두 들어오라고 말이다. 하던 일 모두 멈추고 자신의 휘하로 몽땅 들어와 모두 자기의 명령을 받는 처지가 되라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국보위 식 정치가 아니고 무엇인가. 김종인은 국보위 출신이다. 첨언하자면 김종인은 ‘상황 따라서 그에 맞춰가는 것이 인생을 운영하는 처신법을 갖고 있다.’는 사람이다. 그는 헌정을 중단시키고 5.18을 희생양 삼아 무력으로 정권을 배경으로 성장한 사람이다. 김종인은 결국 국민의당을 교란시키고 내분을 일으켜 자중지란에 빠지게 할 수 있는 패를 던져서 며칠 동안 정국을 뒤흔들었다. 이게 바로 자신이 속한 집단을 기준으로만 손익계산을 따지는 김종인 식 정치다. 이런 정치는 결단코 없어져야 한다.

양당 독재에 신물이 난 국민이다. 국민들은 지긋지긋한 양당의 독과점 체재를 허물어 정권교체를 하라는 명령이다. 그런데 김종인은 신당을 만든 지 꼭 한 달 되는 날에 국민의당 더러 자기 앞으로 헤쳐 모이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아무리 김종인 씨가 더민당 국회의원들의 생사여탈권이라 할 수 있는 공천권을 쥐고 있는 사람이지만 상대 당을 이처럼 능멸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행여 더민당에 복귀하는 국회의원이 있다 손치더라도 유권자들은 혼 없고, 쓸개 없고, 백치스러운 사람들에게 표를 주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상식도 모르면서 김종인과 김종인의 뒤에 숨어 눈 가리고 “야옹”하는 부류들 때문에 쉽게 잠들 것 같지 않은 밤이다. 제발 치열하게 정면 승부하는 정치를 보고 싶다. 정치공학적인 접근으로는 정권교체는 언감생심이고, 만년야당만 고착시킬 뿐이다.

 

나는 칼춤 추는 사나이

무소불위 권력 틀어쥔 국보위 출신 칼잡이

은빛 장검 하나 차고서

오늘도 정가(政街)에 폭군으로 군림한다.

 

갖가지 돌출 변수 직면해 와도

거센 항의가 몰아닥쳐도

머릿속엔 무궁무진 술수와

얼굴엔 권력 가진 자의 너그런 미소

손엔 공천권 쥐었으니 거칠 것 하나 없다.

 

갈 길 멀어 우는 국민의당 철수야

나의 칼춤을 맞으려므나 삘릴리 삘릴리리

나는 칼춤 추는 국보위 출신 칼잡이

 

권력 따라 변신하는 정치계의 장돌뱅이

갈 길 멀어 우는 국민의당 철수야 삘릴리 삘릴리리~

 

박정례/기자.르포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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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06 11:42 2016/03/06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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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행동,,,먹이행위

나의 행동 중에서 가치있는 행동은 과연 몇가지나 될까 싶다. 글을 쓰려는 마음을 갖고 있다고 해서 이게 무슨 가치가 있을까. 놀고 먹고 읽고 만나는 행위가 적절이 이어진 후에 원하는 결과물을 내놓지 못한다면 말이다.

그래서 말이다. 허무와 자괴감과 조금의 만족이 반복되는 생활이다. 고심참담 끝에 짧은 칼럼이나마 완성한 순간은 잠깐 동안 만족감이 찾아온다. 아 ~ 글감을 잡고 제목과 부제목을 생각해 자판을 두르리고 본문으로 들어가서 머리를 굴리면서 글을 전개해나가며 완성하려고 노력하는 순간은 몰아의 시간이다.

이런 몰입과 노력은 분명 가치가 있다. 작업에 계속해서 매달리는 이유고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상응하는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는 글쟁이는 자신을 신뢰하지 못한다. 무한히 길게만 느껴지는,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주지 못하기에 정체성을 망각하는 시간을 지내게 된다.

글쟁이라는 것을 굉장히 의식하고 살면서 글을 못써내는 부류는 그래서 이에 대한 부담을 떨쳐내지 못하기에 무슨 패배자나 되는 것 같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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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비해서 글은 못 쓰면서도 글쟁이라는 말만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은 염치가 없는 사람이다. 자신을 속이는 행위를 계속하고 있는지 모르니까 말이다. 못 쓰면 나는 글쟁이가 아니야! 하고 과감히 인정할 줄 알면 괜찮은데,그래서 자기가 잘 하는 쪽으로 가면 되는데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서 폼만 재는 사람은 진정성 있는 사람이 아니다.

예전에는 200자 칸이 인쇄된 원고지에 글을 쓰면서 고독하게 작업을 하다 보니 글을 쓰는 사람과 글쟁이가 아닌 사람들하고 차별이 좀 됐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 다 컴퓨터 키보드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는 식으로 겉에서 보기에는 다 비슷해 보인다.

이래저래 무료하고 허기진 하루였다. 목요일 얘긴데, 마침 전화가 왔다. 지인 李로부터, "어디세요?" "집입니다." '어서 나오세요! 박기자님 좋아하는 족발요. 그거 먹읍시다." "40분 이내로 나가지요"

네 나가죠. 나가서 좀 먹어야 겠다. 신나는 일이니 망설일 것은 없다.노원역 10번 출구에서 만나 중계동으로 차를 몰았다. 난 루저인가 유저인가? 글이라는 결과물이 없으면 쪽도 못쓰고 존재감도 없는 여자. 하지만 뭐 여기 내가 먹은 족발은 나의 즐거움이고, 식도락을 만끽하는 순간이었다.

고로 주장한다. 사람이 먹는 무엇을 먹는다는 것은 특별한 행위이다. 집에서 있는 것 꺼내서 챙겨먹는 것이 아닌, 초대받고 나가서 족발 전문점에서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음식을 먹는 것이니까 그런 식사는 나름 특별하다.

많이 먹었다. 막국수도 사양하지 않고 열심히 먹었다. '오늘은 많이 잡수시네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사양하지 않고 많이많이 먹었다. 지금 많이 먹은 것에 대한 자랑질이다. 이게 무슨 자랑 할일인가 싶지만 그렇다.

힘들고 적적한 하루의 끝에 다가온 특별한 시간과  그 먹이행위는 늘 새롭게 떠오르는 우리 모두의 관심사가 아닌가. 잊어버릴 만하면 절실하게 다가오고 반복되는 지상과제 바로 먹고 사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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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28 16:01 2016/02/28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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