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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9일, 시청광장에서 벌어진 폭력사태

  • 분류
    The FocuS
  • 등록일
    2012/05/04 12:36
  • 수정일
    2012/05/04 12:36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4월9일, 시청광장에서 벌어진 폭력사태
 
4월9일, 저녁 7시를 조금 넘긴 시간부터 나와 <사회주의노동자정당건설공동실천위원회>의 유현경 동지는 1인 시위를 시작했다. <민주노총 김OO 성폭력 사건 피해자 지지모임>의 성원으로서 그 집회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에게 정진후가 공천된 것이 문제가 있음을 알리려는 것이었다. 유현경 동지와 나는 2미터 정도 떨어져서 각자 피켓을 들고 있었고, 잡년행동의 랜디님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1인 시위를 시작한지 30분 정도 지났을 때 한 군복을 입은 4-50대 남성(이하 ‘군복남’)이 나에게 다가와서 여기서 뭐하는 거냐고 물어보았다. 그래서 나는 성폭력 사건에서 가해자를 옹호하고 피해자의 뜻을 무시한 사람이 이번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 후보로 나왔다고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군복남은 그게 누구냐고 물었고 나는 통합진보당 4번 정진후 후보라고 답했다. 
처음에 ‘김OO’이라는 원가해자와 정진후는 다른 사람이며 우리가 지금 문제제기하고 있는 사람은 정진후임을 여러 번 이야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군복남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이런 문제는 여성가족부 앞에서 항의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내가 ‘여기 집회에 참가한 사람과 이러한 생각을 공유하고 싶어서 왔다. 진보진영 내에서 이런 문제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그 군복남이 사법부에 해결을 요청해야지라고 했다. 그래서 원가해자는 사법부에서 재판받고 감옥에 갔다가 얼마 전에 출소했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정진후가 원 가해자는 아니지만 피해자의 의견을 묵살하고 2차 가해자들을 옹호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군복남은 계속 여기서 이러면 안 된다는 말만 계속했다. 
왜 안 되는지 이유를 물었더니 군복남은 이렇게 답했다. “여기 조선일보 기자가 와서 당신들 사진 찍어가면 당신은 스타 되고 여기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바보 되는 거야”라면서 “누구 좋으라고 이러는 거야”라고 이야기했다. 군복남은 처음 보는 나에게 계속 반말로 말했다. 그래서 나는 “스타 되려고 하는 거 아니고 그럴 일도 없다”고 했고 피켓 시위에 합류한 잡년행동의 칠월님도 “그럴 일은 없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복남이 피켓 시위를 중단하라는 말을 계속하자 칠월님은 “불법 사찰 반대하는 피켓을 정진후 공천에 항의하는 피켓이랑 같이 들고 있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군복남은 “아, 그게 아니지”라며 우리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 결국 군복남은 피켓 시위를 하고 있는 나와 칠월님 그리고 랜디에게 “(집회장에서)나가라면 나가”라는 말까지 했다. 
언쟁이 계속되자 집회대오 뒤쪽에 앉아있던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주로 50대로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남성이 많았으나 여성들도 상당수 있었다. 2-30명 정도의 사람들이 나와 칠월님, 그리고 계속 사진을 찍고 있던 랜디님을 둘러쌌다. 그 모인 사람들 사이에서 “쟤네 한나라당 알바 아니야?”, “조중동에서 나온 애들 아니야?”라는 고함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러한 의문에 호응하는 목소리들도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재네, 한나라당 알바네.” 아무리 우리가 여기서 피켓 시위를 하는 이유를 설명하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들에게 우리는 조중동이 부리는 알바일 뿐이었고, 따라서 집회장에서 내쫓아야 할 적이 되었다.
우리를 둘러싼 사람들은 점점 목소리를 높였다. 한 중년 여성과 남성, 그리고 군복남이  “여긴 당신 같은 사람들 올 곳이 아니야”라면서 우리에게 나갈 것을 종용했다. 그리고 그 중년 여성은 “당신들, 지금 상갓집에 와서 깔깔대고 있는 거야”라며 사람이 그러면 안 되지 라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옆에 있던 또 다른 중년 남성은 “쟤네들은 인간 쓰레기야”라면서 소리 지르고 삿대질을 했다. 나와 칠월님은 계속 “우리도 사찰 반대 손피켓 들 수 있고, 우리도 엠비 싫어한다. 하지만 이 문제를 여기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알리고 공유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계속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 말은 들리지 않았다. 
이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여러분들과 공유하려고’라는 표현이 나왔고 앞에도 등장한 그 중년여성은 ‘여러분’이라는 말에 갑자기 흥분했다. “여러분? 넌 애미 애비도 없냐? 어디서 배워먹은 버르장머리야?”라며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이에 랜디님이 반말하지 말라고 항의했지만 그들은 계속 애미 애비도 없냐며 윽박질렀다. ‘여러분’이라는 말이 왜 예의에 벗어났는지도 모르겠고,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는 무조건 반말을 써도 된다는 사고도 이해가 가질 않았다. 오히려 그들이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랜디님이 ‘이렇게 하는 거 부끄럽지 않으세요?’라고 묻자 우리를 둘러싼 사람들은 온갖 욕설을 퍼부었고 ‘한나라당 알바네’, ‘인간 쓰레기네’라는 말이 오고갔다. 고성이 오고가니까 집회 대오에서 몇몇 사람들이 뒤돌아보기 시작했지만 무대에서는 어떠한 상황정리 발언도 없이 집회를 진행했다. 언론노조 상근자 분이 와서 우리에게 욕설을 퍼붓는 사람들을 말리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언론노조 상근자 역시 ‘새누리당 알바’로 몰렸다.
우리를 둘러싼 사람들은 피켓의 문구를 가리기 위해 피켓에 붙어서 섰다. 그래서 우리는 피켓 문구를 잘 보이게 하기 위해 피켓을 머리 위로 들고 서있었다. 그러자 또 다시 욕설들이 쏟아졌다. 한 중년 여성은 “너 같은 년들 앞길 뻔하다. 너 같은 딸년 셋 낳아서 갈보년 만들 년들”이라는 폭언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앞에서 한 할아버지는 “너희가 박정희 시대를 아냐”며 호통을 쳤다. 1인 시위마저 억압하는 것이 더 박정희 독재시절의 모습에 가까운 것 아니냐며 항의하고 싶었으나 이 상황이 너무 억울하고 분노했기에 쉽사리 말이 나오지 않았다. 군복남도 계속 협박을 해댔고, 우리를 협박하는 모습을 랜디님이 사진으로 찍자 군복남은 사진 찍지 말라고 지우라고 막 흥분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우리를 둘러싼 사람들 중 한 할아버지는 우리 뒤에 서서 귀에다가 얼굴을 가까이 대고 “독립군 잡아서 일본군한테 넘기는 년들이 딱 너희 같은 년들이야”라면서 귓속말을 해댔다. 너무 불쾌했다. 그래서 ‘불쾌하니까 그만하시라’고 하자 옆에 있던 칠월님에게 귓속말을 하면서 “너한테 하는 거 아니고 얘한테 하는 건데”라며 말도 안 되는 답변을 하며 조롱했다. 주위에서는 “나가라면 나가” “말로 할 때 나가”등 반말과 협박이 난무했다. “우리가 왜 나가야 하냐”, “1인 시위는 어디서든 할 수 있는 거”라고 대응했으나 협박은 계속되었다. 한 중년 남성이 신문지 말은 것을 봉처럼 만들어서 머리 위로 들고 있는 피켓을 툭툭 쳤고 하지 말라고 하는 순간 갑자기 피켓이 부서졌다. 우리는 뒤에 설치되어 있던 빨랫줄에 걸려서 넘어질 뻔 하고 우리가 들고 있던 피켓은 박살이 났다.
너무 억울해서 울면서 남은 피켓을 들고 서있는데 빨간 바람막이를 입은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덩치 큰 남성이 왔다. 그리고 여기서 이러지 말라고 빨리 나가라고 눈을 부라렸다. 그러면서 바로 반말로 “나가라고 할 때 나가라”고 우리를 밀어냈고 우리는 힘없이 밀려났다. 마찰이 계속되자 경찰이 왔다. 경찰은 ‘우리 쪽이 집회신고가 되어 있지 않으니 이렇게 마찰이 생기면 우리가 나가야 된다’고 했고 우리는 피켓을 주섬주섬 모아서 쌍용차 분향소가 있는 곳으로 대피했다. 하지만 군복남은 쌍용차 분향소까지 쫓아와서 비아냥거리고 랜디님을 협박했다. 
이 전 과정을 겪으면서 그들이 분노를 표하는 방식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피켓을 부수고 사진을 찍는 랜디님에 대한 물리적 폭력만이 폭력의 전부는 아니었다. 계속되는 폭언은 ‘나이 어린 여성’에 대한 자신들의 권력을 여과 없이 표출하는 과정이었다. “~년들”이라는 말을 너무나 많이 들어서 놀랍지도 않았다. 우리가 하는 말은 모두 ‘나이 어린 사람이 나이 많은 사람에게 예의 없이 군다’는 논리로 묵살되었다. ‘딸을 갈보로 만든다’는 욕설, 끊임없이 굳이 귓속말로 모욕감을 주는 할아버지 역시 여성임을 이용해서 모욕감을 주는 방식이었고 이는 온 몸에 소름이 돋게 만들었4월9일, 시청광장에서 벌어진 폭력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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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9일, 저녁 7시를 조금 넘긴 시간부터 나와 <사회주의노동자정당건설공동실천위원회>의 유현경 동지는 1인 시위를 시작했다. <민주노총 김OO 성폭력 사건 피해자 지지모임>의 성원으로서 그 집회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에게 정진후가 공천된 것이 문제가 있음을 알리려는 것이었다. 유현경 동지와 나는 2미터 정도 떨어져서 각자 피켓을 들고 있었고, 잡년행동의 랜디님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1인 시위를 시작한지 30분 정도 지났을 때 한 군복을 입은 4-50대 남성(이하 ‘군복남’)이 나에게 다가와서 여기서 뭐하는 거냐고 물어보았다. 그래서 나는 성폭력 사건에서 가해자를 옹호하고 피해자의 뜻을 무시한 사람이 이번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 후보로 나왔다고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군복남은 그게 누구냐고 물었고 나는 통합진보당 4번 정진후 후보라고 답했다. 
 
처음에 ‘김OO’이라는 원가해자와 정진후는 다른 사람이며 우리가 지금 문제제기하고 있는 사람은 정진후임을 여러 번 이야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군복남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이런 문제는 여성가족부 앞에서 항의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내가 ‘여기 집회에 참가한 사람과 이러한 생각을 공유하고 싶어서 왔다. 진보진영 내에서 이런 문제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그 군복남이 사법부에 해결을 요청해야지라고 했다. 그래서 원가해자는 사법부에서 재판받고 감옥에 갔다가 얼마 전에 출소했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정진후가 원 가해자는 아니지만 피해자의 의견을 묵살하고 2차 가해자들을 옹호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군복남은 계속 여기서 이러면 안 된다는 말만 계속했다. 
 
왜 안 되는지 이유를 물었더니 군복남은 이렇게 답했다. “여기 조선일보 기자가 와서 당신들 사진 찍어가면 당신은 스타 되고 여기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바보 되는 거야”라면서 “누구 좋으라고 이러는 거야”라고 이야기했다. 군복남은 처음 보는 나에게 계속 반말로 말했다. 그래서 나는 “스타 되려고 하는 거 아니고 그럴 일도 없다”고 했고 피켓 시위에 합류한 잡년행동의 칠월님도 “그럴 일은 없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복남이 피켓 시위를 중단하라는 말을 계속하자 칠월님은 “불법 사찰 반대하는 피켓을 정진후 공천에 항의하는 피켓이랑 같이 들고 있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군복남은 “아, 그게 아니지”라며 우리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 결국 군복남은 피켓 시위를 하고 있는 나와 칠월님 그리고 랜디에게 “(집회장에서)나가라면 나가”라는 말까지 했다. 
 
언쟁이 계속되자 집회대오 뒤쪽에 앉아있던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주로 50대로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남성이 많았으나 여성들도 상당수 있었다. 2-30명 정도의 사람들이 나와 칠월님, 그리고 계속 사진을 찍고 있던 랜디님을 둘러쌌다. 그 모인 사람들 사이에서 “쟤네 한나라당 알바 아니야?”, “조중동에서 나온 애들 아니야?”라는 고함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러한 의문에 호응하는 목소리들도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재네, 한나라당 알바네.” 아무리 우리가 여기서 피켓 시위를 하는 이유를 설명하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들에게 우리는 조중동이 부리는 알바일 뿐이었고, 따라서 집회장에서 내쫓아야 할 적이 되었다.
 
우리를 둘러싼 사람들은 점점 목소리를 높였다. 한 중년 여성과 남성, 그리고 군복남이  “여긴 당신 같은 사람들 올 곳이 아니야”라면서 우리에게 나갈 것을 종용했다. 그리고 그 중년 여성은 “당신들, 지금 상갓집에 와서 깔깔대고 있는 거야”라며 사람이 그러면 안 되지 라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옆에 있던 또 다른 중년 남성은 “쟤네들은 인간 쓰레기야”라면서 소리 지르고 삿대질을 했다. 나와 칠월님은 계속 “우리도 사찰 반대 손피켓 들 수 있고, 우리도 엠비 싫어한다. 하지만 이 문제를 여기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알리고 공유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계속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 말은 들리지 않았다. 
 
이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여러분들과 공유하려고’라는 표현이 나왔고 앞에도 등장한 그 중년여성은 ‘여러분’이라는 말에 갑자기 흥분했다. “여러분? 넌 애미 애비도 없냐? 어디서 배워먹은 버르장머리야?”라며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이에 랜디님이 반말하지 말라고 항의했지만 그들은 계속 애미 애비도 없냐며 윽박질렀다. ‘여러분’이라는 말이 왜 예의에 벗어났는지도 모르겠고,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는 무조건 반말을 써도 된다는 사고도 이해가 가질 않았다. 오히려 그들이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랜디님이 ‘이렇게 하는 거 부끄럽지 않으세요?’라고 묻자 우리를 둘러싼 사람들은 온갖 욕설을 퍼부었고 ‘한나라당 알바네’, ‘인간 쓰레기네’라는 말이 오고갔다. 고성이 오고가니까 집회 대오에서 몇몇 사람들이 뒤돌아보기 시작했지만 무대에서는 어떠한 상황정리 발언도 없이 집회를 진행했다. 언론노조 상근자 분이 와서 우리에게 욕설을 퍼붓는 사람들을 말리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언론노조 상근자 역시 ‘새누리당 알바’로 몰렸다.
 
우리를 둘러싼 사람들은 피켓의 문구를 가리기 위해 피켓에 붙어서 섰다. 그래서 우리는 피켓 문구를 잘 보이게 하기 위해 피켓을 머리 위로 들고 서있었다. 그러자 또 다시 욕설들이 쏟아졌다. 한 중년 여성은 “너 같은 년들 앞길 뻔하다. 너 같은 딸년 셋 낳아서 갈보년 만들 년들”이라는 폭언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앞에서 한 할아버지는 “너희가 박정희 시대를 아냐”며 호통을 쳤다. 1인 시위마저 억압하는 것이 더 박정희 독재시절의 모습에 가까운 것 아니냐며 항의하고 싶었으나 이 상황이 너무 억울하고 분노했기에 쉽사리 말이 나오지 않았다. 군복남도 계속 협박을 해댔고, 우리를 협박하는 모습을 랜디님이 사진으로 찍자 군복남은 사진 찍지 말라고 지우라고 막 흥분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우리를 둘러싼 사람들 중 한 할아버지는 우리 뒤에 서서 귀에다가 얼굴을 가까이 대고 “독립군 잡아서 일본군한테 넘기는 년들이 딱 너희 같은 년들이야”라면서 귓속말을 해댔다. 너무 불쾌했다. 그래서 ‘불쾌하니까 그만하시라’고 하자 옆에 있던 칠월님에게 귓속말을 하면서 “너한테 하는 거 아니고 얘한테 하는 건데”라며 말도 안 되는 답변을 하며 조롱했다. 주위에서는 “나가라면 나가” “말로 할 때 나가”등 반말과 협박이 난무했다. “우리가 왜 나가야 하냐”, “1인 시위는 어디서든 할 수 있는 거”라고 대응했으나 협박은 계속되었다. 한 중년 남성이 신문지 말은 것을 봉처럼 만들어서 머리 위로 들고 있는 피켓을 툭툭 쳤고 하지 말라고 하는 순간 갑자기 피켓이 부서졌다. 우리는 뒤에 설치되어 있던 빨랫줄에 걸려서 넘어질 뻔 하고 우리가 들고 있던 피켓은 박살이 났다.
 
너무 억울해서 울면서 남은 피켓을 들고 서있는데 빨간 바람막이를 입은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덩치 큰 남성이 왔다. 그리고 여기서 이러지 말라고 빨리 나가라고 눈을 부라렸다. 그러면서 바로 반말로 “나가라고 할 때 나가라”고 우리를 밀어냈고 우리는 힘없이 밀려났다. 마찰이 계속되자 경찰이 왔다. 경찰은 ‘우리 쪽이 집회신고가 되어 있지 않으니 이렇게 마찰이 생기면 우리가 나가야 된다’고 했고 우리는 피켓을 주섬주섬 모아서 쌍용차 분향소가 있는 곳으로 대피했다. 하지만 군복남은 쌍용차 분향소까지 쫓아와서 비아냥거리고 랜디님을 협박했다. 
 
이 전 과정을 겪으면서 그들이 분노를 표하는 방식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피켓을 부수고 사진을 찍는 랜디님에 대한 물리적 폭력만이 폭력의 전부는 아니었다. 계속되는 폭언은 ‘나이 어린 여성’에 대한 자신들의 권력을 여과 없이 표출하는 과정이었다. “~년들”이라는 말을 너무나 많이 들어서 놀랍지도 않았다. 우리가 하는 말은 모두 ‘나이 어린 사람이 나이 많은 사람에게 예의 없이 군다’는 논리로 묵살되었다. ‘딸을 갈보로 만든다’는 욕설, 끊임없이 굳이 귓속말로 모욕감을 주는 할아버지 역시 여성임을 이용해서 모욕감을 주는 방식이었고 이는 온 몸에 소름이 돋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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