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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일도 없었으면 좋겠다.

아직 그다지 긴 인생은 아니지만

살다보니 인생의 몇 가지 부분은 알 것도 같다.

이별은 언제나 순식간에 찾아온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것 같던 사람도,

 항상 변하지 않을거라 믿었던 관계도,

심지어 예정되어 있어서 준비해왔던 이별조차도

어느날 갑자기 다가온다.

 

헤어진 사람은 반드시 다시 만난다는 말을 믿고싶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기도하고 편지 쓰는 것 밖에 없다.

다시 만날때, 모두가 행복해보였으면 좋겠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들이 슬프다.

예정된 이별을 기다리는 짧은 시간이 고통스럽다.

 

한밤의 꿈이면 좋겠다.

내일 아침이면 늘 같은 일상이 나를 포근하게 감싸면 좋겠다.

아침밥 먹으라고 엄마가 깨우면, 동생 깨우면서 장난좀 걸어주고

아랫집에 가자마자 피자매연대와 평화인권연대 문열고 인사하고

전쟁없는세상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가

저녁때 누구를 꼬셔서 술이나 한잔할까 전화기를 뒤적거리면 좋겠다.

너무 늦게까지 술을 마시다 보면 흑석동에서 자고 갈 수도 있고

백기형님 석직씨와 택시를 탈 수도 있겠다.

 

1년6개월 짧은 시간이지만

아무일도 없었으면 좋겠다.

누구에게도 아무일도 없었으면 좋겠다.

마치 꿈처럼 지난 시간들이 아무일도 없이 지나가있으면 좋겠다.

지나고 나서 대부분의 전화번호를 내가 기억해내지 못할 수도 있지만

인터넷 아디디와 비밀번호들이 헤깔릴 수도 있지만

버스노선과 지하철 막차시간이 가물가물할 수도 있지만

그런것들은 아무래도 좋다.

 

앞으로 살면서 감당하기 어려운 더 큰 슬픔의 이별들도 있을 것이다.

고통스러운 이 시간도

몰래 벼갯잎 적시는 엄마의 슬픔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의 아픔도

착한 사람들의 고마운 마음도

황새울 들판의 농부의 땀방울도

모두 아무일도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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