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여자

  • 등록일
    2008/01/20 11:41
  • 수정일
    2008/01/20 11:41
  • 분류
    마우스일기

늙은 여자라는 말은 참 이상하다... 늙은 남자라고 말하는 것보다도 훨씬 비루한 느낌. 할머니라는 단어랑 반대되는 느낌이다. 불쾌해 불쾌하다고!

 

내가 그녀를 안 때부터 그녀는 할머니였다. 생각하면 그때 그녀는 겨우 50대 초반이었다. 어른이 돼서 보면 60도 노인으로 안 보이는데, 애기때 보면 스무살도 아줌마로 보이니까. 그보다도 내가 태어남으로써 그녀에게 부여된 타이틀이 이미 할머니니까. 물론 나 태어나기 전에 우리 언니 태어났을 때부터:p

 

그녀는 그 타이틀에 충실히 살아왔다. 손자의 고추를 사랑하고, 집안의 대소사를 관장하려고. 그런데 그녀의 딸이 좀... 아 근데 그녀란 말 쓰기 싫다...ㅜㅜ

 

딸이 억세선지 딸이 모든 일의 중심이었고 별로 할머니의 의견은 큰 가치를 못 지녔다. 그래도 할머니는 집안의 어른으로 행동했다. 어른으로 대접하든 말든. 어른의 역할.

 

근데 딸이 죽고 손녀인 나에게는 별로 어른으로 행동하지 않았다. 할머니랑 맺는 관계는 언니, 나, 할머니 이게 거의 전부라서 10년 가까이 그렇게 지내다가 저번에 할머니의 손주랑 나랑 할머니 셋이서 잠깐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손자 앞에서는 과연 어른으로 행동하고 있었다. 그런데 너무 오랜만에 셋이 있으니까 할머니 태도가 믹스되어서 나한테까지 어른의 권위를 세우려 했다. 갑자기 할머니가 너무 짜증났다. 너무 짜증나면서 사실 나는 아닌척 하면서도 할머니한테서 우위를 점하고 있었구나. 그점도 충격이고 할머니가 나한테 권위적으로 구는 것도 짜증나고 해서 오랫동안 안 만났다. 두 달?

 

지난번에 외숙모가 집들이하셔서 갔다. 오랜만에 외가친척이 거의 다 모였다. 거기서도 보니까 과연 그녀는 어른으로 있었지만 과연 할머니의 권위를 인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그녀의 얘기를 듣는 사람은 손주사위 정도.....=_=;;;

 

할머니랑 얘기하는 것은 정말 재미없다. 난 노인이 아니어도 했던 얘기 또 하는 사람 진짜 싫어한다. 그런데 노인들은 더 한 건지... 친가 할머니는 어쩌다 뵈니까 했던 얘기 또 해도 미치게 싫지 않은데 외할머니(여태 할머니라고 말한 사람 전부 외할머니임;;;;) 얘기는 천번씩 들은 거라서 진짜 짜증난다. 그렇지만 막 화내지 않고 내가 줄줄 얘기하거나 다 안다고 해서 그 얘기를 막는다...;;;;

 

그게 딸도 죽고 아들도 죽어서 너무너무 심하다. 할머니의 딸, 우리 엄마 죽음에 관련된 얘기 내가 듣기 좋을리가 없잖여 그게 아무리 할머니가 괴로워서 하는 말이라도. 그 괴로움에 수긍해주는 것도 일이년이지 진짜 짜증난다.

 

그리고 그 괴로움이라는 것도 근대인이 듣기에는 너무 이상하다. 딸이 둘만 있었어도 이렇게까지 안 괴로웠을 거라고 말하는데... 자식이 개수인가...-_- 나 자신이 할머니와 맺은 관계를 생각해도 그렇지만 개인으로 생각하지 않고 위치로만 생각한다. 나라는 인간을 봐주고 사랑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피가 이어진 손녀라서 무한히 사랑해준다. 그러나 내가 죽어도 죽고 싶을 정도로는 안 슬플 것이다. 할머니의 논리에 따르면 말이다. 손녀는 넷이나 있으니까... 개수를...-_-

 

중풍으로 십몇년 전에 쓰러진 뒤로 한쪽을 잘 못가눈다. 눈으로 대충 봐서는 알기 힘들고 자세히 보면 한쪽이 불편해 보인다. 그런데 이것도... 만나면 누굴 만나도 이 얘기를 꼭 한다. 단순히 신세타령이다, 라기에는 난 정말 즐기는 거야??? 묻고 싶다. 재밌어? 고통을 얘기하는 게 좋아?? 처음에야 너무 고통스러워서 자꾸 얘기했다지만 계속해서...

 

얘기하면 맨날 옛날에 있었던 일을 얘기하고, 미친듯이 얘기하고, 요즘 있었던 인상적인 일도 또 반복해서 과거의 일로 만들어 버린다. 나는 할머니를 생각하며 화성에서 온 여자라는 시를 썼었다. 맨날 옛날 얘기만 해서, 왜 과거의 시간을 살고 있는가. 라는 의문을 가지고 썼다. 그 시는 너무 고쳐서 원뜻을 알 수 없게 됐따...;

 

근데 나는 근대인이고, 젊은 여자라서 이런 게 아닌가. 왜 앞으로 나가서 자기 인생을 안 살고 맨날 과거에 사는 거야. 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할머니에게는 모두 현재진행형이라면... 그래 중풍으로 쓰러진 것도 한참 전이지만 지금도 후유증이 남아 있다. 딸이 죽은 것도 한참 전이지만 현재도 딸이 죽어 없다. 요즘 일어난 사건을 무한 반복해 말하는 것도, 나에게는 그게 과거화가 되는데, 할머니에게는 현재의 일이라서이다.

 

며칠 전에 꿈을 꿨는데 존나 웃겼다. 다 생략하고 마지막에 할머니가 노래를 하면서 하늘로 올라갔다. 그게 너무 웃겨서 배꼽을 잡고 웃다가 웃으면서 깼다-_-;;;; 일어나서 그 노래가 기억에 남아서 핸드폰에 녹음해놨다. 할머니한테 전화해서 이 노래 아냐고 물었더니 모르지만 참 듣기 좋다고 하셨다. 왠지 구슬픈 노래다. 이 노래 대체 뭐야 내 꿈이 지은 거야-_-??

 

작년에 외숙모를 만났을 때 외숙모가 너희에겐 약하고 불쌍한 할머니겠지만 나에겐 꼬장꼬장한 시어머니라고 했다. 으음.... 그 의미를 다른 친척들과 만나고서야 알게 됐다. 아아... 뭔가 마무리짓는 말을 해야 할 것 같지만

 

근데 난 말이야 오랫동안 생각한 걸 글로 쓰면 더 이상하단 말이지... 더 두서가 없단 말이지.........-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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