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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른다>

 


아키라, 교코, 시게루, 유키 네아이가 작은 동경아파트에서 산다.


어른들은 아무도 모른다.
이웃은 아무도 모른다.

 

 

아이들이 아파트에 산다는 것을.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는 것을
아이들이 엄마와 같이 살지 않는다는 것을.

 

 

 

 

바람에 날리는 꽃가루와 하수구에 핀 꽃씨들을 거둬 일회용컵에 키운 식물들.
2층집 베란다에서 그 식물이 떨어질 때 누군가의 죽음이 기다리겠구나하는 불안함이 밀려들었다. 복선을 곳곳에 깔아놓았던 지라 무슨일이 생길것만 같다는 불안함으로 영화의 마지막을 기다리고 있었다.
초반부터 쏟아지는 눈물땜에 주책스러워하며 영화보는 내내 감정을 억누르고 있었던 것이 마지막 떨리는 아키라의 손을 보며 기어코 눈물콧물을 쏟아놓고야 말았다.
여기저기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영화관에서 우는건 거의 드문데 벌건 눈을 남들에게 보이기 싫어 불이 채 켜지지도 않은 스크린을 뒤로한체 부랴부랴 뛰쳐나와 화장실에서 거울을 봤더니 눈과 코가 벌겋다.

 

 

 


귀엽고 티없는 아이들의 얘기가 왜 이렇게 슬픈거야. 젠장...
'미친X...'
자신만의 행복을 위해 말없이 떠난 무책임한 아이의 엄마를, 내아이가 아니라며 경제적 책임을 회피하는 아이의 아빠들을..그 어른들이 다 미친X들이라고 난 욕하고 있었다.

 

아키라를 ‘믿는다’는 엄마의 쪽지는 아키라를 나이에 맞지 않게 성숙한 아이로 만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는 그는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여리디여린 어린식물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또래의 아이들과 함께 게임도 같이 하고 글로브끼고 펄쩍펄쩍 뛰어다니며 야구도 하고 싶은 것이 소년 아키라다. 하지만 그는 없는 돈을 쪼개 배고픈 동생들의 음식을 사러 장을 봐야하고 공과금을 처리해야하고, 내일식량을 걱정해야하는 책임을 떠맡게 된 것이다.

 

 

 


찍찍이 소리나는 슬리퍼를 신고 곰돌이 모양의 가방을 메고 밤나들이 나간 유키와 아키라.
오빠손을 꼭잡고 팔짝팔짝 뛰며 좋아하는 유키는 초코렛과자를 젤루 좋아하고 오빠가 사준 초코렛과자를 아껴먹는다. 유키의 캐릭터는 <반딧불의 묘>의 어린동생이 사탕을 아껴먹듯 비슷한 상황설정으로 오버랩되며 불안한 사건을 암시하는 복선으로 깔린다.

그들만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아키라의 또래 남자친구들은 잠깐 머물다 역시나 그들만의 세상으로 돌아간다. 왕따인 소녀는 원조교제로 쉽게 번 돈을 아키라에게 건네주나 아키라는 보기좋게 거절한다. 그녀에게 연정을 품고 있는 그에게 남은 마지막 자존심인 것이다.

 


자신의 아이들의 학교점수가 얼마인지에만 관심있는 엄마들은 긴머리에 더러운 옷을 입은 이웃집 아이 아키라가 지나도, 시게루가 스쳐가도 관심밖이다. “이웃”이라는 공동체개념이 사라진건 개인화된 도시생활에서 자연스러운 것이다. 왕따, 원조교제, 닫힌공동체, 핵가족, 일본이라는 사회의 단면을 일상적으로 드러내는 이러한 현상들은 한국도 그닥 다르지 않아 보인다. 부모와 사회로부터 방치된 아이들의 피폐함, 굶주림, 그로인한 죽음까지.. 최근 화제가 되었던 한국의 사회문제들인 것이다.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까?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떠난 엄마? 무능력한 경제력을 지닌 아빠? 무관심한 이웃과 어른들?

 

 

아이들이 모두 예쁘다. 유독 아이들을 좋아하는 내게 이 영화는 고통의 시간이었다.

시게루는 자신의 발에 흙이 묻어도 신경쓰지 않고 식물들에 물주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아껴주고 가꾸어야만 씩씩하게 자라나는 식물처럼 아이들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지켜주어야 한다. 독립심을 길러 강하게 키우는 것과는 별개로 아이는 아이다. 어른으로부터 보호받고 교육받아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아이가 아이로 자라나는 건 어른들의 책임이다. 사회의 책임이다.

 

 



대안가족
아빠없이도 넓은 대궐 같은 집이 아니어도 아이와 엄마는 행복해보였다. 엄마와 겜도 하면서 놀고, 힘들게 일하고 돌아온 엄마를 위해 맛난 음식도 차려놓고, 빨래도 직접하는 독립심 강한 아이들. 아빠는 각자 다르지만 서로를 위하는 애정은 피를 나눈 형제자매보다 더 강하다. 억지로 시키지 않아도 공부하고 장보고 엄마의 규칙을 잘 준수하는 착한 아이들. 엄마의 가사노동까지 분담하여 씩씩하게 살아가는 가족 공동체. 아이의 아빠가 모두 다른 형제자매와 씩씩한 엄마가 사회에서 평범하게 살아가기란 어려운 것일까? 학교에 다니면 아빠없다고 놀리는 아이들떄문에 왕따되기를 걱정하고, 여자 혼자 아이키운다고 주변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한창 뛰어 놀아야 할 아이들이 주변 이웃의 반발로 아파트거주조차 어렵게 되는...각박한 현대사회. 닫힌 사회가 갑갑하다.


조카와 닮은 시게루
시게루 캐릭터는 엉뚱하고 사랑스럽다. 엄마가 잘라준 머리가 너무 짧아 맘에 들지 않음에도 거울만 보면서 미소짓는 녀석. 정말 귀엽다. 특히나 행동과 말투는 조카 유빈과 너무나도 닮아서 귀여워죽는줄 알았다.

시게루는 엄마의 자리가 비어있음에도 가장자리에 혼자 떨렁 다른 높이의 의자에 앉아있다.

 

카메라의 시선

섬세하다. 발과 손, 조그마한 사물(혼자돌아가는 세탁기, 소리에 의해 세탁기가 돌아간다는 걸 감지할 수 잇다)등에 카메라가 잠시잠깐씩 머물러 있다. 여운과 상징으로 구체적인 표현방식보다 훨씬 감성을 이끌어내는 듯하다. 알고보니 몇년전 스리슬쩍 개봉한 죽음과 행복한 생에 대한 영화 <원더풀라이프>감독이었더군.

 

아키라
가로로 길쭉한 깊이있는 눈매와 뻣뻣하지만 곧게 뻗은 헤어스타일, 어딘지 모를 우수에 찬 분위기가 모성애를 자극하는 아키라의 캐릭터는 누군가와 많이도 닮아서 기분이 묘했다.

유키의 시신에 흙을 던지는 떨리는 그 손을 꼭 잡아주고 싶었다. 끌..ㅠ_ㅠ

 

 


 

아키라 참 멋있다^^

 

 

 

이 글은 알엠님의 [아무도 모른다]

    자일리톨님의 [아무도 모른다 - 고레에다 히로카즈(2004)]

    지후님의 [아무도 모른다 / 고레다 히로카즈]

    토리님의 [아무도 모른다 / 지독히 건조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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