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걸 의원, ‘7.30보궐선거’ 향한 필승전략 세워야
[단독 인터뷰] 승리쟁취 위해서 철저하고도 빠른 반성을 토대로
[브레이크뉴스 박정례 기자]= 세월이 또다시 엄혹하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고 또 어디로 가야하는지. 6.4 지방선거가 끝난 지금 새누리당이나 새정치민주연합은 선거의 결과를 놓고 각자 편리한 해석을 해대면서 마이웨이를 위한 폭주기관차를 가동시키고 있다.
아무리 그래도 권력을 쥐고 흔드는 갑(甲)당은 새누리당 쪽이다. 그렇지 않아도 불통이요 매사 요지부동인 대통령과 더불어서 선거에서 지지 않았다는 전제 하에 반성은커녕 국정운영을 여전히 일방적으로 이끌려 하고 있다. 개조당해야 할 당사자가 국민을 개조한다고 나서는 꼴이다. ‘국가개조론’을 내세워서 칼자루를 쥐어야만 매사를 마음껏 흔들 수 있다는 속셈이 아닌가.
한때 이명박 대통령의 좌장으로 불렸던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이 당과 청와대를 향해 “국가 개조보다 당 개조가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이런 반성은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또 누구도 비켜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때 새정치민주연합의 이종걸 의원과 단독인터뷰를 갖게 됐다. 이종걸 의원과의 인터뷰는 어제 낮 2시 반을 조금 넘은 시간에 신촌의 한 출판사 회의실에서였다.
이종걸 의원을 잠시 소개한다. 이종걸 의원은 현재 경기도 안양시만안구가 지역구인 새정치민주연합의 4선 의원이다 또한 독립운동가인 우당 이회영선생의 후손이다. 이종걸 의원의 할아버지인 우당 이회영선생은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독립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장투쟁을 필요조건으로 전제한 분이다. 선생은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자 6형제 전원과 그 일가족 50명을 이끌고 만주 땅으로 망명을 결행한 분이다. 목적은 오로지 전 재산을 처분한 군자금으로 항일무장투쟁운동을 하여 독립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우당 선생은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어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노력하다가 죽는다면 이 또한 행복이 아닌가?”하고 일갈했던 분이다. 신분과 재산과 인생 모두를 조국의 독립 하나만을 위해서 여한 없이 바친 거룩한 삶이었다.
서릿발 같이 매섭고 일송정 푸른 솔처럼 변치 않는 자주독립운동의 기개를 세운 때가 서른 살 청년 때였다. 독립 운동가들의 삶은 고난 그 자체였다. 우당 이회영 선생은 결국 일제에 체포되어 여순 감옥으로 이송된다. 선생은 이곳에서 모진 고문과 굶주림으로 순국하는데 이때가 선생의 나이 66세인 1932년 11월 17일의 일이었다.
독립 운동가들의 후손들은 물려받은 재산도 없었다. 세월이 흐르고 조국이 독립을 했어도 가난과 질병과 독재정부들의 핍박에 시달리며 살아야 했다. 그 후손으로서 시대의 고난을 짊어지고 있는 사람 중의 하나가 이종걸 의원이다. 이종걸 의원에게 질문한다. 자신의 선거구인 안양시만안구의 6.4지방선거와 또 새정치민주연합이 거둔 선거 결과에 대한 솔직한 평은 어떤 것인지.
지방선거를 치룬 소감이 어떠십니까? 먼저 의원님의 지역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갔으면 합니다.
이번에 저희 새정치민주연합은 안양시장 선거에서 졌습니다. 아주 뼈아픈 선거였다고 생각합니다. 재검표를 한 결과 932표차로 졌으니까요. 안양은 서울의 위성도시로서 역사가 그중 오래 된 지역입니다. 구시가지와 구옥들이 여간 많은 곳이 아니지요. 선거 결과가 하도 복잡해서 선뜻 이것이다 일반화시키긴 좀 어렵지만 부정선거 시비도 있었고 상대를 향해서 허위제보와 마타도어도 심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세월호 참사 속에서 선거분위기는 전체적으로 가라앉았다고 볼 수 있고요. 우리 자신을 포함해서 나라 전체가 반성하는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었고 그 어느 선거보다도 침울하고 조용한 것 같아보였습니다만, 역으로 선거는 흔히들 민주주의 꽃이라고 하는데 국민이 주인이고 이 주인들의 의사가 나의 의사를 서로 표현해가며 축제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미래를 향해서 나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안타까운 점이 많았습니다. 안양시민들의 뜻이 자유롭게 표출되지 않아서 안타깝다는 말입니다. 한편에서는 자중하려고 매사에 조심하는데 일부 후보는 도가 지나친 헐뜯기로 선거를 혼탁하게 만들어서 그 상처의 여진이 많이 남을 것 같습니다.
그 가운데서 저희 안양시의 중요 쟁점은 주거환경의 노후문제가 큰 이슈였지요. 앞에서도 말했지만 안양은 한때 수도권 중에서도 제일 앞서가는 곳이었지만 오늘 날엔 노후주택문제가 이슈로 떠올라 심각하게 의견이 대립되는 곳이 됐습니다. 지난 여당정부에서 뉴타운과 재개발로 부풀려진 땅값에 비해서 경기는 계속 침체 상태 아닙니까.
나라 전체가 경기침체이고 보니 재개발 시도가 중단되거나 폐기된 곳이 많습니다. 자연히 자신들이 추구하는 기대치의 반작용으로서 재개발에 찬성하는 측과 반대 측의 의견이 심하게 대립되고 있습니다. 안양은 갈등 최고 지역 중의 하나가 된지 오래입니다. 문제는 있는 조건을 살려서 ‘좋은 마을가꾸기’나 ‘좋은 거리 살리기’ 같은 프로젝트를 시행해나가도 되는데 완전히 허물고 새로 짓는 방식, 고층아파트를 올리는 개발방식을 고집하는 도로 토건정치의 축소판인 것이지요. 선거 때마다 이문제가 단골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런 아픔을 정치로 치유할 생각은 안 하고 오히려 정치가 상업화 도구화 되어서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닌지 조심스럽게 전망해봅니다.
의원님 지역구인 안양을 떠나서는 선거 전체로 볼 때의 아쉬운 점은 뭘까요?
좀 더 기획을 잘해서 했더라면 하는 뼈아픈 아쉬움이 많지요. 선거에 진 쪽에서는 더 그렇고요. 우리 자신을 좀 더 알고 정확한 전략을 수립해 나갔더라면 했는데 그렇지 못한 측면이 있다는 거지요. 공천과 무 공천 사이에서 시간을 너무 끌어서 여유가 없었던 데다가 후보 주도 하에 각자 알아서 뛰어야하는 측면이 많은 선거였습니다. 이런 면에서 지도부는 반성을 해야 하고 경기 인천을 위시해서 후보 선정과 추진과정을 충분히 검토했더라면 좀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점입니다.
오늘이 ‘신흥무관학교’ 창립 103주년입니다. 독립운동과 항일투쟁을 통하여 우리가 배워야할 정신은 무엇인지 한 말씀 해주시라 부탁합니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국민과 한국이라는 나라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이래선 안 된다는 거. 인명경시문제, 산업화사회에서 압축 성장으로 치달은 결과 누적돼온 문제점이 총체적으로 드러난 사건이었습니다. 총리 인선을 앞둔 이 시점에서 국가 개조론만 들먹일 게 아니라 앞으로 우리가 나아갈 길이 무엇인지 세월호 사건은 선생님과 같은 사건이 됐습니다. 이런 시기에 갈수록 흐려지는 독립운동정신을 되새겨야 할 줄 압니다.
이를테면 신흥무관학교정신이죠.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상황에서도 조국에 대한 독립의지 하나로 일제에 맞섰던 애국지사들의 나라사랑정신과 불굴의 의지 말입니다. 이 ‘정신’이야말로 최고의 무기가 아니었습니까?
신흥문관학교의 역사 속에서 우리민족의 나아갈 바를 찾아야 하는 것이 잘 길러낸 인재 하나가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신흥무관학교 10년 동안에 길러낸 3500여 명의 활약상은 후에 독립군의 초석이 된 거지요. 1910년대 처음부터 서간도로 망명한 할아버지 일가는 특히 굶주림과 추위, 질병 등으로 엄혹한 시련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렇게 어렵게 공부한 신흥무관학교 졸업생들과 교관, 후원자들이 이후 항일무장 독립운동의 최전선에서 일제에 맞서 가장 치열하게 싸운 사실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만주와 상해임시정부 그리고 중국본토에서 맹활약을 했던 것이지요.
아이들을 잘 돌보고 이끄는 것은 어른들의 몫입니다. 독립 운동가들을 길러내던 신흥무관학교 정신에 교훈이 들어있는 겁니다. 독립군을 길러낸 그 정신을 시대에 맞게 재해석하여 진작시킬 때 우리나라의 살길이 열린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6.10일) 신흥무관학교가 설립된 지 103년 주년이다. 이종걸 의원의 할아버지인 우당 이회영 선생이 자주독립운동의 기개를 세운 때가 서른 살 청년 때였다. 이회영 선생은 물었다. “한 번의 젊음을 어찌할 것인가” 우리도 묻자. 어떻게 살 것인가?
*박정례/ 기자, 르포작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