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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4/15
    돈 빌려달라던 후배 이야기
    유이

돈 빌려달라던 후배 이야기


작년 12월 이야기입니다. 한 후배가 전화를 해서 조금은 떨리는 목소리로 돈을 좀 빌려달라고 하더군요. 몇 만원을 빌려달라는 줄 알았는데, 몇십만원 이상을 빌려달라고 하더군요. 저도 사정이 좋지 않아서 미안하지만 빌려주기 힘들겠다고 했습니다. 만난지 오래되었는데 처음으로 돈을 빌려달라는 말에 이상해서 물어보니 '등록금을 내야 한다'고 하더군요. 저도 넉넉한 사정이 아니지만, 등록금을 내기 위해 저에게 그런 이야기를 한 후배의 마음을 생각하니...참 가슴이 아프더군요. 자존심 때문에라도 그런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후배인데,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이야기하기까지 얼마나 망설이고, 떨렸을까요?

그 후배와 몇달간 연락을 못하다가 얼마 전 메신저를 통해 만났습니다. 잘지내냐는 말에 '죽을 맛이다'라는 것이었어요. 그렇지 않아도 메신저 대화명을 보니, '과외하고 싶어요'라고 되어 있더군요. 왜 죽을 맛이냐라고 하니, '공대생 어떤지 잘 알잖아..'라고 하더군요. 공부하기가 힘들어서 죽을 맛이라는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공대생들의 과제가 조금 많기는 합니다. 시험도 3~4차까지 보는 과목도 있구요. 그것도 힘들지만, 그것때문에 과외를 하거나 아르바이트를 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지금 과외도 짤린 상태였구요.

학업과 알바를 병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도 그 중에 가장 시간이 적게 들고, 돈을 많이 받는 게 과외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생활비와 등록금 모두를 감당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부모님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일년에 천만원이나 하는 등록금을 내기는 힘든 상황입니다. 그래도 이번년도에는 등록금이 동결되어서 다행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후배는 자신을 탓하기 시작합니다. 공부를 열심히 안해서 장학금을 못받는 내가 잘못이라고. 공부를 열심히 안하는 내가 이런 불만이나 늘어놓고 있는 거라고.

돈을 빌려달라거나, 힘들다는 말보다 더 씁쓸해지더군요. 자기가 잘못해서 등록금이 비싼 것을 이겨내지 못한다라고 생각하는 후배. 이것이 요즘 학생들의 심정을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봤어요. 부모님이 돈을 잘 벌지 않는 이상은 장학금을 받거나, 알바를 죽어라 해야지만 졸업을 할 수 있는 사회. 졸업을 한다고 하더라도 좋은 직장에 취직을 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는 사회. 무엇을 희망으로 가지고 살아야 할까요?

그 후배에게 너무 자책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네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사회가 잘못된 거라고.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이긴 하지만, 지금의 등록금이 너무 비싼거라고 말해주었어요.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사회적 책임이 아니라 개인의 잘못으로 돌리는 경향이 생겼습니다. 가난한 것도 열심히 일하지 않은 것이고, 공부를 못해도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이고, 좋은 직장을 구하지 못해도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더이상 열심히 해도 잘될꺼라는 보장이 없는 사회입니다. 물론 열심히 일해서 성공한 사람들도 있지요.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열심히 일한다고 해서 잘 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어떤 이들은 작은 노력에도 부동산 투기와 주식 등으로 떵떵거리며 살게 됩니다. 사회적 구조가 잘못된 것인데, 개인의 탓을 하는 그 후배가 매우 안쓰러워 보였습니다. 열심히 하면 잘 살 수 있다고 이야기해 줄 수 없다는 게 안타까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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