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은 연기다. 그것은 원저작자를 연기하는 것이다. 단순히 텍스트를 옮기는 게 아니라 실비오 게젤의 살아있는 음성을 녹여내기 위해서 <The Natural Economic Order>를 글말이 아니라 입말로 번역했다. 입말은 쉽게 와 닿는다. 문장이 짧아서 가벼운 기분으로 읽을 수 있다. 독자들이 편한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오라니엔부르크의 숲에서 게젤과 산책을 하며 인류의 삶을 지탱하는 경제질서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눈다고 상상해주시기 바란다.
이 책의 제목 <The Natural Economic Order>는 처음부터 눈에 확 들어왔다. 당시 역자는 자연현상과 사회현상을 동시에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래서 사회현상인 경제에 ‘natural’이라는 단어를 붙인 것이 눈에 띄었다. 물론 natural은 ‘자연스러운’ 뿐 아니라 ‘마땅한’이라는 뜻도 있다. 이 단어를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자연에서 ‘마땅함’을 찾은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회질서도 마땅히 자연스러운 속성을 바탕으로 조직되어야 하는데, 게젤에 따르면 그 자연스러운 속성은 사람이 자기 이익을 쫓는 마음이다. 그 마음을 게젤은 긍정적으로 바라보았고 그 힘을 효율적으로 결합하면 모두 행복해진다는 걸 알았다.
그 힘을 결합하는 것이 바로 돈이다. 그러니까 돈은 네트워크다. 사람들 힘을 결합하는 네트워크. 이 네트워크로 사람들은 상품·노동을 교환하고 그 흐름이 분화하면 문명이 된다. 따라서 돈은 아주 중요하다. 돈이 어떤 식으로 세팅되었는가, 그 초기조건에 따라 문명의 향배가 갈린다. 돈에 문제가 있으면 사람들의 네트워크가 분열되고 미움과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지금의 돈은 바벨탑이다. 돈의 액면가가 불변하기 때문에 네트워크가 끊기고 교란된다. 반면에 게젤의 공짜돈은 사람들을 단단히 묶어줄 것이다. 공짜돈이 만들어낼 건강한 네트워크가 우리를 지킬 것이다.
실비오 게젤은 ‘Magna quies in magna spé(큰 희망 속에서 큰 휴식을 취하노라)’라는 라틴어로 이 책의 서두를 시작한다.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야 이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것은 자신감이다. 이 경제이론으로 세상을 구할 수 있다는 믿음이 그를 큰 희망 속에서 편히 쉬게 했을 것이다. 게젤이 발견한 경제적 진리는 영원히 살아남을 것이다. 새로운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미풍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