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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헤헤님의 [주말의 3가지 공연]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엘리펀트>
제목이 걸작이다.
우리는 코끼리 한마리를 거실에 둔 채로 살아간다.
밖으로 내보낼 방도가 없으니 그냥 참고 지낼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지내다 보니
어느샌가 코끼리의 존재가 익숙해졌다.
'거실의 코끼리'
내부의 커다란 문제를 의미하는 서양우화란다.
“폭력은 이해될 수 없다. 거부될 수 있을 뿐이다.”
영화평론가 정성일씨가 전찬일씨와 <엘리펀트>를 두고 논쟁을 벌이면서 한말이다.
<엘리펀트>를 보고 난 후 계속 되내이는 질문이 왜 그 애들은 살인이라는 것을
택했을까였다.
왜?
마이클무어는 정치적, 사회적 접근방법으로 쉽게 구매할 수 있는 총기구매시스템때문이라고
하고, 불안을 조장하는 미국정치인들 때문이라고 한다.
언론에서는 문화라고 한바탕 난리를 치면서 하드롹밴드의 hard한 표현방식이
문제라고 했다. 그건 아니라는 것이 마이클무어의 생각이었고 일정정도는
한 분야에만 문제의 원인이 있을꺼라고 생각하는데 동의한다.
왕따문제. 이것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이 모든 왕따학생들이 심리적으로
불안해지기는 하지만 살인을 직접 실행에 옮길 만큼 잔인하거나 폭력적으로
변하는 건 또 아니다.
그러면 폭력게임? 대리만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윤리의 무감각,
폭력의 일상화 또는 습관화가 되면 것도 문제의 원인이 되기도 하겠지만
게임인구가 어디 한두명인가? 것도 아닌듯…
미국의 범죄심리학자인가가 미국범죄자들을 상대로 유전자검사를 해보았더니
정상인들과는 남다른 인자가 하나 더 있다고 했었는데…태어날 때부터
폭력적인 인간은 타고 나는 건가?
모르지모르지..몰겠따….
폭력을 거부하고자 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살상이 무감각해질 수 있는
심리상태가 된다는 건 한순간도 아니고 치밀하게 계획하에 진행된 것이었다.
가상의 게임처럼 그냥 천편일률적으로 쓰러지기만 하는 가상인형이 아니라
붉디붉은 선혈을 뚝뚝흘리면서 공포스러운 표정의 절규하는 듯한 소리들이
보이고, 들리고, 맛볼 수 있었을 터인데 아무런 감정을 가지지 않고 냉정하게
방아쇠를 당길 수 있다면…?
감독의 의도가 구체적으로 읽히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폭력이 감행되어지고 폭력에 노출이 된 이들의 반응은 공포와 소란이 아니었다.
조용히 받아들이는 듯했고, 그 무언가의 경지에 도달한 듯한 반응이었다.
그건 구스반 산트가 콜롬바인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인 듯하기도 했다.
차갑고 냉정하게 바라보고 싶다라는…
하늘은 처절하게 푸르렀고 베토벤교향곡14번<월광소나타>의 아름다운 선율은
절제된 전율이었다.
끊임없이 폭력에 대해 거부할 수 있는 인간을 만들어내도록 국가이데올로기는
기제해야될테지..하지만 국가는 끊임없이 무기를 만들어내고 군인을 양성하고
전쟁을 조장하지 않는가?
왜?
자신의 소신을 위해 폭력적 집단(군대)을 거부할 권리가 한국남성들에게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비됴로 다시 함 봐야겠다는 생각에 젖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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