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내가 쓴 글

40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9/08/03
    2009/08/03
    무화과
  2. 2009/07/26
    주말
    무화과
  3. 2009/07/17
    앞날(1)
    무화과
  4. 2009/07/04
    도서관(1)
    무화과
  5. 2009/07/04
    이발
    무화과
  6. 2009/06/28
    뫼비우스 띠
    무화과
  7. 2009/06/12
    산울림
    무화과
  8. 2009/06/09
    주현미(1)
    무화과
  9. 2009/06/03
    야구연습장
    무화과
  10. 2009/05/20
    일탈
    무화과

2009/08/03

한 번 망가진 마음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는다.

며칠이 지났는데도 그 때의 기분이 가시지 않는다.

못 볼 것을 보기라도한 듯한 그 눈빛과

눈빛마저 휘돌리며 돌아서는 발걸음을.

 

기아가 7년만에 1위로 올라갔다고 해서 잠깐 풀리는 듯 했지만 별 소용이 없다.

 

내 마음이 그래서인지 한강을 쭉따라 하늘이 오늘따라 더욱 우중충하다

자유로를 내달리는 버스가 아스팔트 위를 구르는 것이 아니라

자욱한 공기를 해치며 미끄러져 가는 듯 하다

 

월요일 아침부터 기분이 이게 뭐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주말

비록 일주일이었지만 전화기를 가지고 다니지 않았던 것이 습관이 되어서일까,

하루 종일 전화기를 방치해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저녁늦게 확인해보니

한통의 전화도 문자도 오지 않았다. 아... 평통사에서 단체문자가 한통 오긴 했다.

 

핸드폰 밧데리 충전하는 주기가 굉장히 길어졌다.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는 날은 왠지 씁쓸할 법도 하건만

이제는 퍽 익숙해져서 그런지 아무 느낌도 들지 않는다.

 

딱히 즐거운 일은 없지만 그렇다고 심심한 주말도 아니다.

야구경기가 있었다면 좀 더 즐거웠으려나?

 

씁쓸하지는 않아도 좀 이상한 기분이 든다.

핸드폰 전화번호부를 주욱 훑어 내려봐도

선뜻 전화 걸 사람을 찾지 못하겠다.

아마도 이렇게 살아본 적이 없어서 그런가보다.

 

잘못 산 물건을 환불하러 엄마와 동생이 나가서

혼자 조용히 집에 있는 주말의 밤

이런 상황이 제법 익숙해졌지만

무엇을 해야할지는 모르겠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앞날

성격이 꼼꼼하지 못한지라 계획을 세우고 살아본적이 거의 없다.

뭐 되는대로 막 산것은 아니었지만, 좋게 말하면 항상 그때 그때에 충실했던거고

나쁘게 이야기하면 미래를 준비하지 않은 것이겠다.

그래도 지루할 틈 없이 세월이 흘러갔으니 아무래도 운이 좋았다고 해야겠다.

 

재미있는게 인생에 어떤 법칙이 작동한다는 느낌이 든다.

숫자로만 이루어진 공식에 따른 법칙이 아주 묘하게,

그래서 내 인생이 거부할 수 없는 힘에 의해 좌지우지 된다는 기분이 들지 않으면서도

지나고보면 꼭 이렇게 될것이 정해져있었던것 마냥 느끼게 된다.

앞날에 대한 명확한 목표와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았음에도

내 인생이 나름의 규칙적인(?) 흐름을 가지고 있는건가?

재미있기는 한데 살짝 씁쓸한 웃음이 배어나온다.

 

학생운동을 열심히 했던 대학시절엔,

내가 병역거부운동을 하게 될지 상상도 못했다.

병역거부라는 것을 모르기도 했었거니와,

조직적으로 병역거부운동에 동참하고 나서도

병역거부운동 단체에서 활동하게 될거라고 눈꼽만큼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렇게 학생운동 5년 후 갑작스럽게 병역거부운동을 하게 되었다.

 

전쟁없는세상을 처음 시작할 때는 학생운동할 때처럼 '죽을 때까지 이것만 한다'

이런 생각은 없었다. 그런 말들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내 인생이 튀어온것처럼

앞으로도 내가 또 어떤 일을 하게 될지는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했다.

한 10년, 전쟁없는세상에서 그 정도 하면 그만두고 다른일을 도전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꼭 10년을 기약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느정도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숫자가 10이었나보다.

 

그런데 또 5년이 지난 지금,  

5년 전에 예상외로 전쟁없는세상을 시작했던것처럼

새로운 방향으로 인생이 튀어가고 있다.

무슨 경제개발5개년계획마냥 내 인생을 5년단위로 끊어서 계획을 세운것도 아닌데,

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어떤 밤에 하늘에 대고 스스로에게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그렇담 앞으로 5년 후

또 어떤 계기가 있어서 인생이 다른방향으로 튀어갈지도 모를 일이다.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5년후를 준비하기보다는

역시나 지금 잘 살도록 노력하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도서관

세상에 책 한 권 빌리기가 이렇게 힘들다니.

대학교에 냈던 등록금이 얼만데, 졸업생이라고 책을 안빌려 준단다.

서울에서 내가 이런 저런 소비를 하며 내는 간접세가 얼만데,

서울 시민이 아니라서 책 안빌려 준단다.

하는 수 없이 지하철로 두 정거장 부천쪽으로 들어가서

거기서 또 한참을 깊숙히 올라가야하는 부천 중앙 도서관에 가게되었다.

 

조선시대에 숭유억불 정책마냥 대한민국정부가 도서관 억제정책으로 탄압이라도 하는건지

왜 도서관이 사람들이 가기 힘든 곳에 꼭꼭 숨어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자전거를 타고 가보니 해는 안보이고 바람은 선선한데도 등자락이 땀에 흠뻑 졌었다.

뭐 산속에 있으니 공기하나는 좋더라만, 대중교통을 가기 불편한 곳이라서 자전거를 탔더니

자전거길도 만만치 않더라.

 

땀흘리며 힘을 쓴 나머지 도서관에서는 조금 잤다. 물론 핑계다. 나 원래 의자에만 앉으면 잔다. 혹은 버스나 지하철에서 서서도 잘잔다. 딱해보여 자리 비켜주는 사람들도 종종 있을 정도다.

 

생각해보니 부천 중앙도서관 예전에도 한 번 와본적이 있다. 아마도 7,8년 전쯤이리라. 오죽 다니기 불편했으면 그 이후에 와볼 생각을 안했을까 싶다. 암튼 가보니 도서관의 위치 빼고는 다 괜찮은것 같다. 몰랐었는데 회원가입해서 책도 빌릴 수 있었다. 내가 찾던 책중 하나는 없었지만 그 정도쯤이야. 앞으로 자주 애용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내일도 가볼까 생각은 하고 있지만, 어제 오늘 자전거를 탔더니 왼쪽 발이 또 아파온다.

지난 설 연휴전에 집회 참가후에 피로때문인지 통증이 오더니 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라지지않고 그렇다고 악화되지도 않고 미세하게 남아서 은근히 신경쓰이게 한다. 아마 내일 도서관 안가면 이것이 핑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 노래듣기. 자전거 타기. 책읽기(이건 최근들어 가능해진것). 야구보기(경기 생중계와 그 이후에 기사검색). 역시 도서관 가야겠다. 안그러면 하루 종일 야구만 보다가 후회하며 잠들테니.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이발

갑자기 머리를 잘랐다.

물론 머리가 제법 길어서, 게다가 부쩍 더워진 날씨를 고려해보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사실 그런 것들은 이유가 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머리를 자른것이 한 4개월 전 쯤 됐으려나. 그리 길지 않은 세월이지만

마치 그 동안의 시간들이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에 새겨져 있기라도 한 듯이

그래서 머리카락을 자르는 순간 그 절단면으로 모든게 새어나가기라도 할것처럼 느끼며

지금 이 순간들을 지나기 전까지는 머리를 자르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머리를 싹뚝 잘라버렸다.

"이 정도의 길이면 될까요? "는 물음에 "더 잘라주세요"하고 대답해버렸다.

미련을 남기지 않으려는 그런 의도는 아니었다.

그 시간들이 남겨진 부분들을 다 잘라버리려고 한것도 아니었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내 뱉은 한마디 대답에 은빛 가위날이

싹뚝 싹뚝 성큼 성큼, 머리카락들은 비명을 지르며 길이가 짧아져갔다.

지금 남아있는 머리카락들은 최근의 것들이라서 그 시간들이 하나도 기억되지 않는다는 듯이.

 

그런데... 그런데...  안경을 쓰고 머리를 바라보니 맘에 안든다ㅠㅠ  괴상망측하다ㅠㅠ

 

불쑥 머리가 자라나면 좋겠다.  그 길이만큼 새로운 기억들이 입력될 시간이 문득 지나버리면 좋겠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뫼비우스 띠

자기혐오와 자기학대의 퍼포먼스

이것들이 사실은 자기 방어의 측면에서 위악이라는 말에 백 번 동의한다.

 

하지만 때로는 머리로 이해하더라도 전혀 몸이 움직이지 못할 때가 있으니...

 

이 지독한 자기혐오와 자학의 퍼포먼스가 끝나지 않는다면 나는 글이라는 것을 쓸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글을 써내려가지 않는다면 이 지독한 자기혐오와 자학의 퍼포먼스를 이겨낼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문득 깨닫고 난 후, 벗어날 길이 없는 뫼비우스띠에 갇혔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산울림

그 양반만큼은 아니겠지만, 도무지 책도 안읽히고 글도 안써지고 그래도 부탁받았던 글은 약속한지 한달이 넘어서야 꾸역꾸역 약속했던 분량도 미달되게 메꿔서 보내고 하루종일 노래만 듣는다. 새로산 엠피쓰리가 별로 맘에 안든다. 그냥 싼맛에 산거니까 잘듣다가 나중에 좋은걸로 사야지. 그래서 엠피쓰리 말고 씨디플레이어로 듣는다. 운좋게 습득(?)한 스왈로우와 루네의 앨범을 듣고 나만의 스테디셀러 시와의 앨범을 듣고 언니네이발관과 루시드폴의 앨범을 듣고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서태지와아이들의 앨범도 듣고 문득 생각나 이소라의 앨범을 듣고 마침내 산울림의 앨범을 듣는다. 나어떡해가 듣고 싶었는데 차마 들을 자신이 없다. 노래들으면서 딴생각도 한다. 딴생각이라기 보다는 그냥 멍하니 아무 생각도 안하고 노래도 건성으로 듣게된다. 그러다 갑자기 노래가 귀를 파고 심장에 들어온다. 지금 나보다, 오후, 골목길, 한밤에, 회상, 하얀밤, 여기 있어 그대... 차례로 나오는 노래를 듣고 가사를 곱씹어 다시 한 번 머리속으로만 들어본다. 산울림의 가사들이 자꾸 머리속을 맴돈다. 쉬운 말들로 청량한 목소리로 읊어진 가사들이 참으로 잔인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모르게 입으로 낮은 탄식처럼 가사가 흘러나온다. "졌어요. 당신이 이긴거예요"... 산울림 계속 듣고 있다가는 미칠지도 모른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주현미

스페이스 공감에 주현미가 나온다. 소개가 트로트가수 주현미가 아니라 보컬리스트 주현미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가장 좋아했던 가수는 주현미다. 아마도 울 할머니가 주현미를 좋아해서 집에서 자주 그녀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겠지만, 익숙하고 친숙함을 추구한다는 것만으로 주현미에 대한 나의 애정을 표현하기에는 부족했다. '보컬리스트'주현미라는 소개에서 드러나듯이 주현미자체가 뛰어난 보컬이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다면 김지애나 다른 트로트 가수중에 유독 주현미만을 좋아했던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지만 어른의 세계로 한발짝씩 다가서고 있다고 생각한 순간, 혹은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접어들면서, 나는 주현미를 좋아한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아마도 주현미를 좋아한다고 말했다가는 친구들에게 골방늙은이 취급을 당할 것이 분명했다. 트로트는 어른들이 즐기는, 그것도 감상의 차원이라기 보다는 술자리에서 얼굴이 불콰해져 소주병에 숟가락 꼽고 부르며 나머지는 젓가락으로 반주를 맞추는 음악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도 신승훈이나 서태지 이승환 015B 등을 좋아하기 위해 애쓰며 그 가수들의 노래를 외워부르곤 했다. 그후로 트로트는 어떤 의미에서는 무시의 대상이 되었다. 사실 가사를 중요하게 듣는 나의 입장에서는 온통 사랑노래 일색-그것도 통속적이고 신파조로 흘러만가는 트로트의 저급함(?)을 견딜 수가 없었다. 주부가수왕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한 주부들은 BMK나 박정현 등 탁월한 보컬들의 노래나 최신 곡들을 부르는데 초대가수로 나오는 B급의 트로트 가수들이 부르는 노래는 왠지 서글플 정도로 촌스러웠다. 트로트를 사랑한다는 것은, 트로트 가수를 좋아한다는 것은 나 또한 그 촌스러움을 뒤집어 쓰는 것이기라도 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는 동안 나는 전람회, 김광진, 이소라 등의 좀 더 고급스런 가수들을 좋아하게 되었고, 안치환, 윤도현 등의 힘찬 가수들을 좋아하게 되었다. 산울림이나 김광석, 정태춘 등을 찾아들으면서는 스스로 문화적으로 우월하다는 착각도 했었었다. 트로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는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에 빠지면서부터다. '낭만에 대하여'는 트로트의 기본공식이라 할 수 있는 유치하고 뻔한 사랑이야기의 가사가 아니었다. 무언가 가늠할 수 없는 세월의 무게가 실린듯한 최백호의 목소리가 가사를 읊조릴때 나는 그것을 거부할 수 없음을 알았다. 영화 '와이키키브라더스'를 보면서 마지막 장면에서 오지혜가 '사랑밖에 난몰라'를 부를 때 과연 좋은 노래란 어떤 노래일까에 대해서 또 한 번의 심각한 감흥이 일었다. 그리하여 심수봉의 노래들을 다 찾아들었다. 그 노래들의 가사는 역시 트로트가 가지고 있어야할 덕목들을 충실하게 가지고 있었지만, 심수봉의 코킅에서 위태롭게 떨어지는 목소리 또한 내가 거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위의 두곡이 트로트에 대한 나의 느낌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것이다. 그 전까지는 농활가서 분위기 띄울때 부르는 노래정도였던 음악이, 기쁘거나 슬플때 위로나 위안이 될 수 있음을 자각한 것이다. 스페이스 공감에 나온 주현미는 자신의 수많은 히트곡들을 팝송들을 적절히 뒤섞어 부른다. 내가 어렸을 때 가장 좋아했던 노래는 '신사동 그사람'과 '비 내리는 영동교'다. 나는 신사동이 어디 있는 동네인지도 모른채, 영동교가 어느 강에 있는 지도 모른채, 가사에는 하나고 감정몰입이 안된채로 주현미의 노래들을 나름 구성지게 따라부르곤 했었다. 이제 다시 말할 수 있다. 주현미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중 하나라고. 그녀의 보컬은 그 진부한 가사마저도 가슴을 후벼파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공감에서 주현미의 노래를 듣게 되어서 참 고맙다. +그러나 사실 내가 지금 가장 듣고 싶은 노래는 '나 어떡해' 참 쉽게 쓰여진 가사같은데.... 가장 진실되게 쓰여진 가사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 이런 상황에서 무슨 멋있는 말들로 치장하는 노래들은 가식처럼 느껴진다. 무슨 다른 말이 나올까. 그런 상황에서는 말이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야구연습장

500원짜리 동전이 덜컹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이젠 도망갈 수는 있어도 피할 수 없다 낡고 닳아 매끈해진 빨간 목장갑을 멀끄러미 쳐다보다 자해라도 하는 심정으로 맨손으로 방망이를 들고 타석에 들어선다 110km짜리 어설픈 속구 정직하게 뻗어나오는 공이지만 저것도 기계인지라 가끔씩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공이 날라온다 50원의 손해보다 위험한 것은 아무런 준비가 안되었을 때 팔꿈치를 노리며 달려드는 공 왠지 그 공에라도 맞아야만 속이 후련할 것 같다 아니면 장외홈런이라도 될듯 시원시원한 타구를 쳐내야 할텐데 나의 야구 재능이 그정도는 되지 못함을 빚맞은 충격에 쩌릿쩌릿한 손가락들이 알고 있다 이상하게도 공이 아주 느리게 느리게 보인다 마치 저 정도의 공은 오만가지 잡다한 생각 다하고도 머리털 쑴풍 빠질듯한 어려운 문제 다 풀고도 방망이를 휘두르면 저 하늘 너머로 날릴정도로 세게 칠 수 있을 듯 하다 그러나, 지구의 자전보다도 느려보이는 공에 실밥의 갯수까지도 셀 수 있을것 같은 공에 나의 방망이는 여지없이 허공을 가른다 지구의 공전보다도 스윙 헛스윙 헛스윙 헛스윙 간단하게 삼구 삼진을 먹은후에 시원하게 잘 맞은 안타를 때려내지만 저건 안봐도 뻔하다 느려터진 내 다리로는 혹은 불성실한 나의 주루로는 1루베이스도 밟지 못할 것 같다 헬멧을 쓰고 연습장에 들어올 걸 그랬다 팔목 보호대를 착용하고 들어올 걸 그랬다 어설프게 겁만 많아서 데드볼도 피해버리지 말 걸 그랬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일탈

진보넷이 싸이월드보다 좋은 이유.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지금 이순간에 딱 한가지 진보넷은 점검한다고 접속을 차단하지 않는다. 싸이월드 메롱이다.(사실은 썅~ 이런 말을 하고 싶다) 한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착한척 하지 말라고. 뉘앙스가 이게 아니었는데. 암튼 착한 모습으로 남들에게 비춰지기 위해서 내 자신을 속이는 것이 아니냐는 의미였을 것이다. 또 한 친구는 말했다. 무너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끝도없이 무너져서 정신줄 놓아버린 끝에 만나게 될 내 자신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지만 나는 도망치고 싶은 순간에도, 정신줄 놓고 싶은 순간에도 그럴만한 용기가 없다. 어설픈 책임감과 원초적인 두려움으로 나는 내 자신을 내팽겨치지 못한다. 결국 쥐꼬리만한 일탈로 스스로를 안정시키고 위악의 처방으로 역설적인 면죄부를 스스로에게 발부한다. 내가 선택한 일탈은 치킨을 먹는것. 어느 노래 가사처럼 강릉으로 떠날 용기조차 없어 지갑속에 차표만을 모으는 사람처럼 나는 꾸역꾸역 스스로의 금기를 깨버림으로써 스스로에게 혹독하지 않은 형벌을 내린다. 아무런 고통도 나에겐 없고 아무런 해방감도 느끼지 못한다. 이것이 나의 일탈의 방식. 정신줄을 놓아버린 상황에서 닭의 살을 무참히 뜯어 제끼는 가학적인 퍼포먼스다. 나를 완전히 던져버리지는 못하고, 저 밑의 내 모습이 너무나 두려워서 위악이든 위선이든 나를 쌓은 포장지, 나의 일탈. 내일 아침에 핸드폰 모닝콜이 내 뱃속에서 꼬끼오 하고 울어댈지언정...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